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뿐인 다리로 1㎞ 수영한 사자…곁에 형이 지키고 있었다
우간다 국립공원서 헤엄치는 사자 모습 포착
한 마리는 밀렵 피해로 뒷발 잃은 ‘세 발 사자’
형제 관계인 사자 두 마리가 악어떼가 득실거리는 수로를 1.5㎞가량 헤엄쳐 건너는 희귀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자가 이렇게 장거리를 수영하는 모습을 촬영한 것은 처음인데다 두 마리 가운데 한 마리는 밀렵꾼이 설치한 올무에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된 상태였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대 알렉산더 브라츠코프스키 박사와 연구진은 지난 2월 아프리카 내륙국가인 우간다의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 내 ‘카징가 수로’에서 1㎞ 이상 헤엄치는 수사자 두 마리의 모습을 드론에 장착한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밝혔다. 사자들의 행동을 담은 논문은 10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생태학과 진화’에 공개됐다.
15m→80m…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네 번 시도
논문을 보면, 당시 수로를 헤엄쳐 건넌 수사자의 이름은 ‘제이콥’과 ‘티부’였다.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 동북쪽에는 헤오르헤호수, 남쪽에는 에드워드호수가 있는데 사자들이 건넌 카징가 수로는 이 두 호수를 잇는 물길이다. 사자들은 공원의 한 쪽 편에 주로 머물렀는데 2월1일 수로 건너편 지역으로 가기 위해 1~1.5㎞를 헤엄쳤다. 수로에는 몸길이가 수 미터에 이르는 나일악어와 하마 등 대형동물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사자들이 수로를 헤엄쳐 건너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이 연구진 설명이다.
실제로 사자들은 물속에서 악어나 하마를 만난 듯 수로에 들어갔다가 3번이나 다시 돌아왔고, 4번째 시도에서야 수로를 완전히 건널 수 있었다. 다만 사자들은 횡단 시도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헤엄치는 거리를 늘렸다. 첫번째 시도에서는 두 마리가 함께 15m를 헤엄쳐 갔다가 빠르게 되돌아왔다. 두번째 시도에서는 수영 거리를 80m로 늘렸는데, 중간에 ‘방해물’(나일악어나 하마로 추정)을 만난 듯 서로 흩어졌다가 되돌아왔다.
그러나 사자들은 좌절하지 않고 재차 수영을 시도했고, 4차 시도에서 마침내 수로 건너편 지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자가 강이나 호수를 헤엄쳐 건너는 일은 종종 관찰됐지만, 그 거리는 10~100m 미만이었다고 한다. 연구진은 이번 관찰이 아프리카사자의 최장거리 수영 기록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랑꾼 사자 형제
사자 형제는 왜 익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로를 건너갔을까. 연구진은 그 이유를 3가지로 추정했다. 우선 원래 살던 서식지에는 번식을 위한 암사자가 거의 없었다. 다른 수컷 무리와의 영역 다툼 때문에 서식지를 옮겼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그리고 사자들이 원래 서식지에서 수로 건너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유일한 육로인 작은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다리로는 사람이 많이 오가기 때문에 기피했을 것이라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브라츠코프스키 박사의 설명을 들어보면, 사자 형제 가운데 ‘제이콥’은 매우 힘든 삶을 살아왔다. 브라츠코프스키 박사는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에 “이들의 부모는 모두 밀렵에 의해 사망했다. 제이콥 또한 밀렵꾼의 올무에 뒷발이 걸렸고 결국 다리 하나를 제대로 못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브라츠코프스키와 동료들은 제이콥의 형제인 티부가 어떻게 다친 가족을 보살피는지 관찰하다가 이들의 수영 장면을 촬영하게 됐다고 한다. 브라츠코프스키 박사는 “사자의 형제애는 다리를 잃은 장애를 훨씬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사자 형제의 용감한 시도가 사자 개체수의 감소, 인간의 서식지 침범 등의 문제가 불러온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지난 5년간 국립공원 내 사자 개체수는 72마리에서 39마리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공원 안에 6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들은 야생동물을 밀렵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면서 동물의 영역을 침범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한 개체군을 유지하려면 수사자 한 마리당 암사자 2마리 비율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현재 퀸 엘리자베스 국립공원에는 이와 반대로 수사자가 더 많다고 한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미국 노던애리조나대 듀안 빅스 교수는 “밀렵꾼의 덫에 걸려 다리를 잃은 세 발 사자가 암사자를 찾기 위해 악어가 득실거리는 수로를 헤엄쳐 건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야생동물 보전의 필요성을 알리는 한 장면”이라고 뉴사이언티스트에 말했다.
인용 논문 Ecology and Evolution: DOI: 10.1002/ece3.11597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년 최저임금 1만30원…역대 두번째 낮은 1.7% 인상
- 명품백·채상병 수사·댓글팀 의혹…야 ‘김건희 게이트’ 정조준
- “미 핵자산으로 북핵 대응” 한-미 정상 첫 명문화
- 박찬대 “윤 대통령 부부, 모든 의혹의 근원…김건희 직접 조사 불가피”
- 김건희 “한국 드라마 봤다고 중학생 30명 공개처형…북 잔혹한 현실”
- 조국, ‘한동훈 후보 머리카락 가발인가’ 합성사진 올렸다
- 이진숙, ‘재산 누락’ 4억 재신고…“촉박하게 준비하다보니”
- 고려대 의대 교수들 ‘무기한 진료 축소’…중증·응급환자에 집중
- 당신이 ‘여기’에 존재하기에 우린 몫을 나눌 의무가 생긴다 [책&생각]
- ‘고작 계집’에서 삼국지의 ‘히로인’으로 [책&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