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도 경영권 프리미엄 누리는 상법 개정…정부는 뒷걸음질
상법상 ‘이사의 충실 수행’ 의무 조항에 ‘일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포함되면 일반주주도 ‘경영권 매각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는 해당 내용의 상법 개정을 사실상 추진하지 않기로 한 터라 논란이 예상된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382조의3)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현재 해당 조항의 문구는 ‘이사는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태의 상법 개정과 함께 주식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함께 도입되면 대주주가 아닌 일반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 의무공개매수제는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을 취득할 때 일정 지분율 이상을 반드시 공개매수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런 맥락에서 김석봉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 전무(경영학 박사)가 2015년 재무관리연구 저널에 게재한 논문은 시사점이 있다. 이 논문에는 경영권 매각이 이뤄지는 거래의 경우 한국은 다른 나라에 견줘 지분율 50% 미만 거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담겨 있다.
구체적으로 지분율 20~50% 거래 사례는 한국이 총 55개(표본의 48%)에 이른 반면, 미국은 2.4%, 독일 14.7%, 싱가포르 19.2%에 그쳤다. 다른 나라에선 대체로 경영권 매각 거래일 때, 지분 50% 이상 거래가 일반적인 셈이다. 매각 대상 평균 지분율은 미국 94.9%, 독일 71.3%, 싱가포르 58.3%인 반면, 한국은 47.5%였다.
이 논문은 한국·미국·독일·싱가포르에서 2005년~2014년에 이뤄진 지분 20% 이상의 경영권 관련 거래 사례(한국 표본 114개, 미국 1957개, 독일 142개, 싱가포르 213개)를 분석한 것이다.
김 전무는 “시장원칙을 채택한 미국에서도 주식 양수도 제도는 이사회에 상당한 재량을 허용하면서도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우고 있고, 이사회는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충실의무를 다하고 소수주주의 피해와 분쟁을 줄이기 위해 소수지분을 매각 대상에 포함하도록 결정하는 사례가 일반적”이라며 “또 독일·싱가포르 쪽은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명시하고 있어, 해외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소수주주에게도 공유된다”고 설명했다.
한국ESG기준원(KCGS)이 2017년에 펴낸 보고서도 눈길을 끈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중에 지배주주 지분 이전을 통해 최대주주 변동이 발생한 총 47개 사례를 분석한 이 보고서는 “보유 주식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만으로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향유하는 건 주주 평등과 기회균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히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47개 사례 중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지급된 거래(총 31건·인수 지분율 50% 미만 27건)의 프리미엄 규모는 평균 50% 안팎으로, 미국·독일·싱가포르 전체 사례(2004~2014년)에서 지급된 평균 프리미엄(30% 안팎)보다 높았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만 독특하게 인수 지분율이 낮은 경영권 거래일수록 더 높은 프리미엄이 지급되고 있다”며, “소수지분 의무매수 제도 등이 도입되면 경영권 프리미엄이 지배주주뿐 아니라 일반주주에게도 공유되면서 프리미엄 지급 수준도 낮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2년께부터 정부가 상장기업 지배권 변경 때 일반주주들도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배주주와 공유할 수 있도록 의무공개매수제도(지분 50%+1주)를 재도입(외환위기 직후 폐지됨)하는 쪽으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오랜 찬반 논란 속에 사실상 논의는 중단돼 있다.
이를 염두에 두면 우리나라 상법에 ‘일반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란 문구가 추가될 경우 지배주주의 경영권 매각 성사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일반주주도 경영권 프리미엄 수혜를 누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상법 개정이 배당 및 자사주 매입·소각 같은 주주환원 영역이나 회사 물적분할 같은 이슈를 넘어 경영권 매각에도 효과를 낳는다는 얘기다.
조계완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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