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의 비만약 개발 전략은
퇴행성뇌질환 치료 잠재력도 확인
"세분화된 니즈 맞춘 개발전략 중요"
"제가 이 장소에서 3년째 좌장을 맡고 있는데 오늘이 가장 비만스러운 날인 것 같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3층 컨퍼런스룸. 비만약으로 주로 쓰이는 장 호르몬인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를 주제로 열린 '바이오플러스인터펙스 2024(BIX2024)' 세션에서 좌장을 맡은 배진건 이노큐어테라퓨틱스 부사장은 행사장을 가득 채운 청중들을 둘러보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세션에는 국내에서 비만약을 개발하는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 프로젠, 디엔디파마텍 네 곳이 참여해 개발 중인 비만신약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발표했다.
비만약은 최근 1세대를 뛰어넘는 2세대 약물이 등장하면서 글로벌 시장을 흔들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으로는 미국계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젭바운드'가 꼽힌다. GLP-1에 GIP(글루코스 의존성 인슐린 자극 폴리펩타이드)를 동시에 타깃하는 이중작용제로 수술에 버금하는 체중감소 효과를 임상에서 나타냈다.
국내 제약사들은 2세대 비만약이 상용화됐지만 복용 시 체지방과 함께 근육이 빠지고, 주사제형으로 투여 방법이 불편해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이른바 3세대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한미약품과 동아에스티는 근육량을 유지하면서 체지방만을 집중적으로 줄이는 원리의 비만 신약후보물질을 소개했다.
한미약품은 현재 GLP-1과 GIP에 글루카곤 수용체를 자극하는 삼중작용제인 'HM15275'를 개발하고 있다. 지난달 미국에서 열린 당뇨병학회(ADA 2024)에서 위고비와 젭바운드보다 우수한 체중감량 효과를 나타낸 전임상 시험결과를 발표했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연구개발)센터장은 "지금은 단순하게 체중감량 수치를 두고 경쟁한다면 앞으로는 체중감량의 퀄리티가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라며 "HM15275는 근육이 아닌 체지방감소로 인한 체중감량을 유도하는 유니크한 특징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동아에스티는 GLP-1과 글루카곤 수용체에 동시에 결합하는 이중작용제 'DA-1726'의 임상 1상 시험을 미국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 약물은 식욕억제뿐만 아니라 에너지 대사량을 늘리는 원리로 전임상 시험에서 근손실과 약물복용 중단 후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요요현상을 최소화하는 약효를 나타냈다.
김미경 동아에스티 연구본부장은 "저희는 체중을 빼는 질에 더 많은 초점을 두고 약물타깃을 선정했다"며 "DA-1276은 베스트인클래스(계열 내 최고) 수준의 잠재력을 가진 약물로 올해 말 완료 예정인 임상에서 약물의 특성이 잘 구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프로젠은 GLP-1에 더해 GLP-2를 타깃하는 새로운 원리의 비만신약 'PG-102'을 소개했다. GIP-2는 장 점막을 보호하는 효능으로 지난 2012년 단장증후군 치료제('가텍스')로 허가를 받은 적이 있지만 비만 치료제로 잠재력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프로젠도 처음에는 PG-102를 비알코올성지방간염(MASH) 치료제로 개발하다 2021년 초 비만으로 개발 방향을 바꿨다.
PG-102는 프로젠의 융합단백질 플랫폼 'NTIG(엔티그)' 기술로 도출한 물질로 전임상에서 젭바운드보다 제지방(체중에서 지방을 뺀 근육, 골격 등의 무게) 대비 체지방량 감소율이 약 두 배 높은 것을 확인했다. 현재 국내에서 임상 1a상을 끝내고 용량 증량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김종균 프로젠 대표는 "GLP-1과 GLP-2 이중작용제로 개발하는 유일한 경쟁사인 덴마크의 질랜드파마는 최근 임상에서 실망적인 결과를 보였다"며 "이와 달리 저희 약물은 두 성분의 활성비율을 최적화했고 비임상에서 2세대 비만약보다 체중감량의 질이 우수한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디엔디파마텍은 GLP-1 기반의 비만약의 치료 가능성을 퇴행성뇌질환인 파킨슨병으로 확장한 사례를 소개했다. 회사가 개발 중인 비만약 후보물질 'NLY01'은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시험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지만 60세 미만 환자들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치료효과를 확인했다.
이슬기 디엔디파마텍 대표 "전체 파킨슨병 환자 중 40%가량이 60세 미만"이라며 "최근 존스홉킨스대학과 미국 국립보건원(NIH)과 공동연구를 시작했고 우리의 임상 데이터에 관심 있는 빅파마(거대 제약사)와 접촉해 재임상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최인영 한미약품 R&D센터장은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어떠한 계열의 비만약이 시장을 주도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앞으로는 각각의 비만 환자들의 니즈가 세분화돼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며 "세부화된 니즈에 맞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올바른 전략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김윤화 (kyh9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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