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김건희 여사 문자' 공방, 혼란스러운 與 전당대회
與 나경원·윤상현·원희룡·한동훈 공방전 과열
사생결단 정치 공세뿐 당 쇄신 청사진 안 보여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4)가 한창이다. 참가국들은 축구 강국들답게 경기마다 박진감 넘치는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팬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국내 축구팬은 격분하고 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으로 홍명보 울산 HD 감독이 내정된 것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있다. 5개월째 공석이던 차기 축구대표팀 사령탑이 선임됐음에도 왜 팬들은 단단히 뿔이 났을까.
대체로 대한축구협회가 외국인 지도자를 우선순위에 두고 물색해오다 돌연 국내 감독을 내정한 데 대한 불만이다. 클린스만 전 감독을 경질한 이후 5개월 동안 허송세월한 것 아니냐는 성토다. 선두 다툼을 벌이는 K리그1 클럽팀 감독을 내정한 점과 홍 감독이 태도를 바꾼 부분도 요인이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많은 팬은 축구계 혼란을 초래한 축협 수뇌부의 행정을 가장 질타하고 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면, 축구인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판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2주 앞둔 가운데 4명의 당권주자 간 신경전이 과열되고 있다. 선거는 치열하게 다투는 과정의 연속이다. 후보 간 충돌이 불가피하다. 다만 선거에서의 경쟁은 유권자에게 왜 내가 권력을 가져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자체여야 하는데, 여당 당권 경쟁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여당 당권 레이스는 한동훈 당대표 후보와 김건희 여사의 '문자 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첫 방송 토론회에서도 지역 합동연설회에서도 당대표 후보들의 메시지는 온통 '문자 읽씹(읽고 무시)'에 관한 것들로, 총선 참패 이후 당의 쇄신과 발전을 위한 청사진은 찾아보기 힘들다. '믿어 달라' '당대표가 되면 잘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설명이 부족하다. 우리가 감독을 뽑았으니,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한 데 대해 축구 팬은 '뭔소리야'라고 반응한다. 이것과 크게 다를까. 한 후보가 김 여사가 다섯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음에도 답장하지 않은 의도와 실제 김 여사가 명품가방 수수와 관련한 사과 의사의 진실성, 문자 유출 배후 등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도 모자라 당 외부 인사들까지 문자 진실 공방에 가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득 김 여사가 당대표 후보인가 착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실은 전대 개입에 선을 그었음에도 당권 주자들이 너도나도 문자 논란을 들먹이는 영향일 것이다. 김 여사가 비대위 차원이 아니더라도 대국민 사과를 결심했다면 그대로 실행했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뒷말이 들린다. 물론 주변의 만류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 않았을까 싶지만. 전대 이후 당정관계가 걱정될 만큼 김 여사 문자 논란은 이번 전대에 너무 깊이 파고든 듯하다.
한 후보가 지난 9일 방송 토론회에서 김 여사의 문자를 전부 공개하면 정부와 대통령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발언한 것만 봐도 그렇다. 영남권 한 의원은 "정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무엇을 암시하는지 느낌적으로 알 텐데 갈수록 (당권 경쟁이) 아슬아슬하다"고 했다. 급기야 문자 논란에 이어 한 후보의 '밀실 공천(사천)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점입가경이다. 당 지도부와 선관위의 자제 요구가 무색하다.
후보 간 설전도 도를 넘고 있다. 원희룡 후보가 11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사천 의혹, 사설 여론조성팀 의혹, 김경율 금감원장 추천 의혹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사실이면 사퇴할 건가"라고 묻자, 한 후보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면서 "마치 노상 방뇨하듯 오물 뿌리고 도망가는 거짓 마타도어 구태정치"라고 받아쳤다. 원 후보는 총선 고의 패배 의혹을 주장하며 한 후보를 몰아세우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 공세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사생결단식 난타전을 벌이는 당권 주자들은 당이 난처해지는 것을 알까.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탄핵 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민심 읽씹과 무차별 국정 사유화 앞에 남은 것은 오직 특검뿐"이라며 대통령 내외를 향한 공세를 예고했다. 당권 주자가 공세 빌미와 명분을 내주는 셈이다. 혼란스러운 전당대회다. 최근 만난 한 여당 인사의 말에서 축구팬의 분통만큼이나 답답함이 묻어났다. "왜 지금 1월의 문자로 난리인가. 이번 전대는 김 여사가 시작이자 끝이자 결과일 것이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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