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최소 절반으로 늘여야 상급 종합병원 지정

조백건 기자 2024. 7. 1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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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1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개혁특별위원회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시스

앞으로 상급 종합병원(대형 병원)으로 지정돼 각종 혜택을 받으려면 중환자실 병상을 지금보다 최고 15% 늘려야 한다. 중증 입원 환자도 지금보다 최소 16% 늘려, 중증·응급 환자 비율이 전체의 절반 이상 돼야 한다. ‘빅5(5대 대형 병원)’를 포함한 전국 상급 종합병원 47곳이 설립 취지대로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중환자와 희소 질환자 진료·수술에 집중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1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5차 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상급 종합병원 구조 전환’ 대책을 발표했다. 신청한 대형 병원을 대상으로 오는 9월부터 3년간 시범 사업을 한 뒤 2026년 12월 말 제6기(2027~2029년) 상급 종합병원 지정 때 이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상급 종합병원에 두드러기, 복통을 호소하는 경증 환자가 몰려 정작 치료가 시급한 중증·응급 환자 치료가 지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했다. 그동안 의료계에선 “우리나라는 빅5와 동네 의원의 환자 특성이 거의 같다” “대형 병원의 절반이 감기, 두통 환자”라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급 종합병원 환자 중 중증·응급 환자 비율은 39% 정도다. 61%는 중등·경증 환자다. 상급 종합병원의 평균 중환자 병상(105개)도 일반 병상(1053개)의 10%밖에 안 된다. 상급 종합병원의 교수들은 “응급 환자가 구급차 안에서 숨지는 ‘응급실 뺑뺑이’ 사태도, 빅5의 암 수술 대기 기간이 1년이 넘는 것도 경증 환자들이 대형 병원을 점령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대형 병원들이 비(非)중증 환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있었다. 대형 병원은 값비싼 ‘비급여 진료(건강보험 미적용)’를 하는 것이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 때문에 대형 병원의 진료 대부분은 건강보험공단의 지원과 통제를 받는 급여 진료다. 진료·수술 수가(건보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형 병원에 지급하는 의료 행위별 수가는 해외 주요국의 절반에서 10분의 1 정도로 낮은 편이다.

세브란스병원의 한 교수는 “저수가 때문에 빅5 등 대형 병원은 ‘1분 진료’로 병원당 하루 1만명 안팎 외래 환자를 보는 ‘박리다매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가 해외 주요국보다 의사 수는 절반 이하지만 병상 수는 3배 이상”이라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이런 구조 때문에 대형 병원들은 인건비가 많이 드는 전문의 대신 ‘장시간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전공의를 많이 쓰고 최대한 많은 환자를 받기 위해 병상 수를 경쟁적으로 늘려왔다는 뜻이다. 의료계 인사들은 “대형 병원으로선 치료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중환자보다 무난한 경증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이날 정부는 “2026년까지 우리나라 상급 종합병원의 중환자 병상 비율(10%)을 미국의 4대 병원 중 하나인 존스홉킨스병원 수준(17%)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26년까지 국내 대형 병원의 일반 병상을 최고 15% 줄이고 중환자 병상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체 환자 중 중증 환자 비율이 최소 50%(현재 34%)가 돼야 상급 종합병원 지정이 가능하도록 기준도 바꿀 계획이다.

상급 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환자 질과 무관하게 똑같이 지급하던 ‘규모별(종별) 수가 가산율’ 제도도 폐지하기로 했다. 지금은 상급 종합병원이 중환자를 보든 경증 환자를 보든 종별 수가 가산율(15%)이 똑같다. 앞으로는 심·뇌혈관 질환, 고위험 분만, 소아 응급 등 중증·응급 질환 진료를 많이 하고, 치료 성과가 좋은 병원일수록 수가와 인센티브를 더 주는 ‘차등 지급제’를 도입하겠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전공의 비율이 40%로 높은 대형 병원 의료진 구조를 전문의와 진료 지원(PA) 간호사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정부는 중환자 진료에 대한 보상도 강화한다. 대형 병원이 중환자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관련 진료·수술 수가를 대폭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응급 환자가 들어올 때를 대비해 당직 근무를 하는 의사와 간호사의 ‘대기 시간’을 보상하는 ‘당직 수가’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치료 시간’을 기준으로 수가를 지급했고, ‘대기 시간’은 제외됐다. 또 중환자 응급 수술 수가의 가산율을 최고 200%, 심장 스텐트(혈관 확장) 시술 수가는 최고 2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5년간 10조원 이상 건보 재정을 투입한다.

의료계 일각에선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날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이 실현되려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한데, 구체적 재원 조성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빅5의 한 신경외과 교수는 “정부가 발표한 것들을 실행하려면 건보 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지금 전공의 한 명을 대체하려면 전문의 2~4명이 필요한데 여기에 드는 인건비만 최고 16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정부가 법령 개정으로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이용을 제한하거나 이들의 치료비 부담을 대폭 늘리지 않는 한 경증 환자 쏠림 문제는 계속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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