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붐’ 탔다지만…검증된 작품에 몰리는 관객들
코로나 이후 상업영화관보다 심각하게 관객 회복에 고전했던 예술영화관이 최근 활기를 찾고 있다.
지난달 5일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개봉 5주 만인 10일 관객 18만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19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프렌치 수프’는 4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3일 개봉한 야쿠쇼 코지 주연의 ‘퍼펙트 데이즈’는 개봉 일주일 만에 관객 2만5000명을 넘기며 ‘존 오브 인터레스트’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여기에 1985년 작으로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일본 영화 ‘태풍클럽’까지 개봉 2주 만에 1만명을 돌파했다. 1만명을 넘기는 영화가 가뭄에 콩 나기보다 드물었던 지난해와 대조적이다. 예술영화 전성기로 꼽히던 1990년대 중후반이나 2015~2016년의 극장가가 재현된 듯한 풍경이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칸국제영화제와 아카데미 수상 이력에도 불구하고 아우슈비츠라는 무거운 소재와 실험적인 영화작법 때문에 수입사 찬란조차도 흥행을 예상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의 수상작들이 모두 개봉하고도 한참 뒤에야 개봉한 이유다. 찬란의 강지은 마케팅배급팀장은 “작품은 너무 좋았지만 칸에서 구매를 결정할 때 직원들의 반대가 컸다”고 회고했다. 흥행성이 낮은 데다 판매가를 높게 책정하는 미국 예술영화 제작배급사 에이(A)24 작품이었던 탓이다. 하지만 과감한 결단이 빛을 봤다. 개봉을 늦춘 게 되레 시네필과 영화 인플루언서들의 궁금증으로 이어지며 관심을 높여 개봉 직후부터 20~30대를 중심으로 흥행 몰이하면서 40~50대로 관객이 확대됐다. 강 팀장은 “사운드가 중요한 작품이라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로 자리매김 된 게 잠재관객들을 극장으로 나오게 한 요인이 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찬란이 수입한 독특한 공포영화 ‘악마와의 토크쇼’도 지난 5월 개봉해 누적 관객수 10만명을 넘겼다.
코로나 이전과 견줘 시장 규모가 60% 정도로 축소된 예술영화 시장의 침체를 꺾은 계기는 지난해 11월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괴물’로 꼽힌다. 한국에 팬층이 두꺼운 고레에다 연출에 이 작품으로 칸 각본상을 탄 사카모토 유지가 스릴러 형식으로 쓴 대중적 서사 덕에 5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이 작품이 예술영화의 문턱을 낮추며 올 초 개봉한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과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롱테이크 전개에도 불구하고 10만명을 돌파했다. 통상 시장에서 예술영화 10만명은 상업영화 1000만과 비교되곤 하는 기록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장을 예술영화 부흥기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1000만명과 200만명 사이의 허리가 끊어진 상업영화시장처럼 예술영화 역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한 탓이다. 올 해 이탈리아 젊은 감독인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키메라’와 ‘태풍 클럽’을 수입 개봉해 관객 1만명을 넘긴 임동영 엠엔엠인터내셔널 대표는 “영화시장이 바뀌면서 감독의 지명도나 수상 실적 등으로 검증된 영화들에 티켓값을 지불하려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면서 “알려지지 않은 신인감독의 작품은 홍보에 품이 많이 들어가는데 관객은 수백명 수준에 머무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작품 수입이나 개봉 결정도 전보다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최근 1990년대와 2000년대 개봉했던 예술영화 재개봉이 쏟아지고 있는 배경에는 모험보다 안전한 선택을 원하는 관객들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맞춰 많은 예술영화 수입사들이 개봉이 끝난 특정 감독의 판권을 아카이브처럼 구매하는 것도 최근의 변화된 흐름이다. 엣나인필름은 90년대 예술영화 붐을 일으켰던 라스 폰 트리에의 주요 작품 17편의 판권을 구매해 그중 12편을 10일부터 기획전 형식으로 상영하고 있다.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인 에릭 로메르와 90년대 인기작을 쏟아낸 왕자웨이(왕가위)는 아트하우스 기획전의 단골 감독들이다.
‘추락의 해부’, ‘프렌치 수프’를 수입한 그린나래미디어 유현택 대표는 “몇몇 영화의 흥행으로 예술영화 붐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기대하는 관객층의 존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면서도 “바이럴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권 밖에 있는 좋은 작품들을 어떻게 관객에게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수입사들의 고민이 더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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