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선 아프다고 자랑 말어”…‘농촌 왕진버스’선 인삿말이죠

이정하 기자 2024. 7. 1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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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왕진버스 왔습니다."

10일 오전 11시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5리 마을회관 앞에 '농촌 왕진버스 순회차량'이라고 적힌 안내표시가 붙은 노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경기도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포천·여주·안성·양평·이천·평택 등 6개 시·군 17개 읍·면지역에서 농촌 왕진버스 사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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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각’ 진료소 모시고 귀가도 도와
“병원·약국 한 번 가기도 힘든데 고마워”
10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5리 마을회관 앞에 정차한 ‘농촌 왕진버스’ 차량에 주민들이 탑승하고 있다.

“어르신, 왕진버스 왔습니다.”

10일 오전 11시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5리 마을회관 앞에 ‘농촌 왕진버스 순회차량’이라고 적힌 안내표시가 붙은 노란색 버스가 도착했다.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허리야!” 회관 안에 기다리던 노인들이 저마다 지팡이를 짚거나, 굽은 허리를 부여잡고 곡소리를 내며 버스에 올랐다.

“나이 들면 안 아픈 곳이 어딨어? 골골하지. 아침엔 눈물샘이 말라 눈도 안 떠지고, 침도 말라서 항상 헛기침이야.” 마을회관에 매일 출근도장을 찍는다는 김태수(86)씨의 말이다. 옆자리에 앉은 최광윤(88)씨는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100m 남짓한 거리지만, 거동이 불편해 이마저도 가기 어렵다며 푸념하던 김씨를 나무랐다. 노인 15명이 탄 버스는 10여분 만에 목적지인 포천 영북농협에 다다랐다. 노인들은 농협 3층 대강당에 마련된 임시 진료소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고, 검진을 받기 시작했다. 의료진은 최근 의료 이력이나 현재의 건강 상태 등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농촌 왕진버스는 병의원, 약국 등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농촌마을 주민에게 양한방 의료, 구강검진 및 검안 등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정부와 농협중앙회가 시행해온 ‘농업인 행복버스 사업’에 올해부터 지자체까지 참여하면서 농촌마을 노인 전체로 사업을 확대한 것이다. 왕진버스가 진료를 원하는 주민을 임시 진료소까지 모셔오고, 귀가까지 돕는다.

10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영북농협 3층 대강당에 마련된 ‘농촌 왕진버스’ 임시 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주민들에게 영양수액을 주사하고 있다.

이날 진료에는 의료 지원 협력을 맺은 포천우리병원 의료진 19명(별도 안과검진팀 2명 포함)이 참여했다. 영양수액을 맞고 있던 권광복(81)씨는 “한달 전 위점막에 이상이 있어 수술을 받았다. 기력도 없고, 하루하루가 고단하다. 시골 살면서 허리 안 굽고, 관절염 없는 양반이 어디 있나. 약국 한번 가는 것도 버거운데, 이렇게 깡촌까지 찾아와 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고 했다. 영북면은 주민 7700여명 가운데 32%(2500여명)가 65살 이상 고령층이다. 고령 주민이 많은 점을 고려해 이날 왕진버스 진료 대상은 70살 이상으로 했다고 한다. 각 마을 이장과 부녀회를 통해 사전에 파악한 예약자 200명 말고도 당일 스스로 진료소를 찾아온 노인들도 많았다.

10일 오전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영북농협 3층 대강당에 마련된 ‘농촌 왕진버스’ 임시 진료소에서 주민들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아들만 셋을 낳았다는 최순열(84)씨는 “큰아들이 근육이 위축되는 희소병을 앓다가 40대 초반에 저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아들은 치료도 못 받았는데, 꼬부랑 할머니가 돼서 내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다”며 울먹였다. 최씨는 의료기관도 멀고, 교통편도 불편해서 물리치료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농번기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영북농협 관계자는 “7월 초엔 한해 벼농사나 밭농사 준비를 마치고 추수까지 휴식기여서 많은 분이 찾아줬다”며 “농촌지역은 고령화율과 유병률이 도시에 비해 높은데, 여건이 되지 않아서 왕진버스 같은 사업이 절실하다”고 했다. 장진 포천우리병원 이사장은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주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 왕진버스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경기도는 이달부터 연말까지 포천·여주·안성·양평·이천·평택 등 6개 시·군 17개 읍·면지역에서 농촌 왕진버스 사업을 진행한다. 지역별로 지역 거점 병원이나 인근 의료기관 참여를 통해 차례로 이뤄진다. 지역에 따라 침·뜸 같은 한방치료 등을 지원하는 의료서비스도 일부 달리한다. 김연기 도 농업인육성팀장은 “의료 파업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한 가운데, 의료 사각인 농촌마을에는 왕진버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라며 “의료 소외 지역에 더 많은 기회가 부여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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