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출근이 곧 수행이로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백수진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77번째 레터는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입니다. 요즘 장점도 단점도 비슷한 한국 영화에 지쳐 있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독립영화를 발견해 들고 왔습니다. 몸값 비싼 스타, 화려한 CG 없이도 영화를 재밌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법당 옆 불교 출판사에서 펼쳐지는 사찰 오피스 드라마입니다. 배경부터 독특하죠. 5년차 직장인 혜인(김연교)이 출근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예불 드리는 일. 전화를 받을 때도 ‘관세음보살’로 시작해 ‘성불하세요’로 끊습니다. 실제로 각본가가 불교 서적 출판사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져 소소한 에피소드는 물론, 작은 소품 하나까지 회사 생활의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속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찰도 혜인에겐 그저 일터일 뿐. “어느 곳이든 회사가 되는 순간 그곳은 정글”입니다. 5년차지만 여전히 막내인 혜인은 쏟아지는 업무와 신도들의 잡다한 요구에 하루에도 수천번 지옥과 극락을 오갑니다. 고요한 사찰에서 울려 퍼지는 직장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재기 발랄하게 담아냈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명랑함입니다. 패기 넘치던 신입 사원 혜인은 직장 생활 5년 만에 푸석푸석하고 생기를 잃었지만, 그래도 씩씩함을 잃지 않습니다. 납작 엎드리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 혜인의 태도가 이 영화를 빛나게 합니다. 주연을 맡은 김연교 배우는 허당 같지만 귀여운 혜인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살려냅니다. 종무소 꼰대 과장 역의 임호준, 이름만 ‘보살’이지 갑질 진상 고객인 ‘연화수 보살’ 역의 김금순 등 조연 배우들의 활약도 눈부십니다.
63분으로 분량도 짧고, 편집이나 사운드가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보통 영화라면 CG를 썼을 장면들도 엉성한 소품과 배우들의 연기로 밀어붙이는 뻔뻔함에 웃음이 터집니다. 그마저도 조금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이 영화의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상영관이 몇 군데 없어 보기 어렵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혜인의 좌충우돌 오피스 라이프는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수행을 떠나는 모든 직장인 보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넵니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더 납작 엎드리는 혜인을 보면서 삶이 곧 수행이요, 어디서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불교의 교리를 되새기게 됩니다. 오늘도 고독히 수행 중인 모든 직장인 보살님들이 성불하시길 바라며, 이번 주 레터는 여기서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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