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돌멩이가 품은 건…백만년간 쌓인 색색의 기억[그림책]
나는 돌이에요
지우 글·그림
문학동네 | 60쪽 | 1만8000원
돌은 백만 년을 살았다. 아마 별일이 없다면 또 백만 년을 살 것이다. 돌은 혼자 움직이진 못하지만 백만 년 뒤엔 지금 자리에 있진 않을 것이다. 당장 내일 없을 수도 있다. 돌은 늘 누군가의 발에 차여 구덩이에 빠지고, 물에 잠겼다가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다시 햇빛이 있는 곳으로 나온다.
<나는 돌이에요>는 돌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땅에 작은 돌 세 개가 놓여 있다. 돌은 백만 살이다. 돌인 줄 알았던 것에서 갑자기 싹이 돋아난다. 돌이 아니라 콩이었다. 콩잎이 하나둘 돋아나자 이번엔 또 다른 돌인 줄 알았던 것에 금이 간다. ‘짹!’ 우렁찬 소리와 함께 새가 태어난다. 돌도, 콩도 아니라 새알이었다. 콩이 열매를 맺고, 새가 알을 깨고 날아가는 동안 진짜 돌은 그 자리에 가만히 존재한다. 지나가던 개의 발에 차여 돌은 물이 고인 구덩이에 빠진다.
주위의 것들이 떠나가도, 발길질 한 번에 돌돌 굴러다녀도 돌은 슬퍼하지 않는다. 돌은 백만 살이니까. 세상을 다 익혀버릴 듯한 태양의 계절, 소음조차 눈으로 덮어 버리는 고요한 계절을 지나며 돌은 점점 땅 밑으로 가라앉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냥 검은색이었던 돌의 표면에 색색의 기하학적 무늬가 늘어난다. 돌의 표면에 새겨진 것은 상처가 아니라 기억이다. 어떤 기억은 소리다. 오십 년 만에 만난 부평국민학교 동창 산악회의 왁자지껄한 발자국. 어떤 기억은 촉감이다. 뾰족뾰족한 밤송이. 앞발을 핥는 고양이의 열두 번째 털. 행진하는 사람들의 횃불에서 떨어진 작은 재. 어떤 인간도 눈으로 보지 못한 오래된 기억도 있다.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잇자국.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표현한 땅속과 돌의 모습이 재미있다. 작가는 자신이 발로 차버린 돌멩이에 영감을 얻어 이번 그림책을 구상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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