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기꺼이 받아들였던, 우정

2024. 7. 11.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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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 환경서 자란 두 소녀
차곡차곡 우정 쌓아가며 성장
첫사랑 등장에 점차 멀어지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우정

칭산 ‘칠월과 안생’ (‘칠월과 안생’에 수록, 손미경 옮김, 한겨레출판)

단편에서 내가 아직 시도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긴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나 두 여성의 우정을 조명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더 몰입해서 읽게 된다. 시간이 긴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인물이나 삶을 흘긋 보고만은 쓸 수가 없고, 인물이 산 삶만큼이나 작가가 깊이 있게 인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고 나면 단편임에도 방대한 이야기를 읽은 듯한 부피감이 마음이 남는다. ‘칠월과 안생’도 그렇다.

칠월에 태어나 이름이 칠월(七月)은 열세 살 때 안생(安生)을 처음 만났다. 칠월은 소심하고 모범생이며 모험으로 보이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인데, 입학식 날 “우리 운동장 돌래?” 하고 말을 건네는 그 애를 따라 그렇게 하고 그러다가 찾아낸 오래된 녹나무를 그들의 아지트로 삼게 되었다. 훗날 칠월은 자신이 사랑하게 된 가명(家明)에게 안생을 처음 만난 그 순간이 자신에게 온 어떤 선택이었으며 자신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 설명할 수 없는 관계를, 미워할 수 없는 우정을.
조경란 소설가
그 후 성격도 꿈도 다른 “칠월과 안생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부모로부터 방치되다시피 한 안생은 칠월의 집에서 복닥거리며 가족들과 밥을 먹을 때 편안해 했다. 차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것들, 갖지 못하거나 부족한 것들을 알아가게 되었다. 가명이 등장했을 때는 독자도 짐작하게 된다. 이 사람 때문에 칠월과 안생의 우정에 틈이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그들은 교외로 놀러 갔다가 작은 절을 발견했다. 힘이 들어 밑에 남아 있던 칠월은 법당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안생과 가명을 보며 깨닫는다. 사랑하는 남자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하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건 그 순간이 지나야,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진실일까. 세 사람의 시간은 갈라진다. 졸업과 취업, 그리고 안생은 떠돌아다니는 삶 쪽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안생은 달라지고 메마른 모습으로 칠월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칠월은 궁리한다. 자신과 달리 집도 없고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없는 안생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은 안생은 그때 이미 칠월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칠월처럼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행복할지 모른다고.

우정, 글쓰기, 두 여성과 한 남자, 청춘, 세월, 자유, 방랑, 죄의식, 생명. 긴 시간 속에 세 사람의 이러한 운명이 담겨 있다. 칠월은 안생을 처음 만났을 때, 기꺼이 그녀를 받아들이면서도 녹나무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나무 위에 새처럼 앉은 친구를 올려다볼 뿐.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쩌면 칠월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아서였을지 모른다. “나눠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을 같이 원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칠월과 안생은 자신들의 우정을 조율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상처받거나 다치지 않게. 난산으로 안생이 사망한 후에 칠월과 가명은 그녀의 아기를 입양한다. 안생이 쓴 원고 ‘칠월과 안생’도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들의 긴 미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런 인물의 미래는 보통 슬프거나 불행할 가능성이 크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이것이지 않을까. 그들은 살았다, 라는 말.

이 단편이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원작이다. 어떤 장르를 먼저 접하든 원작과 영화 모두 찾아보게 되는 작품이 있는데 ‘칠월과 안생’도 그중 한 편이다. 소설과 영화가 서로의 장르에 도움이 되었다고 수긍하게 되는. 우정이라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그런지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힘들다. 칭산은 누구보다 대중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므로. 칠월과 안생. 이 소설은 누구를 위해서 썼을까? 문득 그런 질문이 들었다. 솔 메이트라고 여겼던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독자.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인 우정과 시간을 가져본 적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단편이 아닐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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