농장은 우리 일터이자 놀이터… 아이 키우려 농부 됐어요

경주/오경묵 기자 2024. 7. 12.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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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아이들이 바꾼 우리] 네 형제 키우는 차신우·이미경 부부

지난달 23일 경북 경주시 천북면의 한 농원. 2만6000㎡ 규모의 농원엔 500주가량의 한라봉 나무가 심겨 있고, 푸른 잔디밭과 로즈마리·허브 등으로 가득 찬 온실도 있었다. 이곳은 차신우(37)·이미경(35) 부부의 일터이자 쌍둥이 아들 한율·은율·시율(이상 4)이와 이안(2)이의 놀이터다.

고교 시절 미용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네일아트숍을 운영한 이씨는 2022년 막내를 출산한 직후 귀농을 결심했다. 2006년 이례적으로 경북에서 한라봉 재배를 시작한 부친의 농원이 목적지였다.

지난달 23일 경북 경주시 천북면의 한 농원에서 차신우(37)·이미경(35)씨 가족이 손을 잡고 둘러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 아래쪽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은율(4), 막내 이안(2), 남편 차씨, 한율, 아내 이씨, 시율. /김동환 기자

그렇게 부부는 농부가 됐다. 이씨는 직접 재배한 과일을 수확해 인터넷 등으로 직거래 판매한다. 남편 차씨는 낮에는 농장 일을 함께 하고, 늦은 오후부터 자정 즈음까지는 골프장 경기 보조원으로 ‘투잡’을 한다.

계절에 따라 한라봉, 멜론, 자두, 블루베리 등을 재배하는데, 수확 시기가 되면 아이들과 함께 나가 과일을 따기도 한다. 이씨는 “아이들을 키우며 할 일을 찾다보니 농부가 됐다”며 “체험농장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공간을 만들려다보니 규모가 커진다”고 했다.

부부는 2014년 소개팅으로 만나 2018년에 결혼했다. 여러 차례 임신 시도 끝에 시험관 시술을 거쳐 성공했다. ‘쌍둥이 임신에 놀라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이씨는 “아이가 혼자 자라면 외로울 것 같았다. 2명 이상은 낳을 생각이었고,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차씨도 “한 명이라도 생기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귀한 아이가 셋이나 왔으니 안 낳고 배기겠느냐”고 했다.

육아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출산 직후 이씨의 몸에 문제가 생겼다. 쌍둥이를 임신해 자궁이 커지면서 수축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병원에서 진료를 통해 해결돼 큰일은 막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부부는 합쳐야 두 명인데, 세 아이를 보려니 손이 모자랐다”는 설명이다. 아이들이 태어난 지 100일쯤 됐을 때 이씨의 친정으로 합가를 했고 11개월까지 도움을 받았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는 말처럼, 친정 가족까지 모두가 붙어 세 쌍둥이를 키운 것이다.

부부 사이의 희생과 배려도 있었다. ‘투잡’인 차씨는 매일 자정에 퇴근해 새벽 5시까지 애들을 보다 잠이 들었다가 오전 9시면 다시 농장으로 출근했다. 낮 시간대는 이씨가 아이들을 맡았다. 차씨는 “아이들에 대한 사명감이 있어 정신적으로는 어렵지 않았지만, 잠이 부족해 정말 힘들었던 시기”라고 했다. 이씨는 “남편(차씨)이 엄청 고생했다. 저는 낮에 육아도우미 덕분에 잠을 잤다”고 했다.

그렇게 육아 전쟁을 한참 벌이는 중에 넷째를 임신했다. 차씨는 “임신이라는 게 참 신기하더라. 계획할 땐 안 되고, 마음을 비우니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식구가 늘어 힘들진 않았을까. 이씨는 “셋을 키우다보니 하나는 그냥 크더라”라며 웃었다.

쌍둥이들 사이에는 형·동생 같은 서열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1번, 2번, 3번’이라고 소개한다. 이씨는 “형·동생을 정하면 첫째가 짊어질 짐이 너무 무거울 것 같았다”고 했다. 아이들끼리 친구처럼 지내게 하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서로를 배려한다고 했다. 그는 “시킨 적도 없는데 서로 챙기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키우며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빨래를 개는 엄마 옆으로 와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정리를 도울 때, 어깨를 주물러달라고 하면 서로 하겠다고 나설 때, 아프다고 하면 병원 놀이를 하며 장난감으로 약을 만들어줄 때. 이씨는 “다른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니지만, 저에게는 정말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라고 했다.

여섯 식구의 외출은 만만치 않다. 외식이라도 하려면, 식당에 아기 의자가 몇 개나 있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4개를 사용할 수 없는 곳은 탈락이다. 여행은 더욱 어렵다. 이씨는 “비행기에서 아이 넷을 돌볼 엄두가 나지 않아 가까운 제주도 가는 것도 겁난다”면서도 “올해가 가기 전에 가보려고 한다”고 했다.

두 사람의 ‘버킷리스트’를 물었다. 차씨는 “신혼여행으로 다녀왔던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리조트에 아이들과 함께 가보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씨는 “남편이 너무 바빠 아이들이 아빠 얼굴 볼 시간도 없다”며 “아빠가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이씨는 ‘다둥이’ 가정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나라에서 돈 많이 주겠네” “시험관 시술 했느냐”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씨는 “대수롭지 않은 질문일 수 있지만 여러 번 듣는 다둥이 엄마 입장에선 상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적 지원과 배려도 필요한 점으로 꼽았다. 이씨는 “정부는 저출생과의 전쟁이라며 출산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며 “물론 저출생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미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부부들에게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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