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얇은소설] 기꺼이 받아들였던, 우정
차곡차곡 우정 쌓아가며 성장
첫사랑 등장에 점차 멀어지지만
그래도 미워할 수 없는 게 우정
칭산 ‘칠월과 안생’ (‘칠월과 안생’에 수록, 손미경 옮김, 한겨레출판)
단편에서 내가 아직 시도해보지 못해서 그런지 긴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나 두 여성의 우정을 조명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더 몰입해서 읽게 된다. 시간이 긴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은 인물이나 삶을 흘긋 보고만은 쓸 수가 없고, 인물이 산 삶만큼이나 작가가 깊이 있게 인생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그런 소설을 읽고 나면 단편임에도 방대한 이야기를 읽은 듯한 부피감이 마음이 남는다. ‘칠월과 안생’도 그렇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붙들어 둘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건 그 순간이 지나야,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진실일까. 세 사람의 시간은 갈라진다. 졸업과 취업, 그리고 안생은 떠돌아다니는 삶 쪽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안생은 달라지고 메마른 모습으로 칠월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칠월은 궁리한다. 자신과 달리 집도 없고 미래를 약속한 사람도 없는 안생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세상과 사람에게 상처받은 안생은 그때 이미 칠월을 두고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칠월처럼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사람이 행복할지 모른다고.
우정, 글쓰기, 두 여성과 한 남자, 청춘, 세월, 자유, 방랑, 죄의식, 생명. 긴 시간 속에 세 사람의 이러한 운명이 담겨 있다. 칠월은 안생을 처음 만났을 때, 기꺼이 그녀를 받아들이면서도 녹나무에는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나무 위에 새처럼 앉은 친구를 올려다볼 뿐.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어쩌면 칠월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아서였을지 모른다. “나눠 가질 수 없는 어떤 것을 같이 원하게 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는.
칠월과 안생은 자신들의 우정을 조율하고 싶어 한다. 누구도 상처받거나 다치지 않게. 난산으로 안생이 사망한 후에 칠월과 가명은 그녀의 아기를 입양한다. 안생이 쓴 원고 ‘칠월과 안생’도 출간되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그들의 긴 미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런 인물의 미래는 보통 슬프거나 불행할 가능성이 크지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이것이지 않을까. 그들은 살았다, 라는 말.
이 단편이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원작이다. 어떤 장르를 먼저 접하든 원작과 영화 모두 찾아보게 되는 작품이 있는데 ‘칠월과 안생’도 그중 한 편이다. 소설과 영화가 서로의 장르에 도움이 되었다고 수긍하게 되는. 우정이라는,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여서 그런지 읽기 시작하면 책장을 덮기 힘들다. 칭산은 누구보다 대중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작가이므로. 칠월과 안생. 이 소설은 누구를 위해서 썼을까? 문득 그런 질문이 들었다. 솔 메이트라고 여겼던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독자.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인 우정과 시간을 가져본 적 있는 사람들을 위한 단편이 아닐까.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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