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저출생 대안' 통합학교···학부모 "학습권 저하" 반발에 또 무산
서울 연천중 학생 10년새 반토막
2년전 은평초로 이전 추진했지만
학부모 "공간좁고 혼란 불보듯"
절반 이상 반대로 이음학교 좌초
"소통 창구·법적근거 마련 시급"
학생 수가 계속 줄고 있는 서울 은평구 소재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학부모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정부가 다가올 인구 감소에 대응해 학생 수가 적은 지역을 중심으로 초·중학교, 중·고등학교 간 통합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공간 확보의 어려움과 구성원 간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세계 인구의 날’인 11일 교육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연천중을 녹번·응암동에 있는 은평초로 이전 재배치하는 ‘은평초·연천중 이음학교(가칭)’ 설립 계획이 좌초됐다.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이 이달 3일부터 9일까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두 학교 모두 학부모의 50% 이상이 반발했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기존 학교가 통합 이음학교로 전환하려면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은 2027년 은평초·연천중 이음학교 개교를 목표로 2022년부터 이 사업을 준비해왔다. 연천중의 학생 수가 2011년 680명에서 올해 287명으로 거의 반 토막이 나는 등 과소 현상이 심화하자 이에 따른 학생의 교육적 피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녹번·응암동 일대 재개발 이후 녹번동 학생들이 불광동에 위치한 연천중으로 배치돼 원거리 통학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많았던 점도 사업 추진의 배경이었다. 현재 불광동에는 불광중·연신중·연천중 등 중학교가 밀집해 있는 반면 녹번·응암동에는 중학교가 한 곳도 없어 서부 1·2학교군 내 중학교 균형 배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은평초·연천중 이음학교는 교육과정은 구분하되 교장은 한 명으로 두고 행정 시스템을 하나로 통일하는 게 핵심이었다. 행정 업무 효율성 증대와 학교급 간 교육과정 협력으로 시너지 효과 향상, 교육 연속성 강화 등이 기대됐다. 연천중 부지는 주민 복합문화체육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음학교가 완공되기까지 5년 동안 학생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볼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주로 수업 공간이 협소해져 학생 학습권이 저하되고 급식 운영 혼란, 중학교 학교폭력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교육과정이 완전히 다른데 교장 한 명이 어떻게 이를 잘 이해하고 운영할 수 있겠나”라며 지원청 측에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천중의 한 학부모는 “은평초의 시설이 노후화됐고 공사가 끝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연천중 학생들이 (은평초로) 옮기면 더 열악한 교육 환경에서 공부하게 되는 셈”이라고 걱정했다.
학령인구가 급감하면서 서로 다른 학교급을 원활하게 통합하는 일이 중요해졌지만 이처럼 학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통합학교가 무산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앞서 2022년 서울 마포구 창천초와 창천중도 학부모의 반대로 통합학교 개교가 취소된 바 있다. 현재 서울 내 통합학교는 해누리초‧중, 강빛초‧중, 일신여중‧잠실여고, 체육중‧체육고 등 4곳뿐이다.
교육계는 앞으로 통합학교 설립 추진 과정에서 이 같은 갈등이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고 정부·학부모 간 소통과 학생 피해 최소화 방안 등을 촘촘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통합학교를 법적으로 제도화하고 초·중학교에서 모두 교육이 가능한 교원 양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법상 통합학교에 대한 별도의 제도가 없어 예산이나 교육과정 등을 모두 따로 편성해야 한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통합학교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게 될 학생들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만들고 초등·중등 교원이 교차 수업이 가능하도록 연수 등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학부모 대상 설명회·간담회 등을 열며 설득했지만 결국 진행하지 않게 됐고 현재 이음학교를 재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다만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적정 규모 학교 육성 방안들에 기초해 최적의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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