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는 나왔지만 의사는 아닙니다" 이 말, 내년부터 현실 된다?
"의대는 나왔지만 의사는 아닙니다."
당혹스러운 말이지만, 놀랍게도 내년부터 현실화할 조짐이다. 정부가 유급 처리를 하지 않겠다는 '당근'까지 내밀었지만, 전국 의대생들이 의사 면허 취득을 포기할 태세를 갖추면서다. 엎친 데 덮친 격 '예비 전문의'인 전공의들마저 복귀하지 않고 버티면서 개원의·봉직의·공중보건의·전공의·전문의가 될 '씨앗'이 멸종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지난 2월부터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계를 내고 떠난 의대생들의 복귀를 유도하는 차원에서 의사 국가시험(국시) 추가 실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들이 복귀하면 유급당하지 않고 보충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의과대학 학사 탄력 운영 가이드라인'까지 내놨다.
하지만 휴학 의대생 대부분은 시험 자체를 보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 10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이 지난 1~7일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 3015명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 여부를 조사했더니, 응답자 2903명 중 95.52%인 2773명이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는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이하, 국시원)에 국시 응시원서를 접수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다.
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은 6개월 이내 의대 졸업 예정자에게만 부여한다. 국시원이 내년도 의사 국가시험 응시 대상자 명단을 확인하기 위해선 각 의대가 졸업 예정자 명단을 지난달 20일까지 국시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대다수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손정호 의대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 대부분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며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정부는 조속히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런 의대생의 '버티기 작전'에 의대생의 선배인 전공의 대표는 '지지의 뜻'을 밝히며 힘을 뭉치는 모양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10일 SNS에 "우리의 요구는 단호하고 분명하다"면서 "(의사 국가시험을 보지 않겠다는) 학생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한다"는 글을 올렸다.
응급의학과 전공의인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2월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 반대해 수련 병원을 떠났다. 그는 이 글에서 "저도 안 돌아간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가 지난 8일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에 대한 처분 방안을 내놓은 가운데, 전공의들의 7대 요구 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료 현장 복귀 의사가 없다고 재차 밝힌 것이다.
정부가 당근을 제시했는데도 복귀하지 않으려는 작전은 의대생과 전공의가 '닮은꼴'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 8일, 복귀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전공의에 대해 면허정지 처분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또 9월부터 수련을 다시 받으려는 사직 전공의의 경우 '사직 후 1년 내 동일 연차·전공으로 복귀할 수 없다'는 전공의 수련 규정에 특례를 적용해 다른 병원에서 수련할 수 있게 했다.
이례적인 '특혜'를 줬는데도, 전공의의 복귀율은 바닥을 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0일 기준, 전국 211개 수련병원 전공의 전체 출근율은 8%(1만3756명 중 1096명)에 그쳤다. 특히 의대를 갓 졸업한 '새싹 전공의'인 인턴의 경우 출근율은 3.3%(3250명 중 106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처럼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서 내년에 '1년 치 신규 의사', '1년 치 전문의'가 배출될 가능성이 희박해진 가운데,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는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위협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전공의는 복귀하지 않더라도 개원하거나 공중보건의, 봉직의 등으로 근무하며 환자를 돌볼 수 있지만, 의대생이 의사 면허 취득 자체를 포기하면 의사가 아니므로 의료행위를 할 수 없게 돼서다. 의사 A씨는 "시급 6000원에 일할 의사는 대한민국 국민 중에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의대생을 아무리 더 많이 뽑아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당근책이 되레 불씨가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B 교수는 "거의 3만 명에 달하는 젊은 의사들(전공의)과 의대생이 1년, 총 3만 년을 버릴 결심을 굳혔는데, 교육부와 복지부 관료들은 의대생이 F 학점을 받아도 특혜로 강제 진급시키겠다고 한다"며 "검찰·관료 출신들의 행위가 군사독재 시절 못지않다"고 비꽜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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