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계, 위기를 기회로
최근 정부는 '자율성 기반 R&D 생태계 구축' 방안을 발표하였고, 이의 실행을 위한 '2025년 R&D 예산 내역을 공개하였다. '선도형 R&D로의 전환'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정부는 내년 주요 R&D 예산을 올해의 21.9조원 대비 2.9조원 증가한 24.8조원 규모로 편성하였다.
특히 출연(연) 예산은 올해 1.88조원에서 11.8% 증가한 2.1조원이며, 그 중 주요 사업비는 21.8% 이상 확대하였다. 증가된 사업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12대 국가전략 기술 분야 등)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출연(연)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대형사업 및 출연(연) 간 융합사업에 적극 투자하는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소규모 파편화된 과제들을 지양하고 중점 투자 분야는 예산을 많이 늘린 것이 눈에 띈다.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의 3대 게임체인저 기술에 적극 투자하고, 기존 기술 수준을 10배 이상 퀀텀 점프할 수 있는 혁신·도전형 R&D 분야에 약 1조원을 투자하고 연구의 수월성, 전략성 및 안정성 확보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기초연구 분야에 역대 최대 규모인 2.94조원을 투입하게 된다. 또한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반도체, 차세대통신 분야 등 국가 주력산업 분야는 초격차 확보를 위해 2.4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매우 시의적절한 투자라고 판단된다.
그런데 연구계 일각에서는 '23년 대비 예산 증액은 거의 없다'라는 평가가 있다. 그 평가도 당연히 맞는 말이다. 금액만 놓고 보면 작년에 'R&D 예산 조정'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2025년 R&D 예산은 이번 정부의 발표보다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예산 총액보다는 정부의 새로운 R&D 투자 방향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지금 세계는 '기술 패권'을 넘어 '기술 안보'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이는 과거에는 군사력이 한 국가의 안보를 좌지우지했다면 지금은 기술력이 그 나라의 안보까지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의미하며, 우리나라도 우리의 경제 안보를 확실히 지키기 위해 '국가전략기술'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혁신 방안의 주요 키워드인 선도형 R&D로의 전환,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으로 대표되는 출연(연) 간 대형 융합 사업, 국제공동연구를 통한 외연 확장 등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R&D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한 것으로 평가한다.
한편 올해 초 정부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공공기관 지정 해제를 발표하였으며, 이로써 출연연은 기관 운영에 큰 자율성을 부여받았다. 세계적인 석학을 초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기관의 미션과 중점 연구 분야에 맞는 조직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출연(연)이 공공기관에서 해제가 되었지만, 여전히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성격의 연구기관인 만큼 국가사회 발전을 위한 역할과 책무는 그대로 남아있다. 즉, 출연(연)은 국가 발전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과학기술을 개발하고, 국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R&D 예산 조정이 발표된 직후 연구 현장에서 다소 혼란이 있었지만 일선 현장의 연구자들은 늘 그래왔듯 묵묵히 최선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왔다. 이는 연구자 특유의 끈기와 사명감에 기인한 것이다. 사실 우리 연구자들의 노력과 사명감이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전의 밑바탕이었던 것이다.
이제 기타 공공기관 해제와 함께 정부에서 부여한 출연(연)의 자율성과 R&D 예산 지원 노력을 이해하고 새롭게 출발할 때이다. 자율성을 보장받은 출연(연)으로선 책임지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율(自律, autonomy)은 '남의 지배나 구속을 당하지 않고 자기가 세운 원칙에 따라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이다. 과거 공공기관일 때 각종 규제로 인해 경직된 조직문화로 출연(연)이 명확한 책임 의식 없이 운영되어 왔다면 이제는 출연(연)이 해야 할 임무를 스스로 정하고 그 임무를 자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모두가 지혜와 힘을 모아 노력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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