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가 만난 사람]“귀농해보니 농업정책, 현장과 괴리… 예산 뿌린뒤 결과는 안챙겨”
“경쟁력 개선 급한데 달라진게 없어… 생산비용 낮춰 규모화-대형화해야
귀농귀촌에 대한 국민들 기대 줄어… 농촌 사는 게 수지맞아야 청년 온다”
―요즘은 어떤 농사를 짓고 사시나.
2016년 9월 장관직을 그만둔 다음 날 내려왔으니 귀농을 한 지는 올해 9월로 8년이 된다. 국회의원을 했으면 두 번이나 했을 기간인데 아직은 초보 농사꾼이다. 마늘, 고추, 작약 등을 기른다.
―농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어떤가.
이전에는 그래도 농사로 수입을 조금 올리곤 했는데 지금은 거의 벌어들이는 게 없다. 큰 농기계가 있어야 돈 버는 농사가 가능한데 며칠 일하자고 개인적으로 기계를 살 수도 없고 농사를 지어도 내다 팔 곳이 마땅치 않다. 가난한 선비랄까. 나이가 들면서 무리하게 일하기도 어려워졌다.
―요즘 이상 기후 때문에 농사일이 힘들지 않나. (이 전 장관을 만난 10일은 충청·전라도 지역에 기습폭우가 쏟아진 날이었다.)
기후변화가 매우 심각하다. 요즘도 농사철이 되면 가뭄과 홍수가 거듭되는데 선진국이 되려면 물 관리를 해서 이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재해 대책을 세우기보다 보상을 어디에 얼마나 주느냐만 얘기한다. 이러면 근본적 해결이 안 된다.
―농사일을 해보니, 공직에 있을 때와 현장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농정과 현장의 괴리가 크다. 좋은 취지의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느라 애를 쓰지만 성과 관리가 부족한 것 같다. 기업인들은 일을 하면 결과를 체크하는데, 공직자들은 어디서 예산을 따오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그 정책을 추진해서 농가소득이나 식량자급률 같은 성과를 내는지 여부가 중요한데 돈만 쓰고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지 않나. 또 주민 생활에 꼭 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하는데 공급자 위주로 대형 공사만 남발하다 보니 성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시골에도 문화회관 체육관 이런 거 크게 지어놨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장관직에서 퇴임하고 5급 공무원(경북도 정책자문관)으로 일해 화제가 됐다.
젊었을 때 “우리나라 농촌이 왜 못사는지를 공부해 오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그래서 농촌경제연구원에 취직해 한평생 연구를 하고 여러 직책도 했다. 나름 나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막상 시골에 다시 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마을은 전부 다 요양원처럼 노인들, 빈집들밖에 없고 내가 그동안 뭘 했나 자괴감이 왔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겨서 그냥 혼자 농사나 짓는 것보다는 내가 좀 거들 게 있나 싶어서 2019년부터 2년 정도 자문관을 했다. 그런데 내가 한마디로 밥값을 제대로 못 했다. 지방행정이라는 게 예산이나 역량에 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직원 한 명당 5, 6개씩 사업을 끼고 있다. 지역에 필요한 새로운 사업을 스스로 추진할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농촌이 여전히 어려운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 농업소득(순수하게 농사를 지어서 얻는 소득)이 1000만 원밖에 안 된 지 10년이 넘었다. 그렇게 많은 공직자가 매달려서 수십 조 예산을 쓰고도 농가소득이며 농촌인구며 줄어들고 이제는 농사 지을 사람도 없다. 농정의 내용과 체계를 싹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농산물은 외국보다 두세 배는 비싸다. 결국 농업 생산비용을 낮추고 품질을 높여야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데, 그것보다는 “쌀은 정부가 사준다”, “직불금 준다”는 얘기만 하고 있다. 표를 의식하니 문제의 본질은 놔두고 모두 생색내기에만 급급한 듯하다.
―생산비용을 어떻게 떨어뜨리나
농업을 규모화, 기계화, 전문화해야 한다. 농업 법인이 젊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영세소농들과 함께 들녘이나 마을 단위로 농사를 짓고 품종을 통일하고 공동 육묘와 방재를 하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져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지금은 소농들이 각개전투로 따로따로 농사를 짓는데 이래서는 효율이 생기지 않는다. 대형 농기계를 갖고 있는 농민은 흔하지 않다. 이렇게 농지와 노동력, 농기계 등 한정된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생산성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쌀 수매가격에만 집착하다 보면 농촌은 계속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전 장관은 장관 재임 시절 농촌 공동경영으로 영농 규모를 키워 생산비를 절감하는 ‘들녘 경영체’ 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한때 많아졌던 귀농 인구가 요즘 계속 줄고 있다.
정부는 도시에서 일자리가 늘어서 그렇다고 해석하는데 나는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줄었다. 농촌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다. 농사를 지어 먹고살기 힘들고 생활도 불편하다. 여기 해만 지면 밤새 깜깜하다. 청년들이 여기 와서 긴긴밤을 어떻게 보내겠나. 이 마을 초등학교는 내가 다닐 때는 한 학년이 200명이었는데 지금은 전교생이 10여 명 남짓하다.
―귀농·귀촌에 대한 정부 지원이 부족한가.
통계청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귀농·귀촌자들이 정보 제공은 많이 받지만 정작 주택 자금이나 영농 지원을 받은 사람 수는 미미하다. 귀촌자들의 경우 막상 시골에 살려면 도시 집 팔고 가야 하는데 그럴 때 양도소득세 감면은 해줘야 하지 않나. 특히 농촌 내려와서 살려면 용접 전기 목공 이런 실용적 기술이 상당히 필요한데 이런 건 안 가르치고 농산물 재배 방법만 알려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방소멸을 걱정하면서도 귀농·귀촌자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모자라는 것 같다.
―젊은 인구를 농촌으로 유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은 일자리다. 농촌에 사는 게 수지가 맞고 재미있고 보람이 돼야 온다. 개인의 삶과 행복에 관한 문제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할 때면 항상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삼농 정책을 말한다. 농사일의 수익성이 높아야 하고(후농·厚農), 농사짓기가 수월해야 하고(편농·便農), 농민의 자긍심이 높아져야 한다(상농·上農). 농업은 다른 사람의 먹거리를 생산해 주는 고귀한 직업, 뿌린 대로 거두는 정직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후변화로 과수농가들의 위기감도 크다.
경북 최고 특산품이라는 사과를 예로 들어 보자. 사과도 개인적으로 재배, 판매하지 말고 과수 농가와 관련 사업자끼리 연대해야 한다. 봄철 사과꽃은 환상적이고 가을 사과밭도 아름답다. 사과 농가들이 품종 기술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시설·장비를 같이 쓰고 판매도 공동 브랜드로 해야 한다. 사과밭에 약 치는 것도 공동으로 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굳이 객지에 나가서 사과를 팔지 말고 사람들을 끌어들여 보자. 미국 내파밸리처럼 ‘애플 밸리’를 만들어서 사과를 원료로 한 음식과 체험 및 관광을 연계하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사과값 급등 때문에 난리인데 외국에서 수입하면 안 되나.
자칫 검역을 완화했다가 과수화상병 같은 게 발생하면 피해가 매우 크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허락해 주기가 쉽지 않다. 그보다는 저탄소농업으로 사과 생산비를 떨어뜨리고 보기 좋은 사과보다 맛있고 먹기 좋은 사과를 생산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금사과 사태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수입을 영영 막을 수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남아도는 쌀은 어떻게 해야 하나.
쌀농사가 비교적 편하고 오랫동안 정부가 쌀농사 우선 정책을 펴왔기 때문에 농가에선 쌀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량보다 많은 쌀이 생산되지 않도록 생산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 양곡관리법 같은 수매 제도를 다시 도입하면 당장은 농민들에게 좋아 보이지만, 그게 장기적으로 농업농촌에 도움이 될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남아도는 쌀을 고집하기보다 부족한 다른 식량 작물을 재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장관 출신이 평범한 농부로 돌아가서인지 일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이동필의 1-2-3-4’ 원칙을 지키며 산다. 1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2는 하루 두 번 들에서 일하는 것, 3은 삼시세끼 어머니와 밥 챙겨 먹는 것, 4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동무하며 지내는 것이다.
이동필 전 장관은… |
△1955년 경북 의성 출생 △1978년 영남대 축산경영학과 졸업 △198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연구위원 △2011∼20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2013∼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박근혜 정부) △2019∼2020년 경북도 농촌살리기 정책자문관 |
의성=유재동 경제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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