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저출산 극복,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중국 춘추시대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는 노른자 땅인 지금의 항저우(杭州)를 사이에 두고 극한 대립을 보이며 사사건건 부딪쳤다. 서로 나쁜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원수끼리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치게 됨을 이르는 오월동주(吳越同舟)와 원수를 갚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견뎌내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이때 나온 말이다.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는 월나라의 왕 구천(句踐)이 자기 아버지 합려(闔閭)를 죽인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같이 장작더미에서 잠을 청했다. 기원전 494년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해 구천을 포로로 잡았다. 구천은 오나라에서 부차의 노예로 살다가 겨우 도망쳐 쓰디쓴 쓸개를 맛보며 하루하루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기원전 473년 구천은 부차의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숨은 이야기가 있다. 구천의 복수가 20년간 쓸개만 핥으면서 일궈낸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고도의 계획적인 맞춤형 전략이 있었다. 즉,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구천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었다. 아기를 많이 낳은 집에는 세금을 깎아주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임산부에게는 나라에서 의사도 보내줬다. 젊은 남녀의 교제와 결혼을 적극 장려하고, 지역사회의 아이돌봄을 대폭 강화하는가 하면 야만족으로 천시하던 이민족을 받아들여 자국민으로 흡수했다. 구천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지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다양한 인구·출산 장려책을 펼쳐 경제인구와 군사병력을 크게 늘렸고 결국 오나라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2024년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민은 저출산이다. 2022년 0.78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명이 되었고, 그마저도 올해는 0.6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이후 10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국가 가운데 꼴찌는 물론 전 세계 252개 국가에서도 최하위를 기록 중이다. 예식장과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은 폐업하고 있다.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이 5만 명대로 떨어지고, 중·고교생이 급감하면서 대학들은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악의 저출산 원인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23만 5000명이다. 이 가운데 출생신고 건수가 증가한 지역은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충북이 유일하다. 출생아 1명당 1000만 원을 5년간 지원한다는 정책이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역마다 다른 현금정책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이자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미봉책에 불과하다. 현재 시행 중인 임신·출산·육아관련 각종 지원 정책은 유사·중복사업이 많아 예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인지도와 체감도 역시 낮은 편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와 광역·기초자치단체에서 각각 따로 추진하는 모든 현금성 지원을 중앙에서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을 하루속히 도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낭비 예산을 줄이고, 지역에 상관없이 혜택이 전 국민에게 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중소도시들은 재정자립도가 높은 대도시들에 비해 각종 지원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따르고, 이는 다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저 출산율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국가라는 오명을 씻고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 인구와 국가의 상관관계가 현대라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밀접해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구가 곧 국력이고 출산율이 곧 경제력인 상황에서 최근 들려온 정부의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 신설 소식이 반갑게 다가온다.
2500년 전 쓸개를 핥던 구천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절실했을까.
이완섭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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