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한 핏줄" 지방소멸 문턱서 '고려인 모시기'…지방대도 웃었다

제천(충북)=이창명 기자, 제천(충북)=김온유 기자 2024. 7.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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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노믹스가 바꾸는 지역소멸]④충북 제천(종합)
[편집자주] 흉물 리모델링·님비(기피·혐오)시설 유치와 같은 '혁신적 아이디어(Innovative Ideas)'를 통해 지역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I-노믹스(역발상·Inverse concept+경제·Economics)'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지방자치단체와 기업, 비영리단체(NGO) 등이 속속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역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재래시장과 빈집, 발길 끊긴 탄광촌과 교도소, 외면받는 지역축제 등이 전국적인 핫플(명소)로 떠오르면서 지방소멸 위기를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머니투데이가 직접 이런 사례를 발굴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텅텅' 골칫덩이 된 지방대 기숙사…적자 탈출한 비결[르포]
국내 거주 고려인 수 추이/그래픽=김지영
지난달 28일 찾아간 대원대학교 충북 제천 캠퍼스는 학기 중인데도 한적했다. 다른 지방대와 마찬가지로 신입생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서다. 제천시 관계자는 "10년전만 해도 활기찼던 캠퍼스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원대의 경우 학생수가 급감하면서 기숙사를 채우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실제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대원대의 기숙사 수용률(수용가능인원/재학생수)은 △2021년 45.1% △2022년 48.7% △지난해 51.3%로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규모 고려인 유치계획을 갖고 있는 제천시는 대원대의 이런 상황을 눈여겨봤다. 일단 장기 체류 시설 확보가 시급했고, 낙후 시설을 매입해 리모델링하기보단 현재 갖춰진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천시는 대원대와 협약을 통해 기숙사 4개동 가운데 1개동을 유상으로 제공받기로 했다. 대원대 입장에선 적자가 쌓이는 기숙사 문제를 해결하고, 제천시는 고려인 이주민 숙소를 확보해 서로 '윈윈(win-win)'한 셈이다.

대원대 관계자는 "재학생이 10여년 전 약 2700명에서 현재 약 1800명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기숙사를 운영할 만큼의 비용 충당이 되지 않았다"며 "기존 학생들이 납부했던 기숙사비 수준으로 이용료를 받고 있고 현재 캠퍼스 내에서도 학생들과 고려인 사이에 문제 없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골칫거리로 여겨졌던 대원대 기숙사 1개동은 지난해 10월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재외동포지원센터는 제천시 고려인 이주정착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지는 초기 이주민들의 숙소로 활용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5월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를 방문해 고려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제천시

제천시는 행정안전부에서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으로 2013년 13만6800여명이었던 인구는 지난 6월 기준 12만9600여명으로 떨어졌다. 무엇보다 젊은층이 계속 도시를 떠나고 있다. 현재 제천시의 29세 이하 인구는 3만1633명에 불과하다. 제천시가 고려인 이주 및 정착을 통해 지역에 젊은 활력을 되찾겠단 전략을 세운 이유다.

지난 5월까지 75세대 170명, 이달 현재 291명의 고려인이 제천으로 이주를 완료했거나 진행 중이다. 제천시는 올해 안에 국내·외 고려인 100가구 300명, 3년 안에 1000명을 유치한단 계획이다. 고려인 동포들의 경우 강제징용이나 독립운동이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만큼 국내 이주 정착에 정서적 거부감이 크지 않아 서둘러 유치할 수 있단 판단에서다. 실제로 2007년 국내거주 고려인 수는 2392명에 그쳤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최근 들어 젊은 고려인들을 중심으로 한국 이주를 원하는 분위기다.

이날 함께 둘러본 재외동포지원센터는 10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다. 내부식당과 헬스장부터 외부엔 널찍한 주차장과 정자까지, 임시로 체류하기엔 충분한 시설이었다. 이곳에 들어선 고려인들은 보통 가족단위로 머무르고 있다. 캠퍼스 내부와 달리 센터 앞에선 고려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었다.

현재 기숙사에 거주하는 강알렉산드르(45세·남)는 "제천시에서 숙소를 제공해 이주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제공하는 식사나 시설에 충분히 만족하고 시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로 많은 혜택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제천시는 지역 이주 고려인 동포들에게 4개월간 단기 체류 시설(기숙사) 제공을 비롯해 △한국어·한국문화 등 정착 교육프로그램 운영 △취업·주거지 연계 △보육·의료 지원 △우수인재 우대지원 △법률생활고충 상담 등 다양한 정착지원을 하고 있다. 또 지역 기업들을 초청해 사업설명회를 여는 등 고려인 동포들의 취업을 돕고 있다. 단순 일용직이 아닌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조업과 제약회사 정규직 근무자들도 늘어나면서 고려인과 제천시 모두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고려인이라고 해서 우리와 생김새가 비슷한 동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제천시 조례를 보면 고려인이란 1860년 무렵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시기에 농업이민과 항일독립운동, 강제동원 등으로 러시아와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과 그 친족들을 말한다. 그래서 생김새만 보고 고려인을 판단하긴 어렵고, 무엇보다 법적으로 여전히 외국인이다.

하지만 제천시에선 이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행정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고려인 300여명이 1년도 되지 않는 기간 제천시로 이주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도 인구감소지역에서 운영하는 '지역특화형비자사업'이 있다. 거주(F-4)나 방문취업(H-2) 비자의 경우 대도시에선 영주권을 취득하려면 1인 홀로 소득기준 GNI(국민총소득)의 100%를 충족해야 하는데 제천시에선 GNI 70%로 관련 기준이 완화되고, 배우자의 소득 합산도 가능하다. 또 4년 이상 거주하고, 사회통합프로그램 5단계를 이수하면 영주권 취득이 가능하다.

최근 제천시로 이주한 김알리나씨(42세·여)는 "영주권 취득이 상대적으로 쉽단 얘기를 듣고 결정했다"며 "현재 사회통합프로그램 4단계까지 이수를 마친 상태로 꼭 영주권을 취득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원대에 위치한 제천시 재외동포지원센터에서 진행된 고려인 가족 봉사단 발대식 모습./사진제공=제천시

"고려인은 인구감소 해결 돌파구, 3000명 이주·정착 지원할 것"
충북 제천-김창규 제천시장 인터뷰
김창규 제천시장/사진제공=제천시

"올해 고려인 300명을 시작으로 3년 안에 1000명, 장기적으로는 3000명 이주가 목표입니다."

김창규 충북 제천시장(사진)은 최근 머니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고려인이 지방 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고 생활인구를 증가시켜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59개 인구감소지역에 포함된 제천시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고려인 이주·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김 시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제18회 외무고시에 합격한 뒤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대사관 근무를 거쳐 키르기즈공화국과 아제르바이잔 대사를 역임했다. 옛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 국가들을 두루 거친 경험은 자연스럽게 고려인들과의 접점을 늘렸고, 현지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전문가로 만들어줬다.

고려인에 대한 애정도 그만큼 남다를 수밖에 없다. 김 시장은 "고려인 동포는 1860년 무렵부터 해방 전후까지 항일운동이나 강제동원에 의해 구소련과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이라며 "고려인은 이주 후에도 현지에서 우리의 전통을 이어나가고, 기업과 학술, 문화예술 및 체육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성공한 민족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제천시 재외동포 지원센터 개소식에서 김창규 제천시장과 이곳에 처음 입소하는 고려인 동포 등이 현판식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가 적극적으로 고려인 이주·정착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국인이긴 하지만 고려인은 우리나라 이주나 정착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정서적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 시장은 "외국인 이민정책은 인구감소 문제 해결에 가장 유효한 정책이라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됐다"고 전제한 뒤 "고려인은 우리와 한 핏줄을 가진 민족으로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며 "제천시는 이미 고려인 동포 이주 정책이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으며, 전국 지자체 가운데 유일하게 국제 외교를 통해 (지역소멸 문제의) 해법을 찾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물론 고려인 이주와 정착은 이미 19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해 현재 경기 안산시와 광주광역시에도 집성촌이 있다. 하지만 그는 제천시가 지자체 주도로 고려인 이주·정착을 지원하는 첫 사례란 점을 강조했다.

김 시장은 "타 지역에서도 고려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자연발생적으로 집단거주지가 생기거나 민간 주도로 지역정착을 이뤄내긴 했지만 지역사회에 융화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한다"면서 "제천시는 집단거주지보다 원하는 지역에서 거주하고, 빠른 정착을 위해 한국어 교육부터 맞춤형 복지제도 등을 실시하고 있단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제천시는 고려인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돌봄사업도 추진 중이다. 김 시장은 "어릴수록 언어습득 능력이 빠른 만큼 이주 동포 자녀들이 입학과 전학 등 공교육 과정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맞벌이 동포 가정을 위해 자녀 방과 후·방학 중 돌봄 사업을 추진해 하반기부터 시행하고, 이들을 위한 한국어 교과 수업 및 커뮤니티 활동까지 지원할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제천시에 국내·외 재외동포들의 한국어 능력 향상과 돌봄 기능을 겸비한 거점형 재외동포 한국어교육센터 건립을 추진할 것"이라면서 "고려인 동포 이주 정책이란 새로운 도전이 지방소멸의 문턱에서 함께 분투하고 있는 여러 지자체에 의미 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러놓고 이방인 취급?" 고려인 5000여명 사는 '이 동네' 가보니[르포]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 마을 모습/사진=김온유 기자

각 지역마다 고려인 유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미 형성된 일부 고려인 사회는 지역사회와 융화하지 못하고 단절돼 가는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저출생에 따른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만큼 고려인들이 안착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려인 집단거주지 상황을 들여다보기 위해 약 5000여명이 살고있는 광주광역시(이하 광주) 월곡동을 직접 찾았다. 2000년대 초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소수의 고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지역으로, 2014년 마을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이 마을에는 러시아어 간판으로 된 가게가 즐비해 있고, 거리에는 고려인 외에 내국인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일부 가게들은 간판에 한국어를 병용해 달았지만, 사실상 고려인들만 드나들고 있었다.

고려인 마을이 형성된 지 10여년이 지난 현재는 기존 주민들은 떠나고 고려인 포함 외국인들만 남은 상황이다. 인근에 위치한 공단에 외국인 취업자가 늘면서 고려인 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밤이 되면 만날 수 있는 외국인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치안이 불안해졌고,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북적였던 원주민들이 하나 둘 월곡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광주 고려인 마을에 3대가 함께 살고있는 우즈베키스탄의 50대 여성 A씨는 "이런 인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운을 뗀 뒤 "고려인 외에도 베트남 등 외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일으키는 문제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고려인들의 경우 재외동포이면서 가족단위로 살고 있기 때문에 교육도 많이 하고 사고를 일으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고려인들이 우리에게 친숙하다고 전제하는 정부의 인식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는 "고려인들도 러시아로 가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유리하니까 한국으로 오는 것"이라며 "고려인 역사에 무심했으면서 단순히 같은 핏줄이라고 익숙하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술먹는 문화 등은 우리가 외국 나갈 때 교육받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기본 예절을 가르쳐주면 될 일"이라며 "그들이 강제로 구 소련 지역으로 이주됐단 것을 인정하고 이념적으로 배척할게 아니라 서로가 교육받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작정 그들의 행태만으로 배척하지 말고 잘못된 것을 알려주고 바로잡아야 한단 것이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고려인들의 뿌리가 영·호남에 많았기 때문에 먼 친척들을 다시 찾아주는 것도 융화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마을 모습/사진=김온유 기자


결국 문화적인 차이로 고려인과 지역사회가 융화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무엇보다 고려인들은 국적 취득이 우선이란 설명이다. 8년째 광주에 거주 중인 30대 고려인 B씨도 "영주권에 필요한 소득 기준이 너무 높다"고 하소연한 뒤 "국가가 우리에게 특별한 지원을 해준다 느껴지지 않고 진정성도 의심된다"며 "이번에 낳은 고려인 4세 아이를 생각하면 관심을 더 갖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주고 교육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A씨도 "할머니가 '한국 땅을 밟아봤으면 좋겠다'며 우는 모습을 많이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다"며 "우리는 이곳 생활이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돌아가겠단 말을 하지 않을 만큼 한국에 애정이 깊다"고 말했다.

문병기 이민정책학회장은 "우리가 필요해 불러놓고 체류 과정을 비현실적으로 만들고 귀화해서도 이방인 취급하는 정서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인구가 줄어 사람이 모자라니 정착하는데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도 방향을 바꾸고 있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고려인들도 우리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한편 법무부 출입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외국국적 동포 중 고려인은 △우즈베키스탄 4만3320명 △러시아 3만8369명 △카자흐스탄 2만2426명 등이다. 고려인 마을은 광주 외에 △경기 안산 선부동 땟골마을 △인천 연수동 함박마을 △충북 청주 봉명동 등이 있고 △충북 제천도 고려인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상황이다.

제천(충북)=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제천(충북)=김온유 기자 on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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