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의 수사학, 출처 제시의 심리학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출처가 트웨인으로 제시되는 어록 중 몇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학교가 내 교육을 방해하도록 하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영웅은 없을 것이다.”
“고전은 누구나 읽었으면 하지만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책이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각운(脚韻)을 맞출 뿐이다.”
잠시 넷째 어록을 설명한다. 역사적인 사건의 경로는 저마다 다르게 전개되지만, 이루어질 일은 마침내 이루어지고 어그러질 일은 결국 어그러진다는 의미다. 한자권의 비슷한 사자성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인데, 이는 위 경구에 비해 단순하다.
아인슈타인도 많은 어록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그중 넷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똑같은 일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신은 매우 고차원적인 수학자로서, 우주를 만들 때 엄청난 고등수학을 사용했다.”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당수가 이런 느낌을 받았으리라. ‘비범한 인물의 경지는 저토록 높은 것인가. 한 사람이 평생 하나 쓰기도 어려운 명언을 그들은 이렇게 많이 남기다니. 나 같은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범접하지 못할 경지로군.’
이제 사실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보통 사람의 사기를 다소나마 되살려주는 사실이다. 트웨인과 아인슈타인이 명언을 여럿 남기기는 했지만, 그 숫자는 흔히 인용되는 것보다 훨씬 적다.
그러나 트웨인은 공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독학한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1884년 발행된 수필 〈자전거 길들이기〉에서 “그들은 정확하게 아는 경우가 드물고 교사에게서 배웠다면 학습했을 지식의 십분의 일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이어 자신이 공교육을 덜 받았다며 뻐기는 사람은 그저 “자신처럼 생각이 부족한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전철을 밟도록 이끌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말의 출처와 교육에 대한 트웨인의 생각은 ‘마크 트웨인 연구’ (https://marktwainstudies.com/) 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영웅은 없을 것이다”는 트웨인이 한 말이다. 그는 〈자서전〉에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의 영웅들은 우리가 후회하는 일을 하거나 우리가 하지 못해서 남몰래 부끄러워하는 일을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서는 존경할 거리를 별로 찾지 않는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 한다. 만약 누구나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영웅은 없을 것이다.”
“고전은 누구나 읽었으면 하지만 누구도 읽고 싶지 않은 책이다”라는 말은 트웨인이 하긴 했지만, 그가 생각해낸 표현은 아니다. 이 말은 미국 영문학자 칼렙 토머스 윈체스터가 했다. 트웨인은 이를 인용하면서 널리 확산했다. 1900년 ‘19세기 클럽(Nineteenth Century Club)’을 대상으로 한 ‘문학의 실종’ 주제 강연을 통해서였다. 그는 “여기 계신 분 중 〈실락원>을 읽지 않으셨을 거고, 읽고 싶어 하는 분도 없을 겁니다”라면서 〈실락원>이 윈체스터 교수가 정의한 고전의 사례라고 말했다.
“역사는 각운을 맞춘다”는 트웨인이 한 적이 없는 말이다. 출처 조사 사이트 (https://quoteinvestigator.com)에 따르면 트웨인은 1910년에 타계했고 그를 출처로 이 말이 인용된 것은 1970년대부터다.
아인슈타인 차례다. “똑같은 일을 거듭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을 그가 했다고 인용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가 이 말을 했다는 증거는 없다. 출처와 관련해 다른 유명 인사를 대는 언급도 있지만 그 또한 사실이 아니다. 아마도 무명씨(無名氏)가 이 문장을 지은 다음 널리 퍼뜨리려고 출처를 아인슈타인으로 댄 듯하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로써 양자역학이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단지 확률만을 다룬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론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회고에 따르면, 192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너무나 자주 반복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다. 이 말은 다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했다. "신은 매우 고차원적인 수학자로서, 우주를 만들 때 엄청난 고등수학을 사용했다”는 말도 다른 물리학자 폴 디렉이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는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남긴 말로 인용되곤 한다. 하지만 검색 사이트에서 스피노자의 어록을 찾아보면 이 문장은 나오지 않는다. 다른 자료는 이를 독일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의 발언이라고 출처를 댄다.
그러나 루터 관련 사이트들을 찾아보면 그가 실제로 이 발언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하인츠 실링이 쓴 책 〈마틴 루터: 격변의 시대 속 반항자(Martin Luther: Rebel in an Age of Upheaval)〉(2017)에 따르면 이 말은 20세기에 만들어졌다.(이 책은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스피노자도 루터도 원작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저 눈이 녹으면 흰빛은 어디로 가는가.” 이 문장은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오후 네 시〉에 인용됐다. 한국 작가 이화경의 단편선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에도 쓰였다. 이들은 이 문장의 원작자가 영국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라고 전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이 말을 어느 작품에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아기 신발 팝니다. 한 번도 안 신은(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썼다고 전해지는 여섯 단어 소설이다. 이 소설의 탄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곧잘 인용된다. 어느 날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헤밍웨이에게 여섯 단어 소설 쓰기 내기를 제안했더니 그가 이 여섯 단어 이야기를 써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섯 단어 소설은 헤밍웨이의 작품이 아니다. 위키피디아 등 여러 사이트에 따르면 이 초단편소설은 1900년대 초부터 인용됐고, 헤밍웨이가 원작자라는 얘기는 그가 타계한 지 30년 뒤인 1991년에 처음 나왔다.
“오늘 내게 닥친 불행은 과거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이 말은 흔히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했다고 인용된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어록 목록에 이 문장은 수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말은 미국의 성공학 연구자 나폴레온 힐이 하지 않았을까? 힐의 어록에도 이 말은 나오지 않는다.
주제에서 벗어난 여담. 이 글을 쓴 기법을 공유한다. 이 글의 주제는 ‘인용과 출처 제시’다. 관련 사례가 꼭 필요하다. 그게 없으면 내용을 전개하지도, 분량을 채우지도 못한다.그러나 관련 사례를 열거할 경우 글이 짜임새 없이 늘어진다. 필자가 선택한 대안은 앞부분을 두 인물로 묶는 것이다. 트웨인과 아인슈타인을 묶고, 출처가 그들로 제시된 명언을 소개했다. 그 다음 각각의 사실 여부를 알아보는 순서로 구성했다.
본론으로 돌아온다. 이들 사례를 통해 우리는 글쓰기에 참고할 노하우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독자들은 글의 구성 요소로서 인용문을 좋아한다. 둘째, 독자들은 유명 인사가 한 말이 인용되면 더 좋아한다. 자기가 쓴 문장이 널리 전파되기를 원하는 필자는 그래서 글쓴이 자리에 자기 대신 명사의 이름을 채운다.
이와 같은 인용의 수사학과 출처의 심리학은 틀린 출처를 갖다 붙인 인용문이 왜 그렇게 많아졌는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다만 정확한 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인용문의 틀린 출처 제시는 피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트웨인의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그는 자기 글도 잘 썼고, 인용도 잘했다. 인용할 때면 출처를 댔다. “거짓말에는 세 부류가 있는데, 거짓말과 새빨간 거짓말, 통계다”를 인용할 때는 영국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디즈레일리가 이 말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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