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9년 소송전…회사 타격 적으니 남발”

박태우 기자 2024. 7. 1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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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글라스, 불법파견 뒤 사내하청 폐업 해고
해고자, 9년간 삶 잃어…“이겨도 세월 보상 안 돼”
차헌호 금속노조 구미지부 아사히글라스지회 지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근로자지위 확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조합원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불법파견이라는 불법행위를 바로잡는 데 9년이 걸렸다는 사실에 기가 막히죠.”

대법원이 경북 구미 유리제조업체 ‘아사히글라스’(현재 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와 사내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관계가 ‘불법파견’이라고 선고한 11일 오후 차헌호 전국금속노동조합 아사히글라스지회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차 지회장은 2015년 노조를 결성한 이후 일하던 사내하청업체가 폐업됐고, 동료 177명과 함께 일자리를 잃었다. 차 지회장은 9년 동안 함께 싸워왔던 지회조합원 13명과 함께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대법원 선고를 들었다. 차 지회장은 “불법파견을 하고, 노조를 깨기 위해 노동자들을 해고한 회사에 화가 나기도 하지만, 9년 동안 노동부·검찰·법원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것에 화가 난다”며 “박근혜 정부 때 시작해 문재인·윤석열 정부까지 길거리 투쟁을 했는데, 그게 너무 기가 막힌다”고 했다.

불법파견을 확인하는 9년간의 법적 다툼은 형사·민사·행정소송 등 복잡하게 진행됐다. 해고 직후인 2015년 7월 해고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회사를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노동부는 2년 동안 수사를 뭉개다 대통령이 바뀐 2017년 9월에서야 기소의견으로 아사히글라스 대표이사 등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대구지검 김천지청은 2017년 12월 혐의없음 처분했다. 그해 4월부터 서울 광화문 광고탑에서 27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기도 했던 아사히글라스지회는 무혐의처분에 항의하며 검찰청사 로비를 점거했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차 지회장은 “당시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회사의 불법파견에 대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라는 것처럼 면죄부를 주는 것 같았다”며 “그때 제대로 싸우지 않았으면 오늘이 있었을까 싶다”고 했다.

이듬해 5월 대구고검은 불법파견 혐의에 대해 재기수사를 명령했고, 2019년 1월 대검찰청의 수사심의위원회를 거친 뒤에야 기소하기로 결정됐다. 고소 4년 뒤에야 기소된 것이다. 다시 또 2년이 흘러 2021년 8월 형사재판 1심에서 불법파견이 인정돼 아사히글라스 대표이사 등에게 유죄가 선고됐지만, 2023년 2월 2심에선 무죄가 선고됐다. 이날 상고심에서는 다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하청노동자들이 아사히글라스의 노동자임을 확인해달라는 민사소송이 형사소송보다는 ‘그나마’ 진행이 빨랐다. 2017년 7월 소장을 낸 이후 2019년 8월 1심, 2022년 7월 2심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해 아사히글라스가 하청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이날 대법원 역시 아사히글라스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까지 가는 지난한 소송이 아니어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부가 2017년 9월 아사히글라스에 하청노동자 178명을 직접고용하라는 시정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사히글라스가 이에 응하지 않았고 노동부는 과태료 17억8천만원을 부과했는데, 아사히글라스는 과태료 부과에 대한 이의신청 재판을 걸었다. 2021년 10월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민사·형사소송에서 불법파견 판단이 엇갈린다”며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법원의 결정에 불복해 과태료를 받아내려면 대구지검 김천지청이 즉시항고 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다. 17억8천만원의 과태료는 날아가 버렸다.

차 지회장은 “(소송에서) 이겼어도 9년의 시간을 보상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반면 회사가 9년 동안 입은 손해라고는 법률비용 말고는 거의 없다. 바로 이점 때문에 불법파견이 만연하고 있다고 그는 강조한다. 차 지회장은 “노동자들이 10년째 길거리 투쟁하는 동안 회사가 지금까지 피해본 것은 앞으로 형사재판(파기환송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 것이 전부”라며 “불법파견은 명백한데 누구도 처벌 받지 않으니, 기업은 아무런 압력을 받지 않고 법적 다툼을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아리셀 화재 참사에서 하청노동자들이 희생된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에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니 불법파견은 더 확대되고 만연하고 있다”며 “아리셀 참사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불법파견을 방치해 발생한 참사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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