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만들어 놓고 문제 생기니 외면”…사업 취소 사전청약 당첨자 분통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4. 7. 1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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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사업 지연, 공사비 상승 등 변수 영향도
“사전청약 당첨 지위 보장해달라” 국회 탄원서
피해 가구 벌써 1500여 가구인데
민간 사전청약 피해자 구제방안 난망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마련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민들이 청약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수도권 일대 사전청약 사업의 잇단 취소로 당첨자들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업계에선 수년 동안 본청약과 입주를 기다리는 사이 청약 자격을 잃은 경우까지 있어 청약통장 복구만이 아니라 당첨 유지 등의 추가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전청약은 본청약에 앞서 1~2년 먼저 청약을 시행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 주택 조기 공급을 통해 시장을 진정시킬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지구단위계획 승인 단계에서 사전청약을 받다보니 이후 본청약이 지연되는 일이 빚어졌다. 더욱이 지연 기간 동안 공사비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 등 변수의 영향을 크게 받아 사업이 유명무실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결국 정부는 지난 5월 사전청약 제도를 폐지했다.

11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사전청약자 등에 따르면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 시행사 DS네트웍스는 지난달 28일 사전청약자들에게 사업 취소를 알리기 시작했다.

운정3지구 주상복합 3·4블록은 2022년 6월 사전청약을 받은 곳으로 3·4블록 944가구 규모의 아파트가 건립될 예정이었다. GTX 운정역 인근이고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이어서 사전청약 당시 각각 청약경쟁률이 45 대 1, 19 대 1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중동,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경제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후끈 달아올랐던 분양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DS네트웍스는 지난해 말까지 시공사를 구하지 못하고 급기야 LH에 토지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토지해약 요구가 수용되면서 사업이 전면 취소됐다.

사전청약자들은 인터넷에 단체방을 만들고 피해를 호소하며 LH의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LH 파주지역본부 앞에서 집단시위에 나설 예정이다.

파주운정3지구 3·4블록 주상복합 당첨자 대책위원회에는 사전청약 취소를 통보받은 피해자 개개인의 탄원서와 피해 사례가 다수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위에서 활동하는 한 당첨자는 “혼인 기간이 지나거나 소득이 높아져서 청약 자격을 상실한 경우가 있다”며 “지역 거주기간을 채우고 타지로 이사를 갔거나, 노부모 부양으로 당첨됐지만 그 사이 부모님이 별세한 당첨자도 있다”고 전했다.

파주운정 당첨자들은 지난 9일 국회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탄원서에는 “아직 본청약에 도달하지 못한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약 3만명이나 된다”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인데 아직까지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또 “사업을 종료한 LG폰도 문제가 있으면 사후서비스를 해주는데, 왜 국민의 재산권을 지켜줘야 하는 대한민국 정부는 정부가 만들어낸 제도에서 발생한 국민의 피해를 외면하고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있는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LH에서 직접 사업 시행을 하거나 향후 해당 사업지에 공개입찰로 사업자 공모를 진행하게 되는 경우, 매각조건에 기존 사전청약 당첨자들을 승계하는 조건부 매각을 하도록 요청한다”며 “금액적인 보상이 아니라 원래의 당첨 지위만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리젠시빌주택이 홈페이지에 공고한 사전청약 취소 안내문 [사진 = 리젠시빌주택 홈페이지 갈무리]
문제는 최근의 건설 경기와 공사비 상승 추세 등을 볼 때 취소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만 사전청약 취소 단지 5곳이 나왔다. 사전청약을 받고서 아직까지 본청약을 진행하지 않은 단지는 24곳 1만2000여가구에 이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사전청약을 받은 뒤 사업을 취소한 단지는 5곳, 1739가구다. 이 중 사전청약 가구 수는 1510가구다.

사전청약 취소는 지난 1월 인천 가정2지구 B2블록(우미 린) 토지를 분양받은 건설사가 사업을 포기한 뒤 줄줄이 이어졌다. 이 아파트 사전청약 당첨자는 278가구였다. 사전청약으로 320가구를 공급한 경남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도 올해 1월 사업이 취소됐다.

지난달에는 시행사인 DS네트웍스가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3·4블록에 공급할 예정이던 주상복합 사업을 사전청약 2년 만에 취소했다. 사전청약 가구가 각 블록당 402가구로 총 804가구에 이르는 단지였다. 급등한 공사비로 시공사를 구하지 못한 게 사업 중단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비슷한 시기 화성 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도 시행사 리젠시빌주택이 사업 취소를 선언했다.

리젠시빌주택은 홈페이지에 “최근 악화하는 부동산 경기와 건설자재 원가 상승 등 불가피한 사유로 아파트 건설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져 부득이하게 사업 취소를 안내한다”고 공지했다. 취소된 화성동탄2 단지는 지하 2층∼지상 8층 5개 동 119가구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었으며 108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했다.

사전청약을 접수한 뒤 아직 본청약을 진행하지 않은 민간 사전청약 단지가 24개나 남아 있다는 점이다. 총 사전청약 가구 수는 1만2827가구다. 인천 검단신도시, 인천 영종국제도시, 경기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오산세교2지구, 수원 당수지구 등에 아직 본청약이 이뤄지지 않은 사전청약 단지가 몰려 있다.

공공분양 사전청약의 경우 본청약 시기가 밀리더라도 공공이 책임지고 아파트가 지어지기는 한다. 정부는 사전청약을 취소하면서 본청약이 6개월 이상 지연된 공공분양 단지의 사전청약 당첨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민간 사전청약은 사업 취소나 위험으로부터 당첨자를 보호할 장치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민간분양 사전청약은 공공분양과 달리 청약통장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돼 다른 사전청약은 물론 본청약도 신청이 불가하다.

민간 사전청약이 취소된 당첨자들은 받게 될 구제 조치는 당첨이 무효가 되면서 청약통장이 부활하는 것이 전부다. 그 사이 청약통장을 해지했거나, 소득 수준이 높아졌거나, 신혼부부 특별공급 기간을 넘긴 당첨자는 다른 단지에 청약 신청을 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혜택을 모두 날려버리게 된다.

집값 급등기에 정부가 무리하게 도입한 사전청약 제도가 애꿎은 서민 피해만 키우는 모양새다.

국토부는 취소된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를 구제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간에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 계속해서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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