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유화책`에도 동맹휴학 여전…의대생 96% "국시 거부하겠다"

강민성 2024. 7. 1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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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의과대학 자율학습실 <사진: 연합뉴스>

2020년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거부 사태가 재현될 조짐이다. 대부분의 의대생이 끝내 국시를 거부할 경우 매년 약 3000명 배출되던 신규 의사 공급이 끊긴다. 대형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하는 전공의들이 사라질 뿐 아니라, 전문의 배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의료계에서는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까지 더해지면 의료공백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내년도 의사 국시를 치러야 하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본과 4학년 대부분이 응시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는 의사 국시 응시 예정자인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 3015명에게 설문한 결과, 응답자(2903명)의 95.52%(2773명)가 국시를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 제출을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은 지난 달 의사 국시 시행 계획을 공고했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9∼11월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국시 실기시험과 이듬해 1월 필기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한다. 응시 대상자 확인을 위해 각 의대는 졸업 예정자 명단을 지난달 20일까지 국시원에 제출해야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응시 예정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가 필요하다.

의대협은 개인정보 제공을 하지 않을 경우 의사 국시 접수가 불가능해진다며, 정부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강경한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시를 거부하는 본과 4학년뿐만 아니라, 다른 의대생들의 동맹휴학 분위기도 여전하다.

이들은 의대 증원에 반발해 5개월째 수업을 거부하고 있으며, 정부의 '유화책'에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의대생들이 유급하지 않도록 유급 판단 시기를 기존 '학기 말'이 아닌 '학년 말'로 조정하고 수업일수 단축까지 허용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손정호 의대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원하는 바는 이미 의대협 대정부 요구안을 통해 전달했다"며 "앞으로 일어날 사태는 모두 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고,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정부는 조속히 결단을 내리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앞서 의대협은 의대 증원 및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전면 백지화, 수련환경 개선, 휴학계에 대한 공권력 남용 철회 등 8가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의대생들은 2020년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때도 동맹휴학과 국시 거부로 맞선 바 있다.

결국 정부는 의대 증원을 포기했고, 의대생을 구제하기 위해 국시 재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대학병원장들이 젊은 의대생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2021년 국시 실기시험은 상·하반기로 나눠 두 차례 실시됐고, 재응시 기회를 얻은 의대생들은 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취득했다.

2020년 때처럼 '면죄부' 논란이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의사 국시를 추가 실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 중이다. 이번 검토는 의대생 대부분이 수업을 거부하면서 정상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점도 고려했다. 정부는 본과 4학년 학생들이 복귀 후 남은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의료계에 진출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시 추가 실시 검토 등 '유화책'에도 불구하고, 의대생들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의대 교육 현장이 정상화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약 대규모 국시 거부가 현실화할 경우 신규 의사인력 수급 차질은 물론, 의료시스템 전반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의대 졸업→의사 면허 취득→인턴·레지던트 등 전공의 수련→전문의 자격 취득' 등 일련의 의사 양성체계에 '공백'이 생기면 쉽게 메울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도에 신규 의사가 배출되지 않으면 병원에서 전문의가 되고자 수련 과정을 밟기 시작하는 '막내 전공의'인 인턴이 들어올 수 없게 된다.

인턴이 들어오지 않으므로 레지던트는 물론, 이후 전문의 배출에 차질이 생긴다. 군대와 농어촌 지역 의료를 책임지는 군의관 및 공중보건의사(공보의) 신규 인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공의들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의대생들의 국시 거부마저 현실화할 경우 의료 공급 차질과 환자들의 고통 등 의료공백이 더욱 심각해진다는 얘기다. 서울시내 한 의대 교수는 "의대부터 시작해 전공의 수련, 전문의 자격 취득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은 모두 연간 단위로 촘촘히 구성돼 있다"며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그 공백을 쉽게 메울 수가 없고 파급 효과도 연쇄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대생들이 국시 거부를 선언하지 않더라도, 그동안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국시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내년도에 배출되는 의사가 없게 되는 '최악의 사태'를 우려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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