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방 몇 번을 가더라도"…포수 마스크 쓸 각오도 돼 있다, 정훈에게 그만큼 야구는 간절하다 [MD인천]
[마이데일리 = 인천 박승환 기자] "포수를 나가라고 해도 할 수 있지 않겠나?"
롯데 자이언츠 정훈은 1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SSG 랜더스와 팀 간 시즌 9차전 원정 '유통라이벌' 맞대결에 3루수, 7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으로 활약, 팀의 후반기 첫 승리와 3연패 탈출의 선봉장에 섰다.
정훈의 존재감은 첫 타석에서부터 두드러졌다. 2회초 고승민이 SSG 2루수 박지환의 실책으로 실책으로 출루하면서 만들어진 2사 2루에서 정훈은 김광현을 상대로 1B-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4구째 139km 슬라이더를 공략, 좌익수 방면에 안타를 뽑아냈다. SSG 좌익수 하재훈이 공을 제때 잡아냈다면 홈에서 승부도 노려볼 수 있었던 상황. 그런데 하재훈이 공을 뒤로 빠뜨리게 됐고, 2루 주자였던 고승민이 홈을 밟으면서 정훈의 방망에서 첫 타점이 나왔다.
상대 실책으로 마련된 찬스를 반드시 살릴 필요가 있었던 상황에서 빛났던 정훈은 4회 다시 한번 방망이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빅터 레이예스와 고승민, 나승엽의 연속 안타를 바탕으로 한 점을 더 달아난 무사 1, 2루에서 정훈은 다시 한번 SSG '에이스' 김광현과 격돌했고, 이번엔 0B-1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몸쪽 코스를 파고드는 146km 직구를 받아쳐 중견수 방면에 안타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이번에도 2루 주자가 홈을 밟으면서 2타점째를 생산했다.
'좌승사자' 찰리 반즈와 김광현이 맞붙는 경기였던 만큼 한 점, 한 점이 소중한 가운데 정훈은 두 번째 타석까지 두 개의 안타와 타점을 생산했고, 롯데는 이 흐름을 끝까지 지켜내며 6-1로 승리하며 후반기 첫 승을 수확했다. 마운드에서 반즈가 승리의 1등 공신이었다면, 타석에서는 정훈이 선봉장에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활약이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통산 김광현을 상대로 타율이 0.194에 불과할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였던 정훈은 이날 경기를 바탕으로 상대 전적을 타율 0.214로 끌어올렸다. 김광현을 대비했던 것일까. 정훈은 "최근에 내 감이 대비를 할 감이 아니었다. 경기 나가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최근에 타격감이 좋지 않았다. 베테랑이지만 타격이라는 것이 쉬운게 아니다.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도 많았다. 먹지도 않고, 잠도 안 자는 등 모든 것을 다 해봤다. 그런데 감독님이 한 말씀을 하시더라"고 말 문을 열었다.
정훈은 6월 하순 세 경기 연속 안타를 친 것을 제외하면 최근 타격감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최근 10경기 타율이 0.107에 불과했다. 때문에 경기를 앞둔 정훈이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김태형 감독이 "그냥 좀 해! 니가 뭘…"이라는 한마디를 건넸다. 정훈은 "오늘 운동을 하고 들어가는데 최근에 표정이 좋지 않으니, 감독님께서 '표정 고치고, 생각이 왜 그렇게 많냐'고 하시더라. 생각이 많은 상태에서 감독님께 그런 말을 들으니 생각이 편해졌다"고 설명했다.
김태형 감독이 자주 농담으로 꺼내는 '비밀의 방'으로 가진 않았을까. 정훈은 "경기 전이었기 때문에 진실의 방으로 가진 않았다"고 모처럼 웃으며 "SSG 선수들이 전력분석이 됐던 것인지 어제(9일)부터 커브를 잘 안 던지더라. 그래서 (김)광현이 직구가 좋기도 하고 빠른 볼 위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많은 것을 해봤지만, 무조건 잘 되는 것은 아니더라. 오늘 편하게 들어갔던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에 너무 못 쳐서 타율이 바닥까지 내려갔는데 오늘을 계기로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정훈 입장에선 올 시즌 내내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올해가 끝나면 롯데와 맺었던 3년 계약도 매듭이 지어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정훈은 여전히 그라운드에서 뛰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렇기에 매 타석, 매 수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가치를 어필해야 한다. 때문에 정훈은 그동안 나서지 않았던 3루수로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베테랑 선수이기에 신인 선수들과는 달리 정훈에게는 이 모든 기회들이 간절하다.
최근 손호영의 부상으로 인해 3루수로 출전하고 있는 정훈. 생소하지만, 주 포지션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움직임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정훈에게 3루는 어떨까. 그는 "일단 '공이 오지 마라'라고 기도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리고 '쉬운 타구가 와라'가 두 번째"라고 호탕하게 웃으면서도 "하나를 잘하면 가장 좋다. 그게 베스트다. 하지만 그게 안 되더라도 야구를 간절하게 하는 선수라면 어떤 포지션으로 출전하더라도 경기가 진행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훈은 "사실 힘이 든다. 한 포지션만 하면 좋겠지만, 안 될 때는 또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포지션을 하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허문회 감독님 때는 중견수, 김태형 감독님 때는 3루수로 나가고 있지만 선수들은 느껴진다. 믿고 기용해 주시면 선수는 뭐라도 하려고 한다. 오히려 스타팅 라인업에 쓰는 것이 어렵다. 야구를 오래했기 때문에 포수를 나가라고 해도 할 수 있지 않겠나. 감독님께서 믿고 오더를 써주시니 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훈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매 경기에 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 그는 "감이 좋지 않아도 내보내 주신다면 뛸 수 있다. (진실의) 방을 몇 번 들어갈지언정 타석에만 나갈 수 있다면 자신이 있다"며 "(손)호영이가 돌아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또 한 번 나가서 뭐라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게 팀에는 시너지 효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론 타석에서 수비에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서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정훈은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신인 못지않게 베테랑 정훈도 간절하다. 그리고 그 모습이 10일 경기에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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