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국 축구 ‘2701호 나비효과’
2022 카타르 월드컵 때 이른바 ‘2701호 사건’이 있었다. 주장 손흥민이 본인 개인 트레이너 안덕수씨를 무단으로 의무팀에 합류시킨 일이다. 여러 선수가 안씨에게 회복 치료를 받았다. 이 치료를 받던 호텔 방이 2701호였다. 공식 구성원이 아닌 외부인이 선수단 업무에 개입한다는 건 이례적인 일. 더구나 이 과정에서 의무팀장이 업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안씨 편을 든 일부 선수의 요구였다. 협회는 당장 대회 성과에 급급해 원칙을 버리고 편법을 택했다. 16강 진출이란 후광 덕분에 별다른 후폭풍은 없었지만 불화의 씨앗이 뿌려졌다. 당시 안씨의 합류에 문제가 있다고 본 선수들도 있었다. 김민재가 한때 손흥민 소셜미디어 계정과 교류를 끊고 대표팀에서 물러나겠다는 취지 발언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반목과 갈등 신호는 계속 나타났지만 협회는 무원칙으로 일관했다. 올 초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급기야 선수들끼리 주먹다짐까지 했다. 협회는 진상 규명을 통해 재발 방지를 보장하는 대책과 장치를 마련해야 했지만 이강인이 짧게 사과한 게 전부였다. 질문도 안 받았다. 원칙과 규율이 사라진 협회를 선수들은 존중하지 않는다. 몇몇 대표팀 선수는 협회 직원에게 막말을 내뱉고 하대하기 일쑤라 한다. 그 단초가 카타르 월드컵 때 시작됐다고 보는 축구계 인사가 많다.
무너진 원칙은 이후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도 좀처럼 복원되지 않고 있다. 후보군 중 가장 나은 감독을 선임하자는 단순한 원칙. 그런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자리에서 마이클 뮐러 당시 협회 전력강화위원장은 “그가 한국을 좋아한다”는 식으로만 이유를 설명했다. 무원칙을 넘어 무성의했다. 비슷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통역사는 “질문을 전달드렸지만 같은 말씀만 한다”고 머쓱해했다. 홍명보 감독에 대해서도 이번에 이임생 이사 역시 “원 팀을 만드는 리더십” 같은 뜬구름 잡는 말만 늘어놓았다. 왜 클린스만이, 홍명보가 다른 후보군보다 더 나은 감독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이러니 협회 고위층 ‘인상 평가’로 뽑았다는 후문만 한가득이다.
협회는 2014년 ‘깜깜이 행정’으로 뽑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2018년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는 그 과정을 전부 투명하게 공개했고, 더 나은 감독을 초빙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홍 감독 역시 당시 협회 전무로서 이 과정에 기여했다. 이 원칙을 지킨 뚝심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끌었다고 본다.
이번 ‘깜깜이 행정’으로 덕을 본 건 과거 함께 원칙을 지키려 노력했던 홍 감독이다. 그는 이번 감독 선임 과정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홍명보호가 남은 월드컵 예선과 본선을 잘 치르길 바라지만 이런 식으로 어벌쩡 또 성공해버리면 협회가 언제 다시 제대로 돌아올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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