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립암센터 신규 환자 진료 축소, 이제 병원이 서고 있다
국립암센터가 신규 환자 진료를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대한 항의성 진료 거부가 아니다. 다섯달째 전공의 공백을 메워온 의료진의 피로 누적이 한계에 달해 새 환자를 받는 게 어려워졌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과 의대 교수들의 집단휴진에도 병원이 유지돼 올 수 있었던 건 남아 있는 의사들이 버텨온 덕이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시점에 봉착한 것이다.
국립암센터 전문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환자들에게 너무 미안하지만, 기존 암환자의 진료를 위해 신규 환자 진료 축소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암 환자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국립암센터는 전공의 이탈 후 의대 교수들까지 잇따라 휴진하자 병상 가동률을 높여 암환자 진료공백을 최소화해온 곳이다. 비대위는 전문의들이 주 70시간 이상, 월 6회 이상 당직근무를 해왔지만, 심리적·체력적 ‘번아웃’이 찾아온 데다 여러 명의 환자를 동시에 돌보느라 의료사고 위험이 높아졌다고 했다. 이것이 어디 국립암센터만의 문제겠는가. 전공의 의존도가 높은 상급종합병원은 모두 마찬가지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는 의료현장 안전이 경각에 달려 있는 이 현실을 엄중히 인식해야 한다. 그간 정부는 전공의 이탈에도 큰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3차 병원에 쏠리던 환자들이 2차 병원으로 향하면서 과잉진료가 줄어드는 순기능이 나타났다고 자찬해왔다. 그러나 3차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밖에 없는 중증 신규 환자들은 의료진 부족으로 지금도 신규 접수가 막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4일 열린 ‘의사 집단휴진 규탄 집회’에 참석한 한 췌장암 환자는 진단 검사 예약이 힘들어 암 확진조차 늦어졌고, 폐·간 등 다른 장기로 전이가 돼 매주 한 번씩 체크해야 하는데도 검사가 2~3주 간격으로 미뤄져 속이 탄다고 호소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망처럼 바로 눈에 띄진 않아도 의료 생태계가 안으로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이날 상급종합병원 쏠림현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 진료에 더 집중하도록 의료전달 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풀어갈 과제다. 당면한 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선 전문의 추가 채용 등 신속하고 실효적인 지원책부터 내놓아야 한다. 전공의·의대생을 복귀시키려면 정부가 유화책만 독백처럼 발표할 게 아니라, 의·정 간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을 의사들과 어떻게 논의해갈지 분명하게 밝히는 등 의·정 간에 무너진 신뢰 회복부터 힘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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