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묵의 디톡스] 산재보험 60년, 이순(耳順)이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산업재해보상보험(산재보험)은 1964년 7월 1일에 시행되어 올해로 60년을 맞았다. 산재보험은 1963년 도입됐는데,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500인 이상 사업장에 우선 적용하는 것으로 해서 도입한 것이다. 4대 사회보험 중 산재보험이 가장 먼저 생겼고, 두 번째는 직장의료보험으로 1977년이니 무려 13년의 차이가 있고, 그 11년 뒤인 1988년에 국민연금이 생겼고, 다시 7년 뒤인 1995년에 고용보험이 도입됐다.
사회보장제도 중 가장 먼저 역사에 등장한 것은 노동자에 대한 것으로, 독일에서 1883년 노동자를 위한 질병보험과 1884년 산재보험을 출범시킨 것이 최초이다. 통일 독일의 초대 수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금속 기계 제철 등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키는 가운데 열악한 작업환경 등으로 사망자와 중증질환자가 속출하는 것을 보고 산재보험을 도입한다. 그 이전 독일에서는 산재노동자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책임배상법’에 따라 사업주의 귀책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사업주의) 과실책임 입증주의’에 입각해 있었고, 사고의 20% 정도만 보상받는 문제가 있었다.
인류 역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보호하는 최초의 법은 영국의 공장법(1802년 시행)인데, 핵심은 9세 미만 아동의 노동금지, 9~19세 미만 아동·청소년과 여성은 야간 노동 금지가 주요 내용이었다. 산업혁명 당시의 도시인구 과밀화와 불결한 위생,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작업환경 등으로 대표적인 공업도시 리버풀 시민의 평균수명은 지주와 자본가는 35세, 농민과 상인은 22세였는데, 노동자는 15세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채드윅 보고서, 1842).
남성노동자의 조기사망과 이로 인한 여성의 노동에 따른 조기사망, 출산율 저하, 아동 노동으로 이어지는 연쇄 반응은 국가적 차원의 노동력 부족과 함께 미래 노동력 공급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했다. 당시 산재사망과 직업병은 피해노동자가 직접 손해배상소송을 진행하면서 사업주의 과실을 입증해야 했던 관계로, 대부분이 질질 끌리면서 피해노동자는 사망해 소송이 종결되거나 패소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영국의 전철을 밟지않고 노동력 재생산을 원활히 하고자 하는 제도를 고안하는데, ‘무과실 책임주의’를 중심에 둔 인류역사상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인 산재보험을 도입하게 된다. 사업주의 과실유무와 상관없이 사업주가 책임을 지게하고 신속하게 보상하는 것이 산재의 기본 원칙이 된 것이다.
지난 60년간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양적·질적 측면에서 큰 성장을 이뤘다. 1964년에 광업 제조업 5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8만 명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시작해서 2000년부터는 1명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으로 확대되었고, 현재 총 2100만 명의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그 동안 산재 적용을 제한했던 하나의 사업장에 전속해 근무했는지 여부를 뜻하는 전속성 요건이 폐지되면서 여러 곳에서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와 배달 종사자를 포함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의 길이 열린 것이 큰 변화이다. 내용적으로도 산재 피해자에 대한 지원이 초기에는 경제적 급여 중심의 금전적 보상이었으나, 의료 재활 직장 및 사회복귀 지원 등 다양한 서비스로 확대돼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산재보험 적용범위를 넓히기 위해 가입률이 중요한데, 자영업자와 농림업,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임의가입 대상이어서 사업주가 가입을 꺼리고 있다. 자영업자(농림어업 제외)의 가입률은 1% 미만이며, 비임금 근로자의 가입률은 10% 미만이다.
보험의 성격 측면에서도 시각전환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업무 외의 질병 부상 발생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에 소득을 보전해 주는 제도는 상병수당인데, OECD 36개국 중 미국 스위스 이스라엘과 한국만 이 제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상병수당을 하루라도 빨리 도입해야 하며, 상병수당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산재보험은 업무상 재해 여부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좁은 의미 보다는 재해노동자를 보호하는 사회보장적 성격을 갖는 넓은 의미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산재 인정률도 높일 필요가 있는데, 2019년 64.6%에서 2023년도 59.5%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산재 처리지연 문제는 심각해 2023년 기준 근골격계 질환은 146일, 직업성 암은 289일 등 업무상 질병의 경우 평균 7개월 이상 소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역적 편차도 매우 심하다. 산재 판정위원회의 상황을 보면, 2022년 서울북부위원회의 인정률은 75.1%인 것에 비해 부산은 꼴찌로서 54%에 불과하다. 어떤 지역에서 다칠지를 노동자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노동자는 지역에 따라 인정률이 달라지는 ‘운’에 맡겨야 하는 지경이다.
환갑을 맞은 우리나라의 산재보험제도가 공자의 말씀처럼 인생에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하여 남의 말을 받아 들일 줄 아는 이순(耳順)이기를 바라본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