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의 문헌 속 ‘밥상’]떡볶이
“전복과 해삼을 물러지게 삶아 썰어 냄비에 담고 가래떡을 한 치 기장으로 썰어 넣고 녹말, 후춧가루, 기름, 석이 등 여러 가지에 간장물을 풀어 냄비에 볶는다.”
19세기 조리서 <규곤요람>(연세대본)에 보이는 떡볶이의 조리법이 이렇다. 본문에는 “잔치하는 데와 술상을 보는 데에 쓰기 좋다” “볶을 때 너무 되게 볶지 말고 자연히 지적지적하게(수분이 잦아들도록) 볶는다” 등의 주석이 붙어 있다. 보신 대로다. 옛 떡볶이는 있는 집에서 마음먹고 만들어, 잔칫상이나 점잖은 술상에 낼 만한 일품요리였다. 또 다른 19세기 조리서 <주식방문> 속의 떡볶이 조리법도 읽어볼 만하다.
“떡볶이는 떡을 잡탕 무보다 조금 굵게 썰고 돼지고기, 미나리, 숙주, 고기를 담가 붉은 물을 없앤 후 가늘게 두드려 양념해 자잘하게 익혀 펴서 내고 장국을 맛나게 끓여 양념과 떡을 한데 넣어 볶아낸다. 도라지, 박오가리, 표고도 넣고 석이와 표고는 달걀에 부쳐 가늘게 썰어서 얹는다.”
1970년대까지 가냘프게 이어진 서울 문안의 떡볶이는 전근대 조리서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붉은 빛깔은 일절 없었다. 그러다 1960년대에 파천황의 떡볶이가 나타났다. 한국전쟁 이후 들어온 원조 밀가루를 한국인이 밀떡으로 소화한 덕분이었다. 떡국이며 떡볶이에 쓰는 긴 흰떡은 본디 멥쌀가루로 뽑는다. 떡의 기본은 쌀이다.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이래, 1985년 이전까지 쌀은 늘 부족했다. 쌀밥만큼이나 한국인의 원망과 희망이 맺힌 음식이 곧 흰떡이었다. 한국인은 원조 밀가루를 변용해 ‘밀떡’이라는 희대의 발명을 해낸다. 여기다 싸구려 저품위 시판 고추장이 가세한다. 감칠맛을 더할 어묵 또한 뒤따랐다.
대도시를 낀 식품산업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가장 먼저 궤도에 오른 산업 중 하나였다. 이 시기, 생계를 위해 무작정 대도시로 온 사람들에겐, 더욱이 여성에겐, 음식장사가 그나마 만만했다. 시골여성은 주방에서 매일 음식노동을 해온 이들이다. 농어촌을 떠나, 막 대도시 변두리에 터 잡은 여성들은 골목길과 시장과 길거리의 좌판 또는 포장마차로 나가 전근대 떡볶이와는 다른 붉고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떡볶이는 모두가 기억하고, 모두가 다시 사 먹을 만한 인상적인 빛깔과 선명한 맛이 있는 길거리 음식으로 다시 태어났다. 코흘리개, 청소년, 학생, 노동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싸고 배부른 떡볶이에 빠져들었다.
‘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바로 그 떡볶이는 한국 현대사와 함께 태어난 새로운 음식이다. 한국인이 유제품에 적응한 뒤로는 크림과 치즈도 껴들었다. 떡볶이에 튀김, 김밥, 순대를 더해 한 벌의 정식(定食)도 만들었다. 피자와 파스타가 대중적으로 퍼지면서는 토마토퓨레, 토마토페이스트까지 응용하고 있다. 짜장(춘장)떡볶이, 카레떡볶이, 치즈떡볶이, 크림떡볶이, 로제크림떡볶이 다음에는 무엇이 뒤따를까? 지켜볼 일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으니까. 한국형 변화무쌍과 한국형 속도전 속에서, 떡볶이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를 음식이니까.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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