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처럼 끈질기게’ 살아낸 나날들…절망 넘어 마침내 “우리가 옳았다”

조해람 기자 2024. 7. 1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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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9년
기쁜 함성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함성을 지르며 기뻐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조합원 138명 중 22명 남아
알바 뛰고 빚내 버티면서도
수많은 투쟁 현장 찾아 연대
‘장기 투쟁 노조’ 씁쓸한 훈장
“공장서 정년 맞는 게 소원”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들꽃’을 상징으로 삼아왔다. 2015년 노조를 만들자마자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된 뒤, 11일 대법원의 ‘불법파견·직접고용’ 판결까지 9년 동안 해고자로 살았다. 해고자 22명은 ‘들꽃처럼 끈질기게’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두 아이의 아빠 허상원씨(54)도 그중 하나였다.

허씨는 2012년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 GTS에 입사했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점심시간 20분 만에 식은 도시락을 삼키는 날이 많았다. 2015년 허씨는 동료로부터 ‘노조가 생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사히글라스에 오기 전까지 허씨에게 노조란 ‘원청 정규직만의 일’이었다. 그는 “여기 가도 비정규직, 저기 가도 비정규직으로 많은 설움을 겪다 보니 ‘나도 노조라는 거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조(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설립 한 달 만에 GTS 노동자 178명은 문자로 해고와 공장 출입금지 통보를 받았다. 9년 싸움의 시작이었다. 노조는 광화문 광고탑 옥상부터 검찰청 앞 천막농성장까지 안 간 곳이 없었다. 불법파견과 아사히글라스 직접고용 의무를 대법원에서 인정받기 전까지 노조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1·2심 승소), 불법파견(1심 승소, 2심 패소), 부당노동행위(노동위원회 인정, 1·2심 패소) 등을 계속해서 다퉜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기 투쟁 노조’라는 이름은 기쁘기만 한 훈장이 아니었다. 첫 조합원 138명은 줄고 줄어 22명만 남았다. 전국의 수많은 투쟁 현장을 찾아 함께 싸웠지만 막상 자신들은 회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같이 연대해 싸우고, 다시 복직으로 이어진 현장을 갔을 때에도 마음이 복잡했다. 허씨는 “보람차면서도 부러웠다”고 말했다.

오랜 투쟁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생계 문제였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날이 많았다. 다른 조합원들처럼 허씨는 낮에는 노조 활동을 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하며 돈을 벌었다. 4인 가족의 가장에겐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다.

투쟁 초기의 어느 날 허씨의 고등학생 딸이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학원 문 앞에서 딸은 “안 갈래” 하고 뒤돌아 울었다. 없는 돈을 끌어모아 다시 학원 등록을 해줬지만 이 일은 허씨의 기억에 박혔다. 그는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아버지·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니 미안했고, 때로 참지 못해 나쁜 말을 하기도 한 게 마음에 남는다”고 했다. 허씨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아직 결과가 안 나올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빚을 내면서 버텼다. ‘생계팀’ 조합원들은 평일에는 생업을 하며 일정 금액을 노조에 지원하고, 주말이면 ‘투쟁팀’을 대신해 농성장을 지켰다.

허씨는 이날 동료들과 대법원을 찾아 선고를 들었다. 조합원들은 투쟁 3288일째이던 지난달 29일 9주년 결의대회에서 입었던 ‘32팔팔 티셔츠’를 이날도 맞춰 입었다. 허씨는 “마지막으로 내가 옳았다는 걸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9년의 싸움을) 버틴 것 같다”며 “결국 올바른 판결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허씨는 “공장에 가서 정년을 맞고 싶은 것이 작은 소원”이라고 했다. 대법원 선고 후 눈시울이 붉어진 허씨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이겼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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