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스키장…겨울보다 핫하다
해수욕장? 계곡? NO!
올해 피서는 색다르게
태양 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여름. 여름이라는 단어는 ‘열매’의 옛말에서 비롯됐다. 1년 중 가장 많은 햇빛과 물을 선물해 나무가 꽃과 과실을 맺는 계절. 우리에게도 다르지 않다. 무더위는 때때로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더 단단하고 달콤한 결실이 찾아온다.
여름을 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 뜨거운 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거나 계절을 거꾸로 거스르는 것. 올여름엔 두 번째 방법을 찾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몇 달 전까지 순백의 설경으로 눈부셨던 산속 스키장은 녹음이 짙은 청정 대자연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풀잎과 나무가 뿜어내는 여름의 에너지는 다른 모든 계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싱그럽고 신선하다.
최고의 ‘파우더 스키장’이 즐비한 일본 나가노와 묘코에선 눈 녹은 자리마다 자연 그대로의 맨얼굴이 거대한 산책로를 만들어내고 우거진 나무들이 서늘한 그늘을 선물한다. 겨울 스키 시즌에 다소 부담됐던 여행 경비를 ‘역시즌’을 이용하면 크게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무더위가 마냥 지쳐 있을 일만은 아니다. 도전과 모험을 즐긴다면 올여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스키와 보드를 즐기거나 1년 내내 만년설이 존재하는 땅으로 떠나보길 추천한다. 스위스 체어마트에선 하루 사이 겨울과 여름을 동시에 마주할 수 있고, 미국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경계의 마운트 후드는 여름철 스키 초보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한다.
산 하나를 독점한 채 스키를 즐길 수도 있다. 칠레의 스키 포르티요 리조트가 그렇다. 1966년 남미 최초로 세계스키선수권대회가 개최된 이곳에선 여름 내내 오직 리조트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스키 슬로프가 열린다. 안데스산맥 설경에 파묻혀 스피드를 즐길 수 있는 압도적인 경험이 기다린다.
오금 저리는 1501m 집라인, 별빛 밤하늘 바라보며 온천
12월보다 재밌는 7월 스키장
● 일본의 알프스 롯데아라이리조트
소니家 별장서 출발, 일본 최고 리조트로
인공 눈에서 즐기는 파우더 스키의 명소
한국 국가대표 선수 전지훈련지로 '애용'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초록 힐링 맛보기 제격
30분 거리 골프장 많아 인근 사케 전통 양조장도
일본 도쿄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면 니가타현 묘코시가 나온다. 이 지역엔 스키 좀 타는 사람들에게 일본 최고의 파우더 스키 슬로프로 정평이 나 있는 곳이 있다. 얼마 전까지 한국 국가대표 스키 선수들이 전지훈련을 한, ‘일본의 알프스’ 롯데아라이리조트다. 올해 아시아 스키 어워즈에서 파우더 스키장 부문 최고상을 받은 곳. 소니 창업자인 모리타 아키오의 장남 모리타 히데오가 해발 3000m 고봉들로 둘러싸인 풍광에 반해 별장을 짓고 파우더 스키를 즐긴 장소로도 유명하다. 순백의 겨울 시즌이 지나면 짙은 녹음이 찬란한 여름을 데려온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두 시간 남짓이면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인 묘코시에 다다른다.
10만원대 중반에 ‘5성급 객실’
묘코시 롯데아라이리조트는 199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롯데호텔은 경영난에 2006년 이후 문을 닫았던 이곳을 2015년 인수했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다시 문을 열었다. 럭셔리 리조트를 지향하는 이 리조트는 여름이면 겨울 시즌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머물 수 있다. 평일 기준 10만원대 중반에 5성급 수준의 로지와 클럽동 객실 예약이 가능하다. 아라이동의 가격은 그보다 20~30% 낮다.
그린시즌은 말 그대로 초록 일색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나무가 특히 많다. 그대로만 있어도 ‘힐링 여행’이 된다. 주변에 산속 산책로가 많은데 길이가 수㎞에 이른다. 이 산책로를 걷는 ‘건강 숲속 걷기’ 프로그램을 별도로 운영한다. 전문 가이드와 함께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다.
리조트엔 온천도 있다. 지하 1750m에서 뽑아낸 약알칼리성 온천수를 쓰는 ‘호시조라 온센’이다. 호시조라는 일본어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뜻한다. 리조트 인근에 인공 시설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노천 온천으로 나가면 늦은 밤 밝게 빛나는 별을 볼 수 있다. 수영장은 일 년 내내 따뜻한 물로 운영하는 실내풀과 7~8월 두 달간 운영하는 야외 가든풀이 있다. 야외 수영장은 매년 여는 날짜가 다르기 때문에 이용 계획이 있다면 스케줄을 리조트 측에 꼭 확인해야 한다. 객실 요금과 별도로 수영장 요금이 따로 있다는 것도 감안하자.
아시아 최장 집라인의 스릴
그린시즌의 백미는 액티비티다. 길이가 1501m에 달하는 집라인은 다른 곳에선 쉽게 보기 힘든 거리다. 산등성이 두 곳을 연결한 이 집라인을 타기 위해선 30분가량 안전교육을 받고, 차로 30분을 올라야 한다. 집라인 한 번 타기 위해 한 시간을 써야 하는 셈이다.
막상 산에 오르면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약 3분 동안 모두가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를 만큼 스릴이 넘친다. 집라인 상단의 안전바를 당기면 속도가 나고, 풀면 브레이크가 걸린다. 무섭다고 중간에 브레이크를 걸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 해발 약 900m 산 중턱에 대롱대롱 걸려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무섭다고 느껴질수록 안전바를 더 당겨 빠르게 지나가는 게 팁이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미니 집라인도 있다. 리조트 바로 앞 광장에 있는 이 집라인은 길이가 170m 정도로 짧다.
나무 사이의 장애물을 피해 가는 ‘트리 어드벤처’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린 시즌에 수많은 아이가 이곳을 부모와 함께 찾는다. 대부분 줄에 매달려 가야 하는데, 난이도별로 장애물이 달라진다. 1단계부터 6단계까지 단계를 완료할 때마다 성취감이 크다.
아이들이 많이 한다고 쉽게 봤다가는 큰코다친다. 중간중간 울음을 터뜨리고 주저앉은 아이들이 많다. 어른은 덩치가 커 줄이 더 크게, 많이 흔들린다. 1단계를 해본 뒤 다음 단계에 도전하도록 안전요원이 지도한다. 1단계에서 포기한 어른도 일부 있다. 3단계 이상은 안전장비가 달라져서 장비 쓰는 요령을 배워야 한다. 가장 어려운 6단계는 사람이 가장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는 10m 높이다. 장애물도 굉장히 까다롭게 해놨다. 현재는 안전상 이유로 닫았다. 이 밖에 튜브를 타고 미끄러지는 ‘튜빙’, 실내 암벽등반 등도 그린시즌에 즐길 거리다.
182년 된 양조장 사케 일품
여름 스키장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골프다. 롯데아라이리조트엔 골프장이 없지만 인근에 골프장이 여러 개 있다. 차로 10분 거리의 마쓰가미네CC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골프장이다. 묘코산 등 주변 산의 풍광이 굉장히 뛰어나다. 페어웨이와 그린 관리도 비교적 잘 됐다. 27홀의 이 골프장은 코스가 크게 어렵지 않아 초보자도 부담이 없다. 클럽하우스는 다소 낡았지만 식당의 음식맛은 정평이 났다. 그린피에 점심값이 포함돼 있고, 전동카트에 달린 태블릿PC는 남은 거리를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준다. 캐디가 없어도 골프 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평일에는 그린피가 1인당 9000엔(약 7만6500원) 이하다. 이 밖에도 묘코CC, 묘코선샤인CC 등 리조트에서 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골프장이 여럿 있다.
애주가들은 사케 전통 양조장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1842년 세워져 7대째 대를 이은 ‘기미노이’는 이 지역 대표 양조장이다. 묘코 시내에 있는 이 양조장은 직접 쌀농사를 짓고, 정미하고, 사케를 제조하고, 유통까지 한다. 이 지역 사케는 일본 전역에서도 유명한데 물이 특히 좋기 때문이다. 4~5월까지 쌓인 눈은 여름 농사철 녹아 쌀농사 용도로 쓰이고, 겨울엔 사케를 만드는 용도로 쓰인단다. 사케를 제조할 땐 화학효모를 넣지 않고 2주간 숙성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곳의 사케는 쌀 향이 물씬 나면서 목 넘김이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모래바람 속에서 스키 탄다?…사막 안에 똬리 튼 겨울왕국
여름 스키 명소 Best 5
쇼핑몰 안에 있는 스키 두바이
25층 건물 높이 설산 구현하고
봅슬레이 슬로프·황제펭귄까지
스키인 성지 호주 알파인 공원
신발 대신 스키 신고 일상 생활
열정적인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에게 여름은 너무도 지루한 계절이다. 몸이 근질거리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설원이 있다. 7, 8월에도 설원 속에서 질주할 수 있는 그곳을 향해 떠나보자.
(1) 스키 두바이
모래 먼지 날리고, 태양이 작열하는 두바이에서도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쇼핑몰 에미리트몰에 있는 스키 두바이를 찾아가면 된다. 실내 스키라고 우습게 봐서는 곤란하다. 25층 건물과 맞먹는 높이(85m)의 설산에 5개 슬로프를 갖췄다. 이 정도면 웬만한 스키장 스펙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리프트는 물론이고 봅슬레이 슬로프, 산악 리조트까지 즐길 거리도 다양하다. 심지어 이곳에서 기르는 황제 펭귄과 소통할 수도 있다. 사막 속에서도 겨울왕국은 존재한다는 사실!
(2) 미국 마운트 후드
미국 스키대표팀(성적)의 전지훈련지, 마운트 후드가 기다린다. 마운트 후드는 오리건주와 워싱턴주의 경계에 자리한다. 정상의 봉우리는 해발 3429m로 오리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이 덕분에 ‘힙스터의 고향’ 포틀랜드를 비롯해 도시 어디에서나 봉우리의 만년설을 볼 수 있다.
후드는 사계절 내내 눈으로 덮여 있어 언제든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여름은 특히 초보자가 스키를 배우기 좋은 계절이다. 설질의 차이 때문이다. 겨울의 눈이 단단해 전문가들의 레이싱에 적합하다면, 여름에 쌓인 눈은 부드럽고 폭신해 막 첫발을 떼는 이들도 안심하고 점프할 수 있다. 태양이 뜨거워도 눈이 녹지 않도록 특수 처리한 소금을 뿌리니 한낮에도 걱정 없다. 다만 눈에 햇볕이 반사돼 눈이 부시니 눈 보호 장비를 착용해야 한다. 자외선 차단제도 필수다.
실력자들이 마음껏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천연 슬로프는 물론이고 수준급의 레이스 코스와 파크, 하프파이프 시설 덕분에 전 세계 스키 마니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산 중턱에 자리한 팀버라인 로지는 이들의 훌륭한 베이스캠프가 돼준다.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겨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 들어서 있다. 남동쪽 사면 해발 2600m에서 시원하게 뻗어 있는 슬로프도 로지로 이어져 있다.
중급 이상의 실력자라면 캠프에 참여해보는 것은 어떨까. 매년 여름이면 레이싱 캠프, 프리스타일 캠프, 알파인 스키 캠프, 여성 스키어들을 위한 킬리스 캠프 등 다양한 주제의 캠프가 열린다. 전 세계 스키어들과 어울리며 눈밭을 질주한 ‘차가운 여름’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3) 스위스 체르마트
아침에는 겨울을, 낮에는 여름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스위스 체르마트다. 이곳에는 알프스에서도 가장 높은 고도에 자리한 마터호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 스키장이 있다. 21㎞에 달하는 스위스 테오둘 빙하 위에 지어진 덕분에 사계절 내내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의 알파인스키 국가대표팀이 원정 훈련을 위해 찾기도 한다. 스키를 타는 동안 눈앞으로는 ‘알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로 꼽히는 마터호른의 전경이 펼쳐진다.
산 아래로 내려오면 푸르른 숲속에서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체르마트 지역은 환경 보호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휘발유 차량은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이 덕분에 더욱 쾌청한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로컬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산장 식당에서 유럽의 ‘아프레 스키’ 문화를 즐길 수도 있다. 일종의 스키 뒤풀이로, 스키어들이 인근의 펍이나 레스토랑에서 어울리는 시간을 뜻한다. 옆 테이블과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며 술잔을 부딪치다 보면 어느새 막역한 친구가 된다. 호텔 스파에서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푸는 것 또한 고급스러운 아프레 스키 중 하나다.
(4) 칠레 포르티요 리조트
1966년, 최초로 남미에서 세계스키선수권대회가 열렸다. 그 무대가 된 곳이 바로 칠레의 스키 포르티요 리조트다. 이곳의 역사는 곧 칠레 스키의 역사와도 같다. 칠레에 스키가 전파된 것은 1880년대 안데스산맥에 철도를 건설하면서부터였다. 유럽 노동자들이 스키를 신고 눈 덮인 산을 이동한 것이 시작이었다. 바로 그 길목에 문을 연 것이 포르티요다. 리조트는 1235㏊의 드넓은 부지에 중급 이상 난이도의 슬로프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 스키를 즐기는 것은 곧 산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대 4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리조트 투숙객만이 스키장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 안데스산맥의 설경에 파묻히고 싶다면 칠레로 향하는 걸 추천한다.
(5) 호주 알파인국립공원
우리와 정반대의 계절을 사는 남반구, 호주는 여름 스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빅토리아주 알파인국립공원은 풍부한 강설량으로 스키 마니아들의 성지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번거롭게 스키 부츠를 갈아신고 리프트를 타러 갈 필요가 없다. 공원 내 대부분 리조트가 ‘스키 인 스키 아웃’ 숙소이기 때문. 이는 현관에서 바로 스키를 신고 출발하고, 돌아올 때도 숙소에서 스키를 벗으면 된다는 의미다. 그만큼 슬로프와의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의미다.
국립공원 내에는 100여 개의 슬로프가 있어 취향별, 수준별로 스키를 즐길 수 있다. 그중에서도 호섬 지역은 ‘호주 눈의 수도’라는 별칭이 붙은 곳이다. 호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리조트 타운으로, 수준 높은 슬로프가 모인 곳으로도 명성이 높다. 특히 최상급자를 위한 ‘더블 블랙 다이아몬드 코스’는 스키 마니아들의 도전정신을 불태우게 한다. 캣 스키, 허스키 썰매, 스노모빌 라이드 등 어린이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마련돼 있으니 가족 스키 여행 목적지로도 적합하다.
김보라 기자/묘코=안재광 기자/김은아 한경매거진 여행팀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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