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넘게 흙속에 묻힌 관음상…마침내 찾은 눈부신 황금빛

노형석 기자 2024. 7.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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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 특별전 ‘다시 찾은 신라의 빛’
선림원터 금동불상, 5년 넘는 대수술 끝에 재공개
국립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지난 5월부터 단독전시 중인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 금동보살입상. 대좌와 광배, 몸체의 장신구 등을 모두 따로 만든 다음 결합해 만든 8~9세기 통일신라 금동불상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된다. 저 반사 유리로 만들어진 특제 진열장 안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샛노란 황금빛 찬란한 금동불상은 1000년 이상 두메산골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

8~9세기 신라 경주의 최고 장인들이 중생을 구원해달라고 빌며 지극정성으로 만든 관음보살 입상이었다. 그의 운명은 가혹했다. 경주에서 강원도 양양군 산속 절로 옮겨져 수행하던 승려들의 시선을 받다가 그만 산사태로 절집과 함께 매몰되어 버렸다. 두메산골 땅속에서 빛과 형상을 잃은 채 으스러졌던 암흑의 세월은 21세기가 되어서야 풀렸다. 9년 전 기적적으로 고고학자들의 삽날에 불상의 몸체가 걸린 것이다. 온통 푸른 녹과 흙으로 범벅됐던 불상의 몸은 5년이 넘는 보존과학자들의 대수술 끝에 녹을 걷어내고 눈부신 황금빛을 되찾았다. 흩어졌던 받침대 대좌와 광배, 화려한 장신구도 대부분 온전히 자신의 몸과 일체가 될 수 있었다.

2015년 선림원 터 유적에서 막 출토됐을 당시 불상의 모습. 푸른녹이 잔뜩 슨채로 흙과 뒤엉켜 있었다. 노형석 기자

지난 5월부터 국립춘천박물관 단독 특별전 ‘다시 찾은 신라의 빛’을 통해 선보이고 있는 강원도 양양 선림원터 출토 통일신라시대 금동보살입상(보물)은 눈부신 자태 속에 이런 비사를 담고 있는 걸작이다. 2015년 양양 선림원터에서 발굴된 보살상으로, 오랜 보존 복원처리 과정을 거쳐 한반도 고대 불상 가운데 가장 찬란한 황금빛을 지닌 자태가 되살아났다. 대좌와 광배를 포함해 높이 66.7㎝의 이 관음보살입상은 출토지가 명확한 통일신라의 소형 금동상들 가운데 가장 클 뿐 아니라 대좌와 광배, 장신구를 온전히 갖췄고 머리카락, 입술, 수염 등에 석채와 먹으로 채색한 흔적까지 그대로 남은 유일한 불상이다.

금동보살입상의 머리와 얼굴 부분. 엄숙하면서도 깊고 인자한 표정을 짓고있다. 머리카락과 눈매, 수염 등을 먹과 남색 안료를 칠해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한반도산 불상의 얼굴과 몸 세부에 먹과 안료를 쓴 흔적이 드러난 것은 선림원 터 금동불상이 유일하다. 노형석 기자

푸른 녹을 제거하는데만 4년 넘는 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지난 2021년 국립문화재복원센터에서 복원을 마치고 지난해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처음 대중에 공개된 바 있다. 첫 공개는 아니지만 이번 박물관 전시는 지난해 전시보다 훨씬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국립박물관의 보존 전문가들이 합심해 상 뒤에 남은 광배의 세부와 일부 영락(구슬 장신구) 등의 복원까지 마쳤고, 저 반사 유리로 된 특제 진열장까지 갖춰 360도로 돌아가면서 불상의 세부를 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선림원터 보살상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를 통틀어 고대 불상 가운데 장식성이 가장 뛰어나고 화려한 작품으로 첫손에 꼽힌다. 장식성을 살리는 것은 여러 겹의 공간에 걸쳐 장식물을 두르면서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첩경인데, 선림원터 불상은 이런 기법을 최대한 발휘해 몸의 장신구는 물론, 대좌(불상을 올려놓는 대)의 여러 기물까지 각기 따로 분리된 공예 소품들을 붙여놓았다. 광배의 불꽃무늬와 생동하는 식물의 당초(덩굴) 무늬를 뚫음 무늬인 투각으로 처리하면서 보살 몸체의 화려한 자태와 조화시킨 것도 절묘하다.

바로 가까이에서 상을 볼 수 있기에 머리카락과 눈매, 수염 등을 먹과 남색 안료를 칠해 표현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한반도산 불상의 얼굴과 몸 세부에 먹과 안료를 쓴 흔적이 드러난 것은 선림원터 금동불상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금동보살입상의 목과 가슴, 배 부분도 눈길을 붙잡는 부분이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천의자락을 배경으로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달린 목걸이가 있고 그 아래 배 부위에는 정교한 만듦새의 사각형 장신구가 호화로운 장식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시를 위해 시간을 두고 종이 맥놀이를 하듯 강렬해졌다가 은은해졌다가를 되풀이하는 특제 조명의 효과도 입체적인 감상을 돕는다.

금동보살입상 상반신을 옆에서 본 모습. 노형석 기자

올해 상반기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불교미술전의 고갱이로 전시 뒤 일본으로 돌아간 백제금동관음상과 이 불상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둘 다 신라와 백제의 불교신앙과 예술성, 기술력이 반영된 절정의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아이 같이 순수하고 맑은 백제관음상의 천진무구한 표정에 비해 200년 뒤에 나온 선림원터 관음상은 엄숙하면서도 그윽하고 인자한 절대자의 표정을 짓고 있다.

금동보살입상의 목과 가슴, 배 부분.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천의자락을 배경으로 꽃봉오리 모양의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목걸이가 있고 그 아래 배 부위에는 정교한 만듦새의 사각형 장신구가 보인다. 노형석 기자

엄숙하지만 몸체는 세속화하는 중국 당송대 불상이나 극도의 공포심을 안겨주는 표정으로 악귀를 제압하는 동시기 일본 헤이안 불상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신라만의 특징이다. 5~6세기 신라 고분의 황금 금관과 장신구에서 보이는 정교한 금속세공술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도상 측면에서 후대 더욱 깊어지고 원숙해진 통일신라 불상예술의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28일까지.

춘천/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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