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 몰락시킨 그 남자…'한국계' 빌황 유죄, 평생 수감되나

2021년 월가에 13조 손실, '파생상품 마진콜' 사태의 핵심 인물…
미 뉴욕 법원서 열린 형사재판서 11개 혐의 중 10개 유죄 평결…
주요 금융사들 수수료 욕심에 황씨에 거액 대출했다 줄줄이 손해

3년 전 '파생금융상품 마진콜(추가증거금 요구)' 사태로 미 금융가에 100억달러(한화 약 13조8000억원) 손실을 안긴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 빌황(60·한국명 황성국)씨가 유죄 평결을 받았다./로이터=뉴스1

3년 전 '파생금융상품 마진콜(추가증거금 요구)' 사태로 미 금융가에 100억달러(한화 약 13조8000억원) 손실을 안긴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 빌황(60·한국명 황성국)씨가 유죄 평결을 받았다. 미 현지 언론들은 황씨가 남은 여생을 교도소에서 수감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1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블룸버그통신·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법원에서 열린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이하 아케고스) 설립자 황씨의 사기·공갈 등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배심원단(12명)은 11개 혐의 중 10개에 대해 유죄라고 봤다. 황씨와 함께 기소된 패트릭 할리건 아케고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개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았다.

두 사람은 2021년 3월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마진콜 사태의 핵심 인물들이다. 은행들이 높은 수수료를 바라고 황씨에게 거액을 대출해줬다가 손실을 본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범죄 사례로 꼽힌다.

황씨 가족회사인 아케고스는 금융사들과 총수익스와프(TRS)·차익거래(CFD) 등 계약을 맺고 보유자산의 5배가 넘는 500억달러(약 69조원) 상당을 주식에 투자했다. TRS는 계약 당사자가 주식 등 기초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비용을 상호 교환하는 신종 파생거래 기법이다. 총수익매도자(증권사)가 주가 변동에 따른 이익이나 손실을 매수자(운용사)에 이전하고 그 대가로 약정 수수료(이자)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CFD는 투자자가 기초자산을 실제로 보유하지 않고 매입가격과 청산가격의 차액 만큼 증권사 현금으로 결제하는 장외파생 상품이다.

아케고스의 마진콜 사태로 큰 손실을 입은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이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 위기로 내몰렸다. /로이터=뉴스1

2021년 미 월가가 발칵 뒤집힌 건 아케고스가 금융사 자금으로 사들였던 종목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마진콜 상황이 발생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아케고스는 파산을 신청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발 빠르게 문제의 담보 주식들을 블록딜로 내다 팔아 손실을 최소화했지만 대응이 늦었던 크레디트스위스(CS)·노무라·모건스탠리·UBS 등 다른 금융사들은 큰 손실을 입어야 했다.

미 금융당국은 당시 투자자들이 100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집계했다. 특히 160년 역사를 자랑했던 스위스 투자은행인 CS는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로 약 55억달러(약 7조60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고 휘청였다. CS는 이 손실 여파를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 위기로 몰렸고 결국 자국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미 연방검찰은 황씨 등이 금융회사를 속여 거액을 빌렸고 이를 자신들이 보유중인 주식 파생상품에 투자해 주가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아케고스의 레버리지(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활용해 자기 자본 이익률을 높이는 것) 비율은 한 때 1000%에 달했다"며 "아케고스의 사업은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불안정한 계획)'이자 거짓이었다"고 밝혔다.

아케고스 설립자 빌황 측은 "월가의 일반적인 차입 투자 기업일 뿐 투자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진=블룸버그

빌황과 함께 기소된 아케고스 최고재무책임자 패트릭 할리건/사진=블룸버그

이에 대해 황씨 측은 "월가의 일반적인 차입 투자 기업일 뿐 투자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배심원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신들은 황씨 등피고인들이 각 혐의에 대해 최대 20년형을 받고, 남은 여생을 교도소에서 보낼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미국은 개별 범죄의 형량을 모두 합산해 처벌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다. 이 사건을 심리한 앨린 헬러스타인 판사는 오는 10월 28일 황씨에 대한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다.

송지유 기자 clio@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