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의 스시 한 조각] [175]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로 알려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는 원문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를 창의적으로 의역한 초월 번역의 걸작 사례로 꼽힌다. 이 문장은 일본에서는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불 거야!”로 번역된 바 있다. 일본어에는 ‘바람에 맡기다’는 표현이 있다. 돛단배가 바람에 갈 길을 맡기듯, 어려움이 닥쳐도 낙담하지 말고 일이 되어가는 상황에 맞춰 대처하면 된다는 의미로 통한다. 내일은 내일의 바람이 분다는 일어 번역은 이러한 연상 작용을 이용한 절묘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止まない雨はない)’가 있다. 이에는 오이가와(大井川)에 얽힌 스토리가 전해진다. 오이가와는 도쿠가와 막부의 본거지 슨푸(駿府)와 에도 사이의 간선 교통로를 가로지르는 강이다. 막부는 군사적 이유로 이 강에 다리를 놓는 것은 물론 배를 띄우는 것조차 금지했다. 강을 건너는 유일한 방법은 ‘가와고시닌소쿠(川越人足)’라 불리는 인부들이 사람과 짐을 어깨에 메고 나르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때그때 수위에 따라 통행료가 다르게 책정되었다는 것이다. 허벅지-허리-가슴-어깨 수위 순으로 통행료가 올라갔고, 그 이상 수위가 높아지면 아예 통행이 금지되었다. 장마나 호우로 물이 불어나면 여행자들은 발이 묶이고 인부들은 돈을 벌지 못해 며칠이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이때 이들이 초조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였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이 또한 지나가리(This too shall pass)’와 비슷한 자기 위안의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마철에는 사람들의 심신이 처지고, 경제활동도 위축되곤 한다. 마음먹은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에는 잠시 걱정을 내려놓고, ‘그치지 않는 비는 없음’을 떠올리며 비 그친 뒤를 준비하는 마음 가다듬기 시간을 가져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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