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관행 깨는 일본 검찰…한국 검찰은 무슨 생각 할까 [왜냐면]

한겨레 2024. 7.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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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종호 | 변호사

우리 ‘검찰청법’을 보면 의미나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이때 일본 검찰청법의 축조해설서를 보면 이해가 가는 경우가 있다. 이는 한국의 검찰 제도가 1947년 이후 일본의 그것을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실제 운용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모습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한국과 대비되는 일본 검찰의 속성은 정권이나 권력 중추에 대한 수사가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나 환경에 기인한 부분도 있지만, 일본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항공사의 여객기 도입에 관련하여 현금을 수수한 ‘록히드 사건’, 상장 차익이 예상되는 주식을 저가로 취득한 ‘리크루트 사건’, 거액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사가와큐빈 사건’ 등은 모두 당시의 최고 권력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수사기관이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조직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사의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은 제도의 본질상 가능하지도 않고,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통제되지 않는 검찰 권력이 국가의 다른 기능을 압도하는 ‘검찰 파쇼’ 현상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일본 검찰이 고안한 것이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예측 가능성의 확보였다. 임기가 2년인 일본의 검사총장은 보통 2~3대 이후까지도 누가 그 자리에 오를 것인지 대략적인 예상이 가능하다. 법무사무차관→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검사총장이라는 경로가 인사의 관행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59년 이후 현재까지 29명의 검사총장 중 18명이 이러한 경로를 거쳤다. 이렇게 미래의 구도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치권력이 인사권의 행사를 통해 수사의 방향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어렵게 된다.

그러나 정치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 비교적 효과적인 이러한 인사 관행에도 중대한 한계가 있다. 선례의 기계적 답습을 전제로 하는 관행은 필연적으로 보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완전무결을 요구하는 감점주의적 인사 시스템에서 검사총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도쿄·교토대 법학부 재학 중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소수의 엘리트에 국한되었다. 실제로 역대 검사총장 29명 중 도쿄·교토대 이외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다. 생태계의 일반적 현상처럼 균일화된 순혈주의적 조직은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외부로부터의 충격에도 취약하기 마련이다.

지난달 28일, 일본 정부는 신임 검사총장에 우네모토 나오미 도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기용한다고 발표했다. 사립인 주오대 법학부를 졸업한 우네모토는 일선 검찰청에서의 근무가 비교적 길었던 반면, 핵심 보직인 법무성 형사국장·관방장·사무차관과 도쿄지방검찰청 검사정 등을 거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오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네모토는 여성 최초의 검사총장이다. 오랜 관행을 깨고 비주류에 속하는 인물을 검찰의 수장으로 발탁한 이번 인사는 일본 검찰 150년 역사에서 전례 없는 시도로,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불후의 명곡은 있지만, 불후의 제도나 조직은 있을 수 없다. 유기체인 조직에는 사멸을 피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혁신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지금 한국의 검찰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개별적 사안에서의 해명 등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이것이 현존하는 본질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궁극적 수단이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 한국의 검찰은 자신들의 원형인 일본의 이번 검사총장 인사를 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물론 이는 오로지 그들에게 부과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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