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양 남자’는 어떻게 독일 오페라의 ‘왕’이 되었나
“독일인보다 더 정확한 발음 노력”
바그너 오페라의 매력은 ‘지루함’
독일 오페라의 주인공은 대체로 신, 왕, 장군이다. 보수적인 클래식 세계에서도 더욱 보수적인 오페라 무대에 작은 동양인이 주역으로 섰을 때 서양인들의 반응은 짐작할 수 있다. 베이스 연광철(59)이 세계적 음악 축제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 오페라에 섰을 때도 그랬다.
“<춘향전>의 변사또를 외국인이 연기하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어요? 제가 바그너 오페라 무대에 올랐을 때도 동양 사람을 자기들 역사 속 왕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어한 거 같아요. 해결 방법은 제 노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젠틀한 것은 아니다”라고 연광철은 말했다. 연광철이 듣도록 수군대는 동료도 있었다. “동양의 왕이 왜 독일에 있나?” 연광철은 속으로 생각했다. ‘너희들이 나만큼 노래하면 될 것 아냐.’
연광철이 지난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예술의전당 기획공연 ‘보컬 마스터 시리즈’를 알리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 3일 소프라노 홍혜경의 공연이 열렸다. 연광철은 26일 무대에 선다. 1부에선 모차르트와 베르디, 2부에선 특기인 바그너 오페라의 하이라이트를 골랐다. 11월16일에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도 노래한다.
연광철은 “눈 감고 들으면 독일 사람이 노래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여야 했다”며 “모든 유명한 가수들의 평균점 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노래할 때의 발음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원어민보다 더 또렷한 발음으로 노래하려 했다. 연광철은 “노력하지 않고 노래하는 독일인보다 노력하는 외국인이 더 잘 알아듣게 노래한다”고 말했다.
연광철은 바그너 오페라의 매력은 ‘지루함’이라고 농담처럼 표현했다. “이탈리아 오페라는 결국 ‘빈체로’(<투란도트>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 하이라이트)로 향한다는 걸 다 알지만, 바그너의 음악은 많은 주제들이 경합하기 때문에 잘 모르면 지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광철은 초심자가 오페라의 매력을 알기 위해선 서곡부터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바그너의 <파르지팔>과 베르디의 <나부코> 서곡을 비교해 들으면 같은 금관악기라도 어떻게 다르게 사용했는지 알 수 있다.
연광철은 1996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해 150회 이상의 공연을 했다. 빈 국립오페라, 런던 코벤트가든, 밀라노 라스칼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노래했다. 2018년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궁정가수 칭호를 받았다. 이번 기획공연에서 연광철은 직접 선발한 젊은 성악가의 워크숍도 진행한다. 연광철은 “단순히 좋은 음성으로 음정, 박자 틀리지 않게 노래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유럽 사람들의 문화에 어떻게 들어갈지, 서양 무대에 섰을 때 서양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광철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반주로 슈베르트, 슈만의 가곡을 한국 관객 앞에서 부르기도 했다. 그는 “오페라보다 가곡 준비가 훨씬 어렵고 관객 앞에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고 털어놨다. 오페라는 대체로 한 캐릭터가 작품 내내 이어지고, 조명·분장·의상·상대 배우가 있다. 하지만 가곡은 3분에서 5분 사이 그림이 바뀌므로 음성적으로 계속 다른 색깔을 내야 하고, 무대에는 피아노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광철은 “음악계는 수요보다 공급이 많은데 그 공급이 관객이 원하는 수준인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며 “누구나 노래할 수 있지만, 이걸 무대에서 팔기 위해선 훨씬 높은 퀄리티가 필요하고, 성악가들도 많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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