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는 생생한 노동 기록문학…작가들이 봤으면”

이재명 기자 2024. 7. 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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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6411의 목소리’ 필진자문위원 고영직 문학평론가

‘6411의 목소리’ 필진자문위원 고영직 문학평론가. 노회찬재단 제공

“막연하게 힘들 거라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으로 알게 되니 주변의 노동이 다시 보이고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신의 서사를 드러내는 이야기에는 힘과 울림이 있잖아요. 일종의 ‘간증’인 셈이죠. 이분들의 글에는 물기가 있더군요.”

2022년 5월부터 ‘한겨레’(매주 월요일)에 연재 중인 ‘6411의 목소리’ 필자 90%는 독자가 있는 글을 처음 써 본 이들이다. 자기 노동의 의미를 찾아내 간직하고, 동시에 어딘가에 있는 독자의 귀에 닿기를 바라는 자발적 용기에서 비롯된 글쓰기였다. ‘우리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외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전하는 것이지만 독백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 없는 외침’에 누군가는 귀 기울이고 누군가는 매달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자신의 삶을 바꾸는 경험이 되기도 했다. 우아하거나 간결하진 않아도 땀 냄새 밴 삶과 노동 이야기에 담긴 진정성의 힘이었다.

지난 8일치 ‘6411의 목소리’.

110명의 분노와 의지, 성취와 고양, 무엇보다 희망의 어휘를 만들어 내려는 그들의 고군분투를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본 조력자들이 있다. 12명의 필진자문위원들이다. 소설가, 시인, 방송작가, 출판기획자, 교수, 노동운동가들인 이들은 ‘이름없는 노동자’에게 글을 쓸 용기와 이윽고 완성할 동기를 부여했다. 고영직 문학평론가도 그 중 한명이다. 지난 9일 만난 그는 “2022년 2월쯤 한겨레가 노회찬 재단에 기획 제안을 했다는 얘길 듣고, ‘어떻게든 성사시키자’라고 추임새를 넣었다”고 했다. “이야기의 힘을 신뢰하는 사람으로서 그분들 이야기 하나하나에 어떤 힘이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언론사에서 이런 지면을 주는 게 쉽지 않잖아요. 다른 분을 (자문위원으로) 추천하고 저는 빠질 생각이었는데 결국 붙잡혔습니다.”

자문위원들은 필자를 직접 발굴하기도 한다. 자신들 삶의 터전이 주요 ‘사냥터’다. 20년 단골로 찾던 미용실의 사장, 출판 일을 하다 만난 번역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주민, 출근길에 빌라 계단에서 마주친 청소노동자, 방송국에서 일하며 알게 된 배우에게 넌지시 “저~ 혹시…이 일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 글로 써보실 생각 없으세요?”라고 물었다. 더러 쭈뼛하면서도 ‘써보겠다’ 나선 이도 있지만, 대개는 “제가요? 에이, 저 글 한번도 안써봤어요. 못써요”라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이주노동자 차별을 고발한 방글라데시 출신 마문은 예전에 인터뷰를 한 인연이 있어서 글쓰기를 권했어요. 저는 다소 소극적인 편인데, 권순대 교수와 강명효 출판기획자는 그 역할을 탁월하게 잘하세요. 미용실 ‘노쇼’의 고충을 쓴 헤어디자이너나 서울 성북구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에 관한 글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2022년 5월부터 매주 한차례 연재 중
글 묶어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책 내
소설가 방송작가 등 12명 자문위원이
필자 발굴하고 돌아가며 집필 조력도
넉달 걸려 원고 완성한 대리기사 필자
지금은 여성 대리기사 권익옹호 활동


“귀에 들리지 않던 사람들 이야기
‘좋은 노동·삶’ 성찰하는 계기 되길”


초고가 들어오면 자문위원 중 1명에게 배정된다. “자문위원에 따라 특별히 선호하는 분야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 분배하는 편입니다. 가끔 회의 불참자에게 강제배당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웃음) 글을 공유한다는 건 특별한 관계를 맺는 일이기도 하다. 글쓰기 경험이 없는 이들이라 ‘빨간펜 선생’의 역할을 피할 수 없지만 서로 위로하고 자극하고, 영감을 주기도 한다. 필요한 건 인내심이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주문합니다. 그 일을 해본 사람만 알고 있는 내용을 친절하게 설명해달라는 거죠. 그 과정에서 어떤 사연은 빼고, 어떤 에피소드는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냅니다. 몇차례의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그분들이 직접 고치게 합니다.” 수정 요청이 잦아지다 보면 불편한 감정을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된다. “그분들도 잘 쓰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되니까 자책을 하는 거죠.”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표지.

한 필자는 무려 넉 달에 걸쳐 원고를 완성하기도 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분이라 연락조차 어려웠어요. 오전엔 단잠을 깨울까 봐 전화를 못 걸고, 대신 문자를 보내면 저녁 때야 회신이 오곤 했죠.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해 휴대전화 카카오톡으로 글을 쓰셨습니다. 여성이라 성희롱 사례 같은 민감한 사안을 묻는 게 조심스러워 중간에 다른 자문위원으로 바꾸고 나서야 마무리 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10년차 대리운전 기사다’를 쓴 이미영씨다. 그는 이제 여성대리 기사 모임을 만들어 그들의 권익 향상에 앞장서고 있고, 그 일을 하면서 자신도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고 평론가는 가족 돌봄청년 이레(김아롱)씨가 특히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사지마비 중증 장애인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16년째 돌보는 학생이다. “자신의 일이 개인적 경험에 그치지 않도록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관련된 공부도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올해 초에 메일을 보내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됐고, 사회복지 박사 과정에 진학했다며 고맙다는 인사 글을 보냈더군요.” 김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족돌봄 아동·청소년·청년 지원법 제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지난 2년 연재된 ‘6411의 목소리’를 묶은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창비)가 출간됐다. 고 평론가는 ‘6411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서사적 우정’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노회찬이 주목했던, 존재하지만 귀 기울이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동체가 경청하고, 과연 좋은 노동이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봤으면 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요.” 그는 이 책을 작가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6411의 목소리’는 노동현장의 생생함이 담긴 하나의 기록 문학입니다. 특히 소설이나 시를 쓰는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알아가고, 작품활동의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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