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참사 1년]①생일 맞은 아들과 엄마 점심약속 갈라놓은 비극

이재규 기자 2024. 7.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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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청주에 오시라던 아들 전날 참변 '하늘 무너지는 듯'
'기억과 다짐 도보행진' 열심히 참여…참사 잊힐까 두려워

[편집자주] 지난해 7월15일 청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하천 범람으로 무고한 시민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사회가 약속했던 책임 규명과 재발 방지 대책은 1년이 지난 지금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유가족과 기적처럼 생환한 생존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굳게 닫힌 지하차도처럼 어둡기만 하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그동안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조모 씨의 생전 모습(A 씨 제공)2024.7.11/뉴스1

(청주=뉴스1) 이재규 기자 = "그날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지난해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아들을 잃은 A 씨는 뉴스1과 만나 아주 힘겹게 말 문을 열었다. 한참 생각에 잠긴 그는 조심스럽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엄마 청주에서 같이 점심 먹어요."

아들의 생일이자 참사 이틀 전인 지난해 7월 13일 목요일. 아들의 살가운 목소리가 A 씨의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엄마, 생일이라 내려가 보려고 했는데 출근하라고 하네. 일요일에 청주로 올라오셔서 점심 같이 먹어요."

이 통화가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A 씨는 아들과의 식사를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금요일을 보냈다. A 씨의 즐거운 마음과 달리 하늘은 그렇지 않았다. 금요일과 토요일엔 종일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괜스레 걱정되던 A 씨는 토요일 저녁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A 씨는 아들이 바쁘고 피곤해서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아들은 약속 날인 일요일 오전도, 그날 밤까지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해진 A 씨는 경북 상주에서 1시간 10분 거리의 청주로 차를 몰았다. 이때까지도 오송에서 참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청주 도착 10분 전,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아들 병원에 있대. 얼른 가봐." 남편은 덜덜 떠는 목소리로 아들의 사고 소식을 전했다.

순간 하늘이 무너졌다. 눈앞이 새하얘진 A 씨는 고속도로 졸음쉼터에 차를 세우고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리냐고. 수없이 반복해서 물었다. 손과 발이 의지와 관계없이 떨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병원에 도착한 A 씨는 온몸이 얼어붙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꿈이길 바랐다. 차마 아들의 얼굴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시청 직원과 소방대원이 남편과 큰딸, 막내딸에게 연락을 취했다. A 씨가 기억하는 그날이다.

A씨의 아들 조모 씨(당시 32세)는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747번 버스의 탑승객이었다.

조모 씨와 동생들(A 씨 제공).2024.7.11/뉴스1

◇"어렸을 때부터 떼 쓰지 않던 '애어른'"

집안의 첫째 아들인 조 씨는 여느 아이들과는 다르게 떼 쓰지 않던 착한 아들이었다. 늘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고 학원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학업에 성실하게 임했던 아들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수능이 끝나고 아들은 서울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성적표를 받아왔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국립대에 갔으면 좋겠다"는 부모의 말을 순순히 따랐다. A 씨는 "등록금 한 번을 못내 줬다"며 "너무 후회가 된다"고 한탄했다.

청주를 좋아했던 아들은 졸업 후 여러 직장을 거쳐 오송창업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조 씨는 의약품 관련 창업 CEO들을 상대로 교육하는 일을 하면서 그 누구보다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A 씨는 주말만 되면 아들이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것만 같다고 말한다. 아들이 좋아하는 김밥, 만두, 삼계탕은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에 있는 아들 얼굴만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언젠가 아들의 죽음이 잊힐까 두렵다. A 씨는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라서 이 참사가 점점 잊힐까 두렵다"며 "억울한 죽음을 하루빨리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기억과 다짐 순례 도보행진'하는 A 씨.2024.7.8/뉴스1 이재규 기자

A 씨는 '기억과 다짐 순례 도보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구호를 외친다. 아들을 포함한 유족, 생존자들의 억울한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하루라도 빨리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며 "진상규명과 최고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서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jaguar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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