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소주병 보증금제, 다른 음료는 안 될까
우리나라에는 빈병 보증금 제도가 있습니다. 유리로 만든 맥주병, 소주병에 해당되는데 특히 식당, 술집 등의 업장을 통해 대부분 회수되다 보니 2022년 공병 반환율이 무려 96.4%라고 합니다(지난 레터 다시보기).
그렇다면 플라스틱 용기라고 안될 건 없지 않을까요? 마침 순환경제를 연구하는 리루프의 손세라 연구원님이 유럽의 일회용 음료 용기 보증금 제도를 둘러보고 오셨습니다. 세계 최초(1984년)로 일회용 음료 용기 보증금제를 도입한 스웨덴에 이어 현재 50개국 정도가 보증금 제도를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지난 2일 서울환경연합 유튜브에서 풀어주신 이야기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노르웨이는 페트병, 캔을 무인회수기에 반납하면 크기에 따라 개당 300~500원의 보증금을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인 슈퍼 같은 곳에도 무인회수기가 많이 설치돼있어서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반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수고비라고 할 수 있는 취급 수수료를 슈퍼 같은 소매점에 지급, 무인회수기 설치를 유도한 덕분입니다. 그리고 소매점이 빈 용기를 반환받고 보증금을 돌려줄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노르웨이의 반환율(2021년 기준)은 페트병·플라스틱 92.8%, 캔류 91%나 됩니다.
음료를 만든 기업들도 보증금제도로 비용을 아끼는 구조입니다. 이들 기업은 생산자 분담금, 슈퍼 등에 지급하는 취급 수수료, 운송비 등을 부담하지만 대신 미반환 보증금(용기 반환을 하지 않아서 남은 금액), 용기 회수를 통해 발생한 재활용 자원 판매 수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수익이 발생한 만큼 생산자 분담금을 덜 낼 수 있기 때문에 빈 용기를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게 음료 기업들 입장에선 이득입니다.
참고로 다른 나라들은 유리병도 함께 수거하는데 노르웨이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인구밀도가 낮아서입니다. 유리병은 무게 때문에 운송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음으로 덴마크. 노르웨이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품목(알코올이 들어간 탄산류, 에너지드링크, 탄산이 아닌 음료수 등)까지 더 많은 종류의 음료수 용기에 보증금 제도를 적용했습니다. 손 연구원님은 "적용 대상 품목이 많을수록 소비자 혼선도 적고 규모의 경제가 발생해 제도 운영 비용이 낮아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덴마크의 보증금 액수는 플라스틱은 280~300원, 유리병은 200원입니다. '판트스테이션'이라는 일종의 재활용 센터가 곳곳에 있긴 하지만 역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슈퍼마켓 등 소매점의 무인 회수기를 통해 반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슈퍼 사장님 입장에서도 용기 반납할 겸 장 보러 오는 소비자들이 많아서 무인 회수기를 설치할 이유가 생긴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독일은 1980년대에도 이미 재사용 용기 사용률이 85%에 달할 만큼 모범적인 나라입니다. 그런데 일회용 페트병 생수가 등장하면서 재사용 용기 사용률이 70%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2003년 부랴부랴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고 재사용 용기 비율이 70% 이하로 떨어지는 기업엔 일회용기 보증금 제도 적용을 의무화했습니다. 일부 기업들은 이런 의무가 자유경쟁 침해라며 유럽연합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배했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회용 음료 용기 반환률이 98%를 기록할 만큼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음료 용기 보증금 제도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일단 많이 마시고 버리니까 분리수거 폐기물의 약 40%(부피 기준)나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또 집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잼, 소스류 같은 다른 식료품 용기보다 집 밖에서 무단투기되는 경우가 많고(무단투기 쓰레기의 전체 부피 중 80% 차지), 당연히 강이나 바다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서(해변쓰레기 중 담배꽁초의 뒤를 잇는 2위) 더 관심이 필요한 품목이기도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서울환경연합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회용품 규제조차 퇴보했지만, 유럽을 보면서 희망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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