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 발목잡는 현대 vs 한화 ‘수주 갈등’···방산中企 “단가 후려치는 거 아니냐”[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한화오션 “기밀탈취 업체 수의계약 안 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7조8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으면서 그 불통이 K방산 생태계를 망치고 있어 걱정입니다.”(대기업 A방산업체)
“K방산 해양 분야에 쌍두마차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갈등 심화로 방산분야 중소업체들 사이에선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옵니다.”(중소기업 B방산업체)
차기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KDDX의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 사업 방식을 놓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물밑 기싸움과 치열한 여론전을 펼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7.8조원 규모의 KDDX 사업을 선점하려는 두 업체 간 치열한 경쟁이 자칫 해양 분야 K방산 생태계를 좀먹고 경쟁력을 저해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발주기관인 방위사업청이 기존 관례처럼 기본설계 업체와 상세설계 및 선도함을 건조하는 수의계약을 체결하려다 경쟁업체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무엇보다 수주 방식을 놓고 방산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대립이 아닌 방사청과 한화오션, 즉 발주기관과 방산업체 간 갈등 양상으로 확산되면서 K방산 신뢰도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냐는 진단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한국방위산업진흥회 관계자는 “K방산이 최근 해외 수주가 잇따르면서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상황이라 외국에서도 국내업체 간 갈등 심화를 초래하고 있는 이번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며 “특히 방산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에 방산 중소업체들도 납품단가 후려치기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 한 관계자는 “발주기관인 방사청이 방산업체들의 갈등 심화로 여론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난처한 상황이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 결국 해외시장으로 나가야 하는 만큼 근시안적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 방산업체 오너들이 대승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군 당국 지휘부의 생각”이라고 귀띔다.
통상 함정 건조 사업은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한다. KDDX 사업의 경우 개념설계는 한화오션, 기본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개념설계가 함정 초안을 그리는 것이라면 기본설계는 함정에 탑재되는 무기체계 및 각종 장비 등을 더 구체화한 것이다.
단계마다 경쟁입찰을 하지만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는 통상 기본설계를 한 업체가 수의계약을 통해 수행해왔다. 실제로 2006년 방사청 개청 이래 진행된 18개 프로젝트 중 17개는 이를 준용했다. 방사청 기본설계사업 입찰 제안요청서와 방위사업법 등 관련 규정에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업성 유지를 위해서다.
수의계약 관례를 깬 사례도 있다. 2012년 장보고-III 배치-I 1번 함 상세설계·선도함 건조 사업자는 경쟁입찰을 통해 선정됐다.
방사청이 규정대로 한다면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체결하면 되지만 한화오션이 HD현대중공업의 법적 문제들 들고 나와 경쟁입찰을 요구하면서 이번 사업의 추진 방식을 두고 논란을 빚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전력이다. 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부 직원 9명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해군본부와 방위사업청을 방문, 기밀 자료를 몰래 촬영해 이를 회사 내부망에 내용을 공유한 혐의로 최근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유출된 문건은 △KDDX(한국형 차기구축함) 개념설계 1차 검토 자료 △장보고-III 개념설계 중간 추진현황 △장보고-III 사업 추진 기본전략 수정안 △장보고-I 성능개량 선행연구 최종보고서 등이다. 이 가운데 KDDX 개념 설계도는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이 해군에 납품한 자료로 KDDX 수주를 위한 기본설계의 핵심이자 3급 군사기밀이다.
일단 방사청은 보안사고 인지 직후 규정에 따라 HD현대중공업에 2025년 11월까지 3년간 무기체계 제안서 평가에서 1.8점을 감점하는 벌칙을 부과했다. 덕분에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과의 울산급 호위함 배치(Batch)-Ⅲ 5·6번함 건조사업 경쟁에서 이겨 지난해 11월 방위사업청과 총 7917억 원 규모의 수주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 2월에는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 부정당 업체 제재 여부를 심의한 끝에 ‘행정지도’ 처분했다. HD현대중공업 측이 계약심의회의 개최는 회사 대표나 등기임원이 개입되는 경우에만 해당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 일반 직원들 관여만으로 열리는 것은 법적 요건에 맞지 않고 주장했는데 이를 방사청이 받아들이 것이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이 이번 KDDX 수주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며 한화오션은 강하게 반발하는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한화오션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군사기밀 불법유출에 HD현대중공업 임원 등 위선의 개입과 관련해 고발하고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국수본 수사 결과에 따라서 벌칙 수위가 더 높아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상황은 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의계약 또는 경쟁입찰 중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선택할 방위사업청 사업분과위원회 일정이 9일에서 18일로 변경됐다가 이번 달은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기로 정리됐다. 차기 한국형 이지스 구축함 KDDX의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 추진 방식 결정이 다음 달로 넘어간 것이다.
국가계약법과 하위 법령 등은 경쟁 방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함정사업 분야에서 이를 적용하지 않는 게 관례였다. 연구발의 최종 결과물로 시제품을 만드는 다른 방위사업과는 다르게 함정 연구개발 사업은 선도함이 곧 전력화 대상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이어지도록 별도 규정(수의계약 체결)을 두고 있다.
하지만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탈취 및 유포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아 도덕성 문제가 불거졌다. 한화오션은 일련의 조처가 수의계약 제한 요소에 해당하는 ‘특별한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찌됐든 관례대로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면 HD현대중공업이, 경쟁입찰이 되면 한화오션이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일단 방사청은 사업자 선정 방식에 대해 정해진 건 없다는 입장이다. 방사청은 “다음달 방추위 심의에서 수의계약으로 할지, 경쟁입찰을 할지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방산업계는 한화오션의 반발은 결국 해외시장에서의 경쟁을 감안한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향후 국내를 떠나 해외에서도 격돌이 예상된다. 당장 호주 정부는 11척의 해군 호위함 구매 계획을 밝히고 한국과 일본의 호위함을 관심 기종으로 선정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호주 호위함 수주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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