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60대에 시작한 경비원의 삶

유영규 기자 2024. 7. 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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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 경비원,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경비원 A 씨의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4시 20분에 일어나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먹고 출근합니다.

5시 40분에 아파트 경비실에 도착해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십니다.

눈이라도 오면 제설작업에 나서야 합니다.

고되지만 일을 마친 후 마시는 커피는 꿀맛입니다.

커피를 마시며 밖을 보면 새벽바람을 맞으며 출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회상에 잠깁니다.

"사람들이 일터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커피를 내리던 시간은 꿈이었을 것이다."

A 씨는 새벽의 단상을 엑스(X·옛 트위터)에 적어 올렸습니다.

살아가기의 버거움, 슬픔, 가끔 솟아올랐다가 꺼져버리는 희망을 두서없이 썼습니다.

아무런 홍보가 없었는데도 1만 7천 명의 팔로워가 생겼고, 일주일에 45만 뷰가 꾸준히 찍혔습니다.

최근 출간된 '나는 가장 슬픈 순간에 사랑을 생각한다'는 2021년 1월부터 2024년 4월까지 A 씨가 쓴 트윗을 모은 에세집입니다.

A 씨의 필명은 '새벽부터'입니다.

책은 경비원의 일상을 세심하게 담았습니다.

목련이 만개하고 벚꽃이 피어나면 주민들의 가슴은 설레지만, 경비원들의 마음은 무거워집니다.

빗자루질에 익숙해져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하늘이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들과의 "불화"(不和)는 경비원의 숙명. 제설작업, 제초와 전지(剪枝)작업, 낙엽 쓸기는 경비원의 3대 과제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경비원은 많이 걷고 많이 움직여야 합니다.

갑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도 있다지만 저자에겐 다행히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상추나 커피 같은 소소한 선물을 주고, 덕담을 건네는 주민들이 많았습니다.

"세상일의 절반은 주어진 업무에 있고, 나머지는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직장인 셈입니다.

좋은 책과 음악, 산책 중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 등 일상의 즐거움도 간혹 찾아오지만, 60대인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는 슬픔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암 투병 중이고, 존경하는 아버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도 요양병원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 외에 밝히기 힘든 고통이 삶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다고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더 넉넉해지지도, 여유로워지지도, 지혜가 깊어지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가 느낀 60대는 "마음은 더 흔들리며 눈물을 자주 참게 되는" 그런 나이였습니다.

"삶이 혼란스러울 때 내가 기다렸던 것은 60대였다. 60대가 되면 나를 위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희망은 허망한 것이어서 내 주위는 온통 지뢰밭이다. 한 걸음도 마음 놓고 디딜 수 없다. 의무는 선택의 여지와 무관하다. 경비 근무를 마치고 병실에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그렇다."


(사진=워터베어프레스 제공,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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