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와 무관한 정신질환…해고할 수 있을까
백승현 2024. 7. 11. 12:01
한경 CHO Insight
직장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직원의 정신질환은 직원 자신의 건강을 악화시킴과 동시에 동료들의 건강, 안전 및 업무수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안전배려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여간 고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이하에서는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이에 대응할 때 고민할 필요가 있는 중요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신질환 확인은 다양하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통해
근로자의 정신질환이 의심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정신질환의 유무 및 정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야 적절한 조치 및 대응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사관리 실무를 보면 일단 직원에게 정신과 진단부터 받도록 함으로써 질환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큰 틀에서 틀린 접근법은 아니지만, 좀 더 차근차근 질환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먼저, 해당 직원과 진찰 관련 협의를 하기 전에, 다른 직원들의 진술을 청취해야 한다. 보통 사용자는 주변 동료들의 제보에 의해 해당 직원의 정신질환 관련 정황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보를 그냥 제보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동료직원들을 대상으로 해당 직원의 행동 양태에 관한 진술조사를 하여 진술을 채록해 두는 것이 좋다. 이는 사용자가 각종 인사조치를 함에 있어 중요한 보강증거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의학적 진단 및 치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원들의 진술은 보조적인 자료이므로 정신질환의 확정에는 의학적 진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진단서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성과 객관성을 갖춘 의학적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하급심 판례 중에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인 보건관리자가 직원을 ‘정신분열증 의증’으로 진단하자 사용자가 휴직을 명령하였고 직원이 복직조건인 종합병원 진단서 제출을 거부하자 해고한 사례에서 보건관리자가 정신질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해고를 무효로 본 경우가 있다(서울중앙지법 2017. 6. 16. 선고 2016가합550436 판결). 이러한 판례의 논지는 납득할만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로 구성된 보건관리자(산업보건의)의 경우 전문분야가 근골격계, 심혈관계 등 ‘외형적 질환’인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소견의 초점이 질환 자체보다는 업무적합성(노동능력)에 맞추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서만 있고 업무적합성(노동능력)에 관한 자료는 없다면 그 역시 곤란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은 대개 정신질환 자체에 포커스가 맞추어지므로 업무적합성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적 자료’는 업무적합성 평가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이 병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경우에도, 별도의 진료의뢰 없이 직원에게 ‘알아서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받아오도록’ 지시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직원이 진찰받으려고 하는 병원의 전문성이나 신뢰성이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때때로 진료대상 직원이 세션(session)이나 심리검사 등을 진행할 때 자신의 병세를 방어적으로 진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의가 진료의뢰의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직원을 진료하게 되면 정확한 진단을 도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부정확한 진단은 사용자의 인사관리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환자의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직원 개인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가급적 회사에서 진료의뢰의 배경을 기재한 의뢰서 등을 작성하여 의료기관에 전달하는 것이 좋으며, 의뢰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직원에게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위해 필요함을 밝히고 내용에 대해 동의를 받는 것이 좋다.
그 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특수관계에 있는 병원에 진단을 의뢰하여 진단의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사내 보건관리자의 진단을 참고하더라도 질환유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뢰성 있는 의료기관에 의뢰를 할 필요가 있으며, 의뢰할 의료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직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고는 최후 수단 … 치료·회복 기회 주고 직무조정 배려해야
정신질환의 정도가 기존의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다면 곧바로 해고가 가능할까. 질환의 정도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판례의 태도를 보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체장해로 인한 통상해고’에 관한 판례의 태도를 참고해 볼 수 있다. 판례는 상병을 원인으로 한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는 종업원이 장해를 입게 된 경위 및 장해가 사용자의 귀책사유 또는 업무상 부상으로 인한 것인지의 여부, 종업원의 치료기간 및 치료 종결 후 노동능력 상실의 정도, 종업원이 사고를 당할 당시 담당하고 있던 업무의 성격과 내용, 종업원이 그 잔존노동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업무의 존부 및 내용, 사용자가 장해를 입은 종업원의 복직을 위해 담당 업무 조정 등의 배려를 했는지 여부,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된 종업원의 적응노력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1996. 12. 6. 선고 95다45934 판결, 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누14593 판결 등).
같은 취지대로라면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에도 ① 일단 치료 및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② 치료가 끝난 후에는 직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장해나 노동능력이 일부 감소한 상태에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를 고려하여 직무를 조정·부여하며,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업무조정이 무의미하거나 전환배치가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해고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비슷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정신분열증 의증’ 사건(2016가합550436)에서 법원은 ‘회사가 정신분열증 의증 소견을 받은 직원에 대해 휴직명령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직원을 회사로부터 격리시키려고만 하였을 뿐이고, 직원의 질환 상태를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거나 직원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해고를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해고는 못하는데, 질환이 의심되는 직원의 존재로 인해 동료들이 불안을 느끼거나 현재 상태로는 직무수행에 지장이 염려된다면, 사용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정 기간 휴직 등을 활용하여 직무에서 멀어지게 하는 한 편, 적절한 치료를 받고 오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일방적인 명령휴직이나 대기발령을 먼저 실시하는 것보다는 먼저 당해 직원과 면담을 통해 청원휴직이나 상병휴직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직원이 끝내 동의하지 않거나 직원의 정신적 건강상태가 협의를 하기조차 적절하지 않은 정도라면 결국 취업규칙 기타 사규를 검토하여 명령휴직이나 대기발령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이 업무상 발생한 것이 아니라도…
여기서 한가지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정신질환이 업무상 요인으로 발생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위와 같은 배려조치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업무상 발생한 질환이라면 근로계약상 부수적 의무인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측면이 있으므로 사용자가 그에 상응하는 배려의무를 부담하는 당위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배려의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Yes'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근 판례의 태도를 보면 해고의 원인이 업무상 장해가 아닌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배려조치를 주문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해고의 원인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질병이 아니라면 사용자에게 특별히 배려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예컨대 1993년 대법원은 개인적인 사고로 부상을 당한 운전기사가 휴직기간 만료 후에도 노동능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자 운수회사가 기사를 해고한 사례에서, 특별한 배려의무를 논하지 않고 해고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3. 7. 13. 선고 93다3721 판결). 업무상 장해가 해고의 원인이었던 경우에는 치료 기회 제공, 직무 조정 등 사용자의 배려의무가 이행되어야 함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였던 판례들(대법원 1996. 12. 6. 선고 95다45934 판결 등)과는 태도의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판례들을 보면, 질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사용자에 대해 치료·회복 및 직무조정 등을 일단 배려해야 하는 취지로 판시하는 경향들이 보인다. 예컨대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신부전증으로 정기적인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버스기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채용거부의 효력이 다투어진 사례에서 사용자가 기사의 배차시간을 조정하여 혈액투석치료를 병행하면서 계속 근무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본채용 거절을 부당해고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1. 11. 5. 선고 2021누34536 판결). 그 외에도 타이어 생산공정에 종사하던 근로자에게 뇌경색이 발병하여 휴직하였다가 복직할 때 업무적합성 평가에서 기존 업무수행이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면직된 사례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생산직 이외의 다른 업무를 부여하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면직처분을 무효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8. 7. 18. 선고 2018누35799 판결).
위와 같은 변화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사정이 반영된 결과이겠으나,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향이, 특히 그 중에서도 동법 제11조(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실제로 위 2021누34536판결의 경우 명시적으로 장애인차별법 제11조를 근거로 운전기사의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투석치료와 운전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음을 설시하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차별법의 적용 대상인 장애(disability)는 질환(illness)과는 포섭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정신질환의 경우에 위 규정에 의해 법률상의 배려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업무적합성 등을 판단할 때에도 장애인차별법상의 ‘편의제공’ 개념이 판단기준 중 하나로 고려되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업무적합성평가 기본지침' 참고), 장해를 입은 직원에 대한 배려조치는 장해가 업무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일응 요구되는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둘째, 정신질환의 특성 때문이다. 신체질환의 경우 직원의 질병이 명백히 업무와 관련 없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심사 전까지 업무관련성을 외형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사용자로서는 짐작만으로 직원의 정신질환이 업무상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닐 것이다(참고로 정신질환의 산재 인정률은 과거 30~40%대였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높아졌다. 2019년에서 2023년까지 5년간 근로자가 정신질환을 이유로 산재를 신청하여 산재가 인정된 비율은 대략 60% 정도였고, 2019년에는 70%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발생한 정신질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려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향후 휴업명령이나 해고 등 인사조치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적절한 방안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위와 같은 경우 업무에서 기인하였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면, 사용자는 해당 직원으로 하여금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산재가 인정되면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다만, 산재가 인정될 경우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가 금지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
#직원의 면담 및 진단정보의 수집·이용 유의해야
마지막으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는, 직원의 건강에 관한 정보는 민감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엄격한 보호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제129조에 따른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결과표를 송부 받는 등 법령에서 특별히 정한 경우가 한, 회사는 직원의 동의 없이 진단 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없다. 또한 회사는 개인정보처리자로서 직원의 민감정보인 정신질환 관련 진단정보를 분실·도난·유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안전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위와 같은 개인정보호호법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며, 직원의 정신질환에 관한 정보 수집·이용과 관련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의서를 받아 둘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는 본인에 대한 녹음·녹화 또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동법 제69조 제2항). 따라서 관련 증거 내지 자료를 수집할 때에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직장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정신질환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직원의 정신질환은 직원 자신의 건강을 악화시킴과 동시에 동료들의 건강, 안전 및 업무수행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안전배려 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여간 고민스러운 문제가 아니다. 이하에서는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이에 대응할 때 고민할 필요가 있는 중요 포인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신질환 확인은 다양하고 신뢰성 있는 자료를 통해
근로자의 정신질환이 의심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정신질환의 유무 및 정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야 적절한 조치 및 대응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사관리 실무를 보면 일단 직원에게 정신과 진단부터 받도록 함으로써 질환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큰 틀에서 틀린 접근법은 아니지만, 좀 더 차근차근 질환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먼저, 해당 직원과 진찰 관련 협의를 하기 전에, 다른 직원들의 진술을 청취해야 한다. 보통 사용자는 주변 동료들의 제보에 의해 해당 직원의 정신질환 관련 정황을 인지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제보를 그냥 제보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동료직원들을 대상으로 해당 직원의 행동 양태에 관한 진술조사를 하여 진술을 채록해 두는 것이 좋다. 이는 사용자가 각종 인사조치를 함에 있어 중요한 보강증거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의학적 진단 및 치료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도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직원들의 진술은 보조적인 자료이므로 정신질환의 확정에는 의학적 진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진단서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성과 객관성을 갖춘 의학적 자료를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
하급심 판례 중에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인 보건관리자가 직원을 ‘정신분열증 의증’으로 진단하자 사용자가 휴직을 명령하였고 직원이 복직조건인 종합병원 진단서 제출을 거부하자 해고한 사례에서 보건관리자가 정신질환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해고를 무효로 본 경우가 있다(서울중앙지법 2017. 6. 16. 선고 2016가합550436 판결). 이러한 판례의 논지는 납득할만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직업환경의학 전문가로 구성된 보건관리자(산업보건의)의 경우 전문분야가 근골격계, 심혈관계 등 ‘외형적 질환’인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소견의 초점이 질환 자체보다는 업무적합성(노동능력)에 맞추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서만 있고 업무적합성(노동능력)에 관한 자료는 없다면 그 역시 곤란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은 대개 정신질환 자체에 포커스가 맞추어지므로 업무적합성과는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적 자료’는 업무적합성 평가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이 병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경우에도, 별도의 진료의뢰 없이 직원에게 ‘알아서 진료를 받고 진단서를 받아오도록’ 지시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직원이 진찰받으려고 하는 병원의 전문성이나 신뢰성이 부족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때때로 진료대상 직원이 세션(session)이나 심리검사 등을 진행할 때 자신의 병세를 방어적으로 진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의가 진료의뢰의 배경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직원을 진료하게 되면 정확한 진단을 도출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부정확한 진단은 사용자의 인사관리에 지장을 초래할 뿐 아니라 환자의 적절한 치료 기회를 놓치게 할 수도 있으므로 직원 개인에게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가급적 회사에서 진료의뢰의 배경을 기재한 의뢰서 등을 작성하여 의료기관에 전달하는 것이 좋으며, 의뢰서의 내용에 대해서는 사전에 직원에게 정확한 진단 및 치료를 위해 필요함을 밝히고 내용에 대해 동의를 받는 것이 좋다.
그 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특수관계에 있는 병원에 진단을 의뢰하여 진단의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사내 보건관리자의 진단을 참고하더라도 질환유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좀 더 신뢰성 있는 의료기관에 의뢰를 할 필요가 있으며, 의뢰할 의료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해당 직원의 의사가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고는 최후 수단 … 치료·회복 기회 주고 직무조정 배려해야
정신질환의 정도가 기존의 직무수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다면 곧바로 해고가 가능할까. 질환의 정도 등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근 판례의 태도를 보면 그렇지 않을 공산이 크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는 ‘신체장해로 인한 통상해고’에 관한 판례의 태도를 참고해 볼 수 있다. 판례는 상병을 원인으로 한 해고가 정당한지 여부는 종업원이 장해를 입게 된 경위 및 장해가 사용자의 귀책사유 또는 업무상 부상으로 인한 것인지의 여부, 종업원의 치료기간 및 치료 종결 후 노동능력 상실의 정도, 종업원이 사고를 당할 당시 담당하고 있던 업무의 성격과 내용, 종업원이 그 잔존노동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업무의 존부 및 내용, 사용자가 장해를 입은 종업원의 복직을 위해 담당 업무 조정 등의 배려를 했는지 여부,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된 종업원의 적응노력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대법원 1996. 12. 6. 선고 95다45934 판결, 대법원 1997. 8. 26. 선고 96누14593 판결 등).
같은 취지대로라면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에도 ① 일단 치료 및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② 치료가 끝난 후에는 직원의 상태를 확인하고, 장해나 노동능력이 일부 감소한 상태에서도 수행 가능한 업무를 고려하여 직무를 조정·부여하며,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업무조정이 무의미하거나 전환배치가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해고를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 비슷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정신분열증 의증’ 사건(2016가합550436)에서 법원은 ‘회사가 정신분열증 의증 소견을 받은 직원에 대해 휴직명령을 내리고 최종적으로 직원을 해고하는 과정에서 직원을 회사로부터 격리시키려고만 하였을 뿐이고, 직원의 질환 상태를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하거나 직원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하여 해고를 무효로 판단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해고는 못하는데, 질환이 의심되는 직원의 존재로 인해 동료들이 불안을 느끼거나 현재 상태로는 직무수행에 지장이 염려된다면, 사용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정 기간 휴직 등을 활용하여 직무에서 멀어지게 하는 한 편, 적절한 치료를 받고 오도록 조치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일방적인 명령휴직이나 대기발령을 먼저 실시하는 것보다는 먼저 당해 직원과 면담을 통해 청원휴직이나 상병휴직 등을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직원이 끝내 동의하지 않거나 직원의 정신적 건강상태가 협의를 하기조차 적절하지 않은 정도라면 결국 취업규칙 기타 사규를 검토하여 명령휴직이나 대기발령을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이 업무상 발생한 것이 아니라도…
여기서 한가지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은, 정신질환이 업무상 요인으로 발생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도 위와 같은 배려조치를 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업무상 발생한 질환이라면 근로계약상 부수적 의무인 근로자에 대한 보호의무를 위반한 측면이 있으므로 사용자가 그에 상응하는 배려의무를 부담하는 당위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배려의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답부터 말하자면 'Yes'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최근 판례의 태도를 보면 해고의 원인이 업무상 장해가 아닌 경우에도 일정 수준의 배려조치를 주문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해고의 원인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질병이 아니라면 사용자에게 특별히 배려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예컨대 1993년 대법원은 개인적인 사고로 부상을 당한 운전기사가 휴직기간 만료 후에도 노동능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자 운수회사가 기사를 해고한 사례에서, 특별한 배려의무를 논하지 않고 해고가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대법원 1993. 7. 13. 선고 93다3721 판결). 업무상 장해가 해고의 원인이었던 경우에는 치료 기회 제공, 직무 조정 등 사용자의 배려의무가 이행되어야 함을 명시적으로 거론하였던 판례들(대법원 1996. 12. 6. 선고 95다45934 판결 등)과는 태도의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판례들을 보면, 질병이 업무상 재해로 인한 것이 아닌 경우에도 사용자에 대해 치료·회복 및 직무조정 등을 일단 배려해야 하는 취지로 판시하는 경향들이 보인다. 예컨대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신부전증으로 정기적인 투석치료를 받아야 하는 버스기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본채용거부의 효력이 다투어진 사례에서 사용자가 기사의 배차시간을 조정하여 혈액투석치료를 병행하면서 계속 근무하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을 주된 근거로 본채용 거절을 부당해고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1. 11. 5. 선고 2021누34536 판결). 그 외에도 타이어 생산공정에 종사하던 근로자에게 뇌경색이 발병하여 휴직하였다가 복직할 때 업무적합성 평가에서 기존 업무수행이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 면직된 사례에서도 서울고등법원은 생산직 이외의 다른 업무를 부여하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면직처분을 무효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8. 7. 18. 선고 2018누35799 판결).
위와 같은 변화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사정이 반영된 결과이겠으나, 2007년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의 영향이, 특히 그 중에서도 동법 제11조(정당한 편의제공 의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된다(실제로 위 2021누34536판결의 경우 명시적으로 장애인차별법 제11조를 근거로 운전기사의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투석치료와 운전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배려할 의무가 있음을 설시하였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장애인차별법의 적용 대상인 장애(disability)는 질환(illness)과는 포섭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정신질환의 경우에 위 규정에 의해 법률상의 배려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업무적합성 등을 판단할 때에도 장애인차별법상의 ‘편의제공’ 개념이 판단기준 중 하나로 고려되고 있는 점만 보더라도(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업무적합성평가 기본지침' 참고), 장해를 입은 직원에 대한 배려조치는 장해가 업무상 요인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일응 요구되는 개념으로 자리잡아 가는 듯하다.
둘째, 정신질환의 특성 때문이다. 신체질환의 경우 직원의 질병이 명백히 업무와 관련 없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심사 전까지 업무관련성을 외형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사용자로서는 짐작만으로 직원의 정신질환이 업무상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닐 것이다(참고로 정신질환의 산재 인정률은 과거 30~40%대였으나 최근에는 상당히 높아졌다. 2019년에서 2023년까지 5년간 근로자가 정신질환을 이유로 산재를 신청하여 산재가 인정된 비율은 대략 60% 정도였고, 2019년에는 70%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발생한 정신질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배려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향후 휴업명령이나 해고 등 인사조치의 정당성을 위해서도 적절한 방안이라고 할 것이다.
참고로, 위와 같은 경우 업무에서 기인하였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면, 사용자는 해당 직원으로 하여금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하고 산재가 인정되면 산재보험 의료기관에서 요양하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다만, 산재가 인정될 경우 근로자가 업무상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가 금지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
#직원의 면담 및 진단정보의 수집·이용 유의해야
마지막으로 지나칠 수 없는 문제는, 직원의 건강에 관한 정보는 민감정보로서 개인정보보호법의 엄격한 보호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제129조에 따른 건강진단을 실시하고 결과표를 송부 받는 등 법령에서 특별히 정한 경우가 한, 회사는 직원의 동의 없이 진단 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없다. 또한 회사는 개인정보처리자로서 직원의 민감정보인 정신질환 관련 진단정보를 분실·도난·유출되지 않도록 특별히 안전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위와 같은 개인정보호호법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 및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며, 직원의 정신질환에 관한 정보 수집·이용과 관련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동의서를 받아 둘 필요가 있다.
나아가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정신질환자의 동의 없이는 본인에 대한 녹음·녹화 또는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동법 제69조 제2항). 따라서 관련 증거 내지 자료를 수집할 때에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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