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휘의 시네필] ‘퍼펙트 데이즈’ 삶의 성실성에 깃든 영화의 존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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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1985)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유산을 답사하며 헌정사를 바친 바 있던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2023)에선 현대 도쿄를 무대 삼아 한 소시민의 일상 드라마를 찍는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인터뷰에서 스스로 오즈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이 만들어지고 60년이 지나 촬영한 작품이라는 의의를 밝힌 바 있고, 주인공의 성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도 '동경 이야기'(1953)에서 류 치수가 연기한 배역을 따라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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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가’(1985)에서 오즈 야스지로의 유산을 답사하며 헌정사를 바친 바 있던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2023)에선 현대 도쿄를 무대 삼아 한 소시민의 일상 드라마를 찍는다. 칸영화제 공개 당시 인터뷰에서 스스로 오즈의 마지막 영화 ‘꽁치의 맛’(1962)이 만들어지고 60년이 지나 촬영한 작품이라는 의의를 밝힌 바 있고, 주인공의 성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도 ‘동경 이야기’(1953)에서 류 치수가 연기한 배역을 따라 지은 것이다.
허우샤오시엔이 쇼치쿠 영화사의 제작에 현지 로케이션으로 ‘카페 뤼미에르’(2003)를 찍었듯, 벤더스 역시 오즈의 세계에 한 줄 주석을 더하고자 이 영화를 만든 셈이다.
‘만춘’(1949)부터 두드러진 오즈의 영화적 정수는 무심히 흘러가는 일상의 풍경을 소묘하고, 그 안에 처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낄 법한 감정의 여운, 생활의 감각에 동참케 해준다는 데 있다. 다른 방식으로 촬영하지만 벤더스는 오즈의 정신을 정확히 알고, 그에 필적할 공감각적인 순간들을 창조해 낸다.
영화의 카메라는 히라야마의 일상을 여과 없이 따라간다. 빗자루 소리에 잠이 깨면 출근해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고, 공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로 점심을 해결하는가 하면, 퇴근 후에는 목욕과 술 한잔으로 그날의 때를 씻어내고 잠이 들기 전 독서로 일과를 마무리한다. 사소한 순간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가 도돌이표처럼 끊임없이 반복돼 다리 아래 흐르는 스미다강의 고요한 물결처럼 삶의 시간은 이대로 평온히 흘러갈 것만 같다.
수행에 매진하는 승려를 방불케 하는 히라야마의 규칙적인 생활을 밀도감 있게 그려내면서, 영화는 매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일의 충만함을 만끽케 한다.
동료 청소부인 타카시는 변기를 구석구석 꼼꼼히 청소하는 그를 두고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텐데”라며 투정한다. 이러한 삶의 성실성은 ‘잇쇼켄메이’(一生懸命)라는 일본적 삶의 한 이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매일 맞이하는 삶의 순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소중히 대하는 히라야마의 태도에는 영화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가 깃들어 있다.
블루칼라 노동자로 살아가지만 히라야마는 올드팝을 즐겨듣고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를 탐독하는, 언뜻언뜻 교양인 면모를 내비치는 묘한 인물이다. 분재를 가꾸고, 카세트테이프를 틀고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그의 문화적 취향은 온통 옛것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낡아서 사라져가는 지난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나중은 나중이고 지금은 지금’(今度は今度, 今は今)이라는 말처럼, 그는 자신이 사는 세계가 머잖아 무너질 것을 알고, 그러기에 덧없이 스러져가는 삶의 순간을 영원처럼 붙잡으려 한다.
필름으로 촬영한 사진을 다락에 보관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진이란 이미지를 통해 스쳐 지나가는 현실의 그림자(影), 찰나의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는 예술의 형식 아니던가? 사진 한 장마다 삶의 희로애락이 있고, 차곡차곡 쌓인 이미지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 한 편의 서사시를 완성한다. 우리는 그것을 ‘영화’라 부르며 때로 눈물짓고, 때로는 환희에 젖으며 지켜볼 것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빔 벤더스가 그리는 우리 시대 영화의 존재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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