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어질지 않은 까닭은
바로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러셨지요. 해와 달, 새들의 찬미 노래를 들으셨지요. 누구도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온 주님이시여, 언니 햇님, 달, 별, 바람, 땅, 꽃들의 찬미를 받으소서.
성인께서는 심지어 죽음까지도 ‘우리의 누나’라 부르면서 이리 노래합니다.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우리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태양의 찬가, 최민순 역)
사실 곰곰 생각해 보면 해님은 석달, 삼년 가뭄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바람도 태풍 되어 땅 위 모든 것을 쓸어 가기도 하니 마냥 우리에게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성인은 이들을 언니라 부르며, 죽음조차도 우리 누나라 하며 그들의 찬미를 받으시라 노래합니다.
저 옛날 욥기 저자가 그랬지요. “하느님의 입김에서 얼음이 나오고…. 먹구름을 물기로 가득 채우시고 번개 구름에서 빛을 흩으심”(욥 37, 10-11)을 찬미합니다. 힘센 사자의 식욕과 사슴의 산고(産苦), 주검 위에 떠도는 독수리를 통해 당신을 찬미하지요.
나에게 이로울 때면 당신을 찬미하고 나에게 고통이 오면 당신을 원망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있음들이 세상의 모든 있음을 내신 당신을 찬미합니다.
노자(老子) 제5장 ‘천지불인(天地不仁)’이란 대목이 바로 이 깊은 하늘의 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어질지 않다니 이 무슨 말씀인가. 사람들은 자기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하늘이 어질다며 감사드리고 나쁜 일이 닥치면 아이구 하늘도 무심하시지 원망합니다. 하지만 하늘이 어디 이 개체 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내 종이랍니까.
중국 명나라 스님 감산은 이 구절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인(仁)은 생명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마음이다. 천지는 생명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는 어진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어질지 않다고 말한 것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하지만 분별로 그런 것이 아님을 뜻한다.”
24살에 요절한 중국 위나라의 왕필은 “천지는 스스로 그러함에 맡기니 인위나 조작이 없으며 만물이 스스로 서로 다스리므로 천지는 어질지 않다.”고 풀었습니다. 감산 스님이나 왕필이 말한, 분별이니 인위 조작이 없다는 건 더 쉽게 말하면 개체 중심의 이기적 생각과 행동을 벗어나 있다는 겁니다.
마당에 핀 저 봉숭아가 어디 나 좋으라고 내게 손짓한다던가요. 프란치스코 성인이 노래한 해와 달이 어디 나에게 이로워서 우리 언니라던가요.
‘나’중심의 분별이나 인위조작을 떠나면 나는 마당의 봉숭아가 몸을 흔들며 기뻐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걸 알아볼 수 있고, 주검 위를 떠도는 독수리며 나를 데려가는 죽음을 향해서도 우리 누나라 부를 수 있겠지요.
오늘도 우리 구순 노모는 대문 앞 계단에 앉아 골목길 사람들 구경을 합니다. 그러다가 지나던 할머니들이 옆에 와 앉아 잠시 쉬게 되면 별별 시시한 얘기들을 함께 나눕니다. 엊그제는 한 아가씨가 노모가 길을 잃은 줄 알고 “할머니 왜 여기 앉아 계세요, 집이 어디세요, 점심은 드셨어요?”하고 걱정하더랍니다. “이것 좀 드셔 보세요” 하며 사탕을 주고 가는 아저씨도 있으니 아직은 이 골목이 사람 사는 동네입니다. 노모의 계단 사랑방 단골손님은 바로 맞은편 집에 사는 아줌마입니다. 몇해 전 같이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고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덩그런 단독 주택에서 혼자 삽니다. 수입이 거의 없어 수도도 전기도 다 끊기고 끼니는 근처 교회며 성당을 돌아다니며 해결합니다. 아줌마는 정신도 온전치 않고 가끔 심술이 나면 무어라 욕을 하며 대문 밖 골목길에 쓰레기를 집어 던집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그걸 치웁니다. 평생 일손을 모두 내려놓은 어머니에게는 매일 아침 골목 청소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요 보람이지만 앞집 아줌마가 일부러 집어 던진 쓰레기를 치우는 일은 영 내키질 않는지 치울 때마다 매번 무어라 구시렁대시는 거였죠. 그런데 얼마 전부터 어머니의 계단 사랑방에 그 아줌마가 놀러 와서는 한 두시간씩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친해지니까 교회에서 얻어 온 과자며, 어디서 났는지 주스도 가지고 옵니다. 아무거나 받아 드시지 말라고 해도 노모는 아주 그 아줌마와 친구가 되어 음식을 나눕니다. 아줌마는 노모가 계단에 없으면 불러내기도 하고 사람들이 저더러 ‘또라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습니다.
그동안 정신 나간 아줌마의 기행이 우리 집 식탁의 얘깃거리였는데 노모와 친구가 되고부터는 차츰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별종이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된 거죠. 동정이나 비난의 대상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이웃.
그래도 여전히 갑자기 심술이 나면 아줌마는 주워 온 쓰레기들을 냅다 골목길에 집어 던집니다. 노모는 무어라 무어라 하며 또 그걸 치우고.
하늘은 왜 저 아줌마의 몸과 마음을 저리 내신 걸까요. 이쁜 몸에 자비로운 마음씨를 저이에게 주셨더라면 돈 잘 버는 멋진 남편 만나 사랑받으며 살다가 말년에는 자식들 효도 받고 우리 어머니처럼 이웃에게 도움도 주어가며 잘 살 수 있었을 터인데 말이죠. 한겨울에 난방도 없이, 밤이면 칠흑 어둠 속에서 지내고, 새벽이면 지하철역에 세수하러 가는 고달픈 인생. 우리네 개체들의 분별과 인위의 눈으로 보면 정말이지 하늘은 어질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분별과 인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 개체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 주고 목마른 이 마실 것 주고 나그네 따뜻이 맞아 주고 헐벗은 이 입을 것 주고 병든 이 돌보아 주고 감옥에 있는 이 찾아 주라고 당부하신 게죠. 그게 바로 예수님 당신께 해 드린 거라시면서.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이 분별과 인위의 개체들 세상에서 자유롭게 되어 당신 앞에 서면, 저 앞집 정신 나간 아줌마나 그 친구 우리 구순 노모나 주검 위를 떠도는 독수리나 봉숭아나 분꽃이나 다 평등하여 당신을 찬미할 겁니다.
김형태 변호사
*이 시리즈는 김형태 변호사가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공동선>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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