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저도 ‘우리 수빈이’였는데···” 원조 ‘잠실 아이돌’에서 어느새 베테랑, 정수빈의 격세지감
두산 정수빈은 10일 수원 KT전 패전 후 본의 아니게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6-6 동점이던 연장 10회말, 2사 1·3루에서 강백호의 타구를 잡지 못해 끝내기 안타를 내줬다는 것이었다. 강백호에게 맞은 투수가 다름 아닌 올 시즌 팀 내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인 김택연이었기에 좀 더 고생해야 했다. 쉬운 타구는 아니었고, 정수빈이 아니라면 낙구 지점까지 따라가기도 쉽지 않았을 수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
11일 경기, 정수빈은 전날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냈다. 1번 타자 중견수로 출장해 공수에서 맹활약했다. 1-0, 1점 차로 앞서던 2회초 무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를 때려내며 확실하게 흐름을 가져왔다. 8회 다시 안타를 때렸고, 9회 2루타를 추가하며 이날 하루에만 3안타를 때렸다. 전반기 막판 경기를 포함해 최근 6경기 동안 3안타 이상만 벌써 3차례다. 지난달 29일, 30일 SSG를 상대로 정수빈은 3안타, 4안타를 쳤다. 시즌 중반 다소 주춤하며 한때 헨리 라모스에게 1번 타자 자리까지 내줬지만 최근 들어서는 확실한 회복세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정수빈은 전날 끝내기 상황에 대해 “(김)택연이한테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경기하다 보면 제가 도와줄 때도 있는 것이고, 못 도와줄 때도 있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 시즌 144경기 장기 레이스를 치르는 종목 특성상 사실은 당연한 이야기다.
정수빈은 그러면서 “우리 택연이를 건드려서… 저도 예전엔 ‘우리 수빈이’였는데”라고 쓰게 웃었다. 원조 ‘잠실 아이돌’로 불렸던 정수빈이다. 두산 최고 어린 스타로 늘 한 손에 꼽혔다. 그런 정수빈이 올해로 벌써 34세, 어느새 베테랑이 됐다.
그래도 정수빈은 지난 올스타전, 수달 잠옷에 작은 책가방까지 메고 ‘어린이’ 콘셉트를 멋지게 소화했다. 여전한 동안이라 가능했던 퍼포먼스였다. 정수빈은 “제가 아직은 그런 옷도 어울리는 것 같다”며 “아내가 재미있게 해보라고 먼저 아이디어를 내줬다. 저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정수빈은 올 시즌 5월 타율 0.233으로 많이 부진했다. 라모스에게 1번 자리를 내줬던 것도 그즈음이다. 하지만 부진이 길지는 않았다. 6월 0.357로 바로 반등했고, 7월 들어서도 호조다. 정수빈은 “5월부터 많이 안 좋았는데 그때는 제가 안 좋았으니 (타순이) 밑으로 내려가는 게 맞다”며 “지금은 또 좋아졌으니까 앞으로 1번에서 더 좋은 활약 하겠다”고 말했다.
KBO를 대표하는 ‘대도’ 정수빈은 이날까지 33도루로 리그 3위다. 팀 후배 조수행과 롯데 황성빈 다음이다. 1위 조수행이 이날 대주자로 나와 시즌 40도루를 달성했다. 구단 역사상 최단 경기(81경기) 40도루 기록을 세웠다. 40도루는 정수빈도 아직 해보지 못한 기록이다. 지난해 39도루가 최다다.
정수빈은 “(조)수행이는 워낙 잘 뛰는 선수다. 앞으로 더 많이 뛰면 좋겠다”면서 “저는 도루왕 욕심보다는, 그냥 작년 39개를 넘어서는 게 개인적인 목표”라고 했다. 다만 두산에서 도루왕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뜻은 분명히 밝혔다. 두산의 오랜 ‘육상부’ 이미지에 맞게 조수행이 더 많이 뛰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수원 |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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