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거덜내는 윤석열 정부 ‘폭력의 정치’

한겨레 2024. 7.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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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인권위 정상화 위한 연속 기고 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제공 연합뉴스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서울시 인권위원장

도처에서 국정이 망가지고 있다. 단 두 명의 위원만으로 중대결정을 서슴지 않는 방송통신위원회라든가, 금품수수사건을 다짜고짜 외면해버린 국민권익위원회, 혹은 안전할 권리를 갈구하는 화물노동자들을 담합행위로 처단해 버린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이런저런 합의제 기구들이 하나같이 파행으로 치닫는다. 독선과 졸속의 절차를 내세워 자의적으로 법을 집행해 놓고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중심에 윤석열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자리한다. 자신의 권한은 최대한으로 키워 행사하되 그에 따른 책무나 직무윤리는 아랑곳 않는 폭력의 정치가 대통령의 인사권을 따라 국가기구 곳곳으로 확산한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그 중에서도 최악이다. 주된 인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김용원 상임위원이다. 그는 인권위를 거덜 내고자 작정한 듯 보인다. 11명의 인권위원이 심의해야 할 안건을, 소위의 사전심사에서 단 한 명만 반대해도 기각처리하게끔 한 전대미문의 규정 개정안을 고집하며 인권위 회의를 보이콧하겠다고 나섰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조사보고서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담당 직원을 닥달해 직장 괴롭힘의 비난까지 받고 있다. 스스로 인권위원장이 되겠다면서도 인권위원장 추천위원을 선정하는 팀에 자기 편 사람을 배치하라고 강요하는 것도 모자라, 관행대로 처리하겠다는 인권위원장에게 “좌파 악바리 패거리”니 “더럽게 인생을 마무리” 운운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인권위 상임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그는 군인권옹호관이지만, 이 땅의 병사들이 피와 눈물로 내어놓은 진정사건들이 그 앞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에서조차 그는 한편으로는 국방부 장관과 은밀한 통화까지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관련한 긴급구제신청을 기각처리해 버렸다. 심지어 국회에 출석해서도 “좌파들의 해방구” 운운하는 망발로 인권위를 진영 가르기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이런 행태는 과거 이명박 정부때 인권위를 무력화시킨 현병철 위원장의 과오를 넘어선다.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가치로 보장해야 할 인권을 자의적으로 해체해 한갓 정파적 다툼 대상으로 왜곡했기 때문이다. 혹은 치열한 인권 논의가 이뤄져야 할 인권위를 온갖 혐오성 발언과 비윤리적 언행으로 우스갯거리로 만들거나 낯선 존재로 변형해낸다. 인권과 인권위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세상이라는, 헛된 착시효과를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헌법이 국가의 틀이라면 인권은 사람의 도리다. 헌법은 권력의 제한에서 출발하며 인권은 사람에 대한 존중에 터잡는다. 오늘날의 국가공동체는 이 두 가지 규범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을 이룬다. 하지만 현재의 정부는 애써 그 사실을 외면한다. 헌법전을 펼치면서 자신의 권력을 내세우고, 자유와 권리를 말하면서 복종을 요구한다. 김 위원의 행태는 현 정부의 이런 모습을 정확하게 모사한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김 위원 1인 지배의 소위체제로 이어진다. 대통령의 ‘법치’가 법에 가리워진 권력이 되듯, 그의 ‘인권’은 “기레기” “인권장사치”라는 막말에 차폐된다.

그래서 사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인권위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1987년 체제가 선택한 대통령제의 한계가 이 정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듯, 인권위 또한 그로 인해 중대한 한계상황에 봉착했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탄핵소추안을 발의해달라는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한 130만 국민이 강력한 경고의 행동에 나섰다. 그럼에도 그 분노가 스쳐 지나가는 틈새에서 그는 여전히 대통령이 임명하게 될 인권위원장의 꿈을 접지 않고 있다. 인권을 폭력으로 바꾸는 망령된 꿈 말이다.

“닥쳐라, 세계화”를 외쳤던 엄기호의 말은 그래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 정부는 “이미 파열음을 내며 찢어지고 있다.” 김 위원의 안달은 그 예후에 불과하다. “노(No)”라고 선언하는 우리들의 함성, “닥쳐라, 김용원”을 외치는 우리들의 행동 속에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전망을 해소하는 처방이 자리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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