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갈등 10년, ‘밀양 할매’들은 답을 기다리고 있다

밀양·이오성 기자 2024. 7. 1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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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행정대집행 이후 10년이 흘렀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주요 의제로 떠오른 지금, 밀양 송전탑 싸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밀양의 할매들은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6월7일 밀양 주민 정임출씨(오른쪽)가 정수희 부산에너지기후행동 활동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할머니는 김밥을 말고 있었다. 집 뒤편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시금치와 당근을 가득 넣은 김밥이었다. 이날 방문한 사람은 취재진 3명뿐이었는데, 할머니가 준비한 재료는 족히 10명분은 되어 보였다. 6월7~8일 큰 행사를 맞아 집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내주려 한 김밥이었다. 할머니는 “김밥용 김이 없어서 그냥 집에 있는 김으로 말았는데, 김밥 옆구리가 터질까 봐 걱정”이라며 웃었다. 방금 전 밀양 시내에서 어탕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온 취재진은 김밥 네댓 줄을 게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텃밭에서 따온 제철 산딸기도 함께.

127번 농성장에서 정임출 할머니(82)는 ‘동래 어머니’로 불렸다. 동래 정씨라는 이유였다. 농성장 살림을 도맡아온 할머니는 특히 음식 솜씨가 빼어났다. 농성장 사람들은 철마다 추어탕이며 홍합탕에 온갖 나물 반찬을 곁들여 차려 내는 할머니의 밥을 잊지 못했다. 이번 취재에 동행한 정수희 부산에너지정의행동 활동가도 그랬다. 그는 ‘127번 농성장 공주’라고 불렸다. 부산에서 밀양까지 대중교통으로 몇 시간씩 걸려 농성장을 찾아오는 정수희씨에게 밀양 할머니들이 애정을 듬뿍 담아 붙여준 별명이었다. 10년 넘는 세월을 정수희 활동가는 밀양 할머니들과 함께 싸웠고 더불어 나이 들었다.

할머니의 전화벨이 울렸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류미례 감독이었다. 밀양에 꼭 가고 싶었는데 사고로 다리를 다쳐서 못 간다고, ‘어머니 건강하시라’고 몇 번이나 인사를 거듭했다. 할머니는 “미례씨 오면 주려고 김밥 싸놨는데…” 하며 아쉬워했다. 가족처럼 살가운 대화였다. 정수희씨가 할머니에게 “우창이는 외국에 논문 발표하러 가서 못 오고요, 재각씨는 좀 늦게 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우창이’는 경주시 월성원전 부근 주민의 삶을 다룬 르포르타주 〈원전마을〉을 쓴 김우창씨, ‘재각씨’는 밀양 할머니들의 투쟁과 삶을 오랫동안 기록해온 사진가 이재각씨를 말한다.

2012년 3월18일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 뒷산에 위치한 127번 송전탑 건설예정지에서 천막농성을 하던 주민들이 탈핵 희망 버스 참가자들을 배웅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들 모두를 한데 아우르는 공간이 ‘127번 농성장’이다. 정확히 말하면 경남 밀양시 부북면 외양리 127번 송전탑 건설 예정지 아래 산비탈에 있었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움막이다. 127번 송전탑은 부산 신고리 핵발전소에서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까지 90.5㎞ 구간에 새로 들어선 송전탑 161기 중 127번째 송전탑을 말한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76만5000V짜리 초고압 송전탑이다. 지역 주민들은 2012년 7월2일 송전탑 건설 예정지에 움막을 짓고 반대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밀양 일대에는 127번 농성장 같은 곳이 모두 8개 있었다.

농성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반핵 운동가부터 어린이책시민연대 회원들까지, 야당 정치인부터 거리 공연을 펼치는 예술인까지. 서울과 구미에서 뉴스를 보고 무작정 찾아온 고교생도 있었다. 그들은 비바람 들이치고 벌레에 시달려야 하는 자그마한 움막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2년 가까이 숙박 농성을 이어갔다. 경찰이 농성장을 습격하기 전까지.

2014년 6월11일 새벽 4시. 경찰 버스 50여 대가 밀양시 부북면에 집결했다. 경찰 2000여 명, 밀양시 공무원 200여 명은 부북면 평밭마을 129번 농성장을 시작으로 위양마을 127번 농성장,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농성장, 단장면 용회마을 101번 농성장 등을 순서대로 이동하며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농성장을 철거하라는 국가의 명령에 따라 단행된 강제 철거였다.

6월8일 열린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 사전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이 경남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121번 송전탑 아래로 행진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최장기간 최대 규모 주민 저항

강제 철거 과정은 잔인했다. 결사항전의 각오로 파놓은 구덩이 안에서 알몸으로 저항하던 여성 주민을 끌어내고, 끌려가지 않으려 온몸에 묶어놓은 쇠사슬을 절단기로 끊어버렸다. 현장에는 야당 국회의원도 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도 있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주민과 연대자 19명이 응급 이송됐고, 경찰도 부상을 입었다. 오전 6시에 시작된 행정대집행이 오후 5시10분에 종료됐다. 경찰은 이를 끝내고 승리의 V자를 그리며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경찰은 상을 받았다. 2013~2015년 집회·시위 대처 유공으로 표창을 받은 113명 가운데 밀양 송전탑 사건으로 표창을 받은 경찰관이 73명으로 전체의 64.6%에 달했다. 집회·시위 관련 특별 승진자 14명 중 10명이 밀양 관련 승진자였다.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던 김수환 밀양경찰서장은 청와대 경비대장-종로경찰서장을 거쳐 경무관으로 승진했고, 이철성 경남경찰청장은 경찰청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경찰청장 이성한은 퇴직 후 한전 상임감사로 취직했다.

2014년 6월11일 행정대집행 당시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농성장의 모습. ⓒ시사IN 이명익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은 단일 국책사업에 대해 최장기간 최대 규모로 이어진 주민 저항이었다. 383명이 입건되었으며, 현장 응급 이송 사례가 100건이 넘었다. 2005년 12월5일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들이 북과 꽹과리를 들고 한전 밀양지사 앞에 찾아가 시위를 벌인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려는 한전과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10년 동안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마을 주민 두 명이 분신과 음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적인 소식을 접한 전국 각지 시민들이 ‘밀양희망버스’를 타고 송전탑 반대 투쟁을 응원하러 모였다. 희망버스가 달릴 때마다 3000~4000명이 밀양 시내에 집결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경찰의 저지를 뚫고 각 지역 농성장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움막에서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어깨를 어루만지며 맺어진 인연은 지금도 이어진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송전탑은 모두 완공됐고, 사람들의 기억은 시들해져갔다. 그동안 밀양 각 마을 공동체는 처참할 정도로 파괴되었다. 돈 때문이었다. 한전은 사업 추진 과정에서 마을 주민을 회유하기 위해 특수사업보상 내규를 바꿨다. 그동안 마을 단위로 지급했던 보상금(마을공동사업비)의 40%를 피해 주민들에게 개별 보상하기로 했다. 국책사업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014년 9월24일 오전 경남 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뒷산에 99번 송전탑이 세워지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개별지원금을 받으려면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것은 물론 이후 발생하는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도장을 찍어야 했다. 모두 합쳐 가구당 1000만원가량 지급된 개별보상비를 놓고, 송전탑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사이에 갈등이 극심해졌다. 한전은 그달까지 합의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기간이 지나면 다시 다음 달이 최종 기한이라는 현수막을 내걸면서 주민을 회유했다.

마을마다 적어도 수억 원씩 지급되는 공동사업비도 주민을 갈라놓았다. 한전은 보상금 협상을 위해 주민대표단을 구성하라고 요구했는데, 이 과정에서 ‘주민이 모르는 주민대표단’이 생겨났다. 송전탑 건설에 합의하려는 이장 한 명이 독단으로 주민대표단을 꾸리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생긴 목돈은 대개 땅투기로 이어졌다. 어느 마을의 경우 보상금으로 산 땅 명의가 특정 개인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분란이 일기도 했다.

한전과 밀양시는 돈과 행정으로 시시각각 마을 주민을 압박하고 분열시켰다. 밀양시 공무원들은 마을 주민의 성향까지 분석하며 한전과 발을 맞췄다. 오순도순 살아가던 마을 주민들은 길에서 만나도 서로 눈도 안 마주치는 사이가 되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진 마을마다 CCTV를 설치하는 집이 부쩍 늘었다.

“즈그 집 앞에 세우지, 와 남의 땅에다…”

지금도 18개 마을 143가구는 보상금을 거부하며 싸우고 있다. ‘동래 어머니’ 정임출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김밥을 먹으며 할머니에게 물었다. 왜 아직까지도 합의를 하지 않고 있느냐고. 정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훗날 손주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까 생각해요. 왜 그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대를 안 하고 합의를 봐서 우리를 이 땅에 살지 못하도록 했냐는 소리를 듣기 싫었어요. 후손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끝까지 반대해야 한다. 그 마음뿐이지, 딴 건 아무것도 없어요.”

“송전탑이 들어서면 살 수 없는 땅이 된다”라는 정임출 할머니의 말은, 20년 가까이 반대 투쟁에 나선 끝에 내린 개인의 결론이다. 송전탑의 유해성 때문만은 아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당한 폭력과 치욕이 정임출 할머니 같은 마을 주민을 굳건한 송전탑 반대론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이들 앞에서 송전탑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를 과학적으로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 할머니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할머니를 비롯해 밀양 투쟁에 나섰던 마을 주민 44명이 참여한 그림 작품집 〈송전탑 뽑아줄티 소나무야 자라거라〉(교육공동체 벗, 2019)에 실린 그림이다.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로 집 주변을 지나는 송전탑을 그렸다. 126번부터 129번까지 꼼꼼하게 송전탑 번호까지 매긴 뒤 맨 아래 이런 제목을 달았다. ‘송전탑 아래에서 울고 있는 나’.

정임출씨가 그린 ‘송전탑 아래서 울고 있는 나’. ⓒ교육공동체 벗 제공

여전히 송전탑 전자파 유해성 논란은 명쾌하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는 주장과, 유해성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평행선을 달린다. 다만 여러 전자파 유해성 관련 토론회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전자파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사회적 인식 사이에 간극이 있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밀양 송전탑 건설은 국책사업이었다. 더욱이 유해성 논란이 한층 더한 76만5000V 초고압 송전탑 건설이었다. 아파트 40층 높이로, 유해성 여부를 떠나서도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다.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만4000V 송전탑과는 차원이 다르다. 집 뒷산에도, 논 한가운데에도 세워졌다. 송전탑 논란 초기부터 밀양 주민들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송전선 노선을 바꾸거나, 전압을 낮춰 지하에 설치할 것(지중화)을 요구했지만, 한전 측은 비용 문제 등을 들어 이를 거부했다. 한전이 마을에 뿌린 돈은, 결국 더 많은 돈을 아끼기 위한 미끼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10년 전 밀양 주민들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고 말했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쓰는 전기는, 방사능 공포와 대기오염을 감내해야 하는 발전소 인근 주민의 눈물, 그리고 밀양 같은 송전탑 인근 주민의 눈물을 타고 흘러간다.

밀양시 부북면 위양마을 뒷산의 765kV 128번 송전탑. 멀리 보이는 송전탑은 127과 126번이다. ⓒ시사IN 조남진

올해 1월 김영희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가 펴낸 〈전기, 밀양-서울〉은 ‘밀양 할매’의 구술을 통해 밀양 송전탑 싸움의 의의를 짚어낸 책이다. 어느 60대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데모하러 서울에 갔는데 마 삐까뻔쩍하이, 마 정신이 읎어. 마 대낮겉이 밝아갖고 훤-하이 그란데 마 퍼뜩 그런 생각이 들더라꼬. 아 여 이래 전기 갖다 쓸라꼬 우리 집 앞에다 송전탑 시운(세운) 기구나 … 그라믄 전기 만드는 데든 송전탑이든 여 갖다 세우지 와 남의 땅에다 시와(세워)놓고 이래 느그는 팡팡 에어컨 돌리고 야밤에 온 시상(세상)을 대낮겉이 밝혀놓고 이라노 말이다.”

내 집 앞 송전탑 반대로부터 운동을 시작한 밀양 할머니들은 어느 순간 각성했다. 농촌을 희생해 대도시를 지탱하는 ‘에너지 불평등’을 비판했고, 이는 핵발전소 반대로까지 나아갔다. 김영희 교수는 “한국에서 에너지 정의와 탈핵 운동의 역사를 쓴다면, 그 첫 페이지에는 ‘밀양 할매’가 있어야 한다”라고 책에 썼다.

탈원전 정책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의 등장은 밀양 주민들에게 커다란 희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0여 일 뒤인 2017년 6월4일 정임출 할머니는 문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쓴다.

2017년 6월13일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행정대집행 3년을 맞아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상경 집회에서 주민들이 쓴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편지'가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되었다. ⓒ시사IN 신선영

“저는 요즘 세상이 바뀌는 재미에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습니다. 왜냐고요? 석탄발전소, 원전 건설 계획 중단 뉴스를 보고 너무 좋아했답니다. 이렇게 바꿀 수 있는데 지난 12년 세월 정말 분하고 원통하고 억울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세월 두 분이 돌아가셨을 땐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 우리는 세월호, 강정마을, 용산 참사, 쌍용차, 기륭전자, 유성기업 등 이 나라의 아픔이 있는 곳에 찾아가 서로 위로하며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고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탈핵으로 안전한 나라가 되면 먼 거리의 송전탑도 필요가 없어집니다. 조금은 비싸지만 안전한 신재생에너지로 변경하여주시기를 정말 부탁드립니다. 두서 없는 편지 죄송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정의가 바로 서는 나라를 위해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후 탈원전 논의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할머니가 편지를 쓴 지 보름 만인 6월18일 신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국가’를 선언하면서도, 신고리 5·6호기 건설에 대해선 공론화위원회에 맡기겠다고 결정한다. 결국 공론화위원회의 결과는 ‘원전 건설 재개’였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공론화위원회 진행 과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시사IN〉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론화위원회 초기부터 아차 싶었다. 원전산업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원전 찬성 측은 목숨을 걸다시피 정성스럽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반면, 반대 측은 그렇지 못했다. 이런 일을 공론화위원회 같은 곳에 맡겨선 안 됐다.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뼈아픈 판단 착오였다.”

밀양 행정대집행으로부터 10년이 지난 6월8일. 다시 밀양에 사람들이 모였다. 종일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전국 각지에서 ‘다시 타는 밀양희망버스’ 20여 대가 도착했다. 밀양시 영남루 건너편 수변광장에 약 1500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의 이름은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였다.

6월8일 오후 경남 밀양시에서 열린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이날 결의대회는 오랫동안 밀양 송전탑 싸움에 함께했던 ‘밀양의 친구들‘에게는 또 다른 의의가 있었다. 총 223개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한 대규모 행사를 기획한 이들은 20대 젊은 활동가들이었다. 고교생 때부터 밀양 싸움에 함께했던 남어진씨(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와 공혜원씨(결의대회 총괄팀장)를 비롯해 유에스더씨(한국YWCA연합회), 변인희씨(녹색연합), 대용씨(인권운동사랑방) 등 젊은 활동가들이 주축이었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싸움 등에 연대했던 청년들 역시 이번 행사를 뒤에서 도왔다. 밀양 투쟁의 ‘세대교체’라 할 만했다.

우리에게 밀양은 어떤 곳인가

이번 행사를 기획하면서 ‘선배 활동가‘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다. “10주년 행사를 통해서 무얼 말하고 싶은가?“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이 곧 우리가 앞으로 갈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특히 밀양 투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젊은 기후(탈핵) 활동가들에게 ‘기억과 연대의 장’을 열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밀양 할머니들의 한 맺힌 외침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폭주’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강력한 경고를 보내려 했다.

윤석열 정부는 5월31일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AI(인공지능) 등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2038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왕에 ‘원전 생태계 복원’을 강조해온 윤석열 정부였지만, 대형 원전을 3기나 더늘리겠다는 이날 발표는 밀양 주민에게 충격이었다.

고교생 때부터 밀양 싸움에 함께했던 남어진 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집행위원(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밀양 행정대집행 10주년 결의대회 참가자들이 6월9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시사IN 이오성

그뿐이 아니었다. 밀양 행정대집행 10주년 행사 하루 전인 6월7일 〈조선일보〉는 조환익 전 한전 사장 인터뷰를 보도했다. 조 전 사장은 2012년 12월부터 2014년 9월까지 한전 사장으로서 밀양 송전탑 건설을 총지휘한 인물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밀양을 언급했다. “AI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송배전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 하지만 밀양 송전탑 사태를 겪으면서 지자체장들은 민원과 표를 의식해 협조를 하지 않기 시작했고, 주민들도 보상하기 전에는 말도 꺼내지 말라는 식이 됐다. 송배전망의 중요성은 더 커졌는데 건설은 밀양 송전탑 사태를 거치며 훨씬 어려워졌다.”

밀양 행정대집행 이후 10년. 세상은 또 변했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주요 의제로 떠오르면서 전력망 확충 요구가 날로 높아가고, 정부는 원전 확대로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 든다. 일각에서는 밀양 투쟁을 기후위기 대응의 ‘흑역사’로 변질시키려는 조짐마저 엿보인다. 그 와중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농촌의 전력 비대칭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전도연은 묻는다. “밀양은 어떤 곳인가요?” 송강호는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밀양은 어떤 곳인가. 국가와 자본의 폭력으로 상처 입은 곳인가. 상처 속에서도 연대와 나눔이 빛났던 곳인가. 혹은 우리 사회에서 ‘탈핵’과 ‘에너지 정의’의 첫 발자국을 뗀 곳인가. 밀양의 ‘할매’들은 그 답을 기다리고 있다.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싸움 타임라인

  • 2000년 1월13일 산업자원부
    제5차 장기전력수급계획에서 765kV 송전선로 계획
    신고리 핵발전소를 비롯해 영남권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하기 위한 계획 수립

  • 2005년 8월 한국전력공사(한전)
    환경영향평가서 초안 공람 및 주민 설명회 개최
    ‘765kV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주민들에게 처음 공개됨. 주민 설명회에 참여한 주민들은 송전탑 경과지 5개면 주민 2만1069명 중 126명(0.6%)에 불과. 한전은 이 설명회를 근거로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
     
  • 2005년 12월 5일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주민
    밀양송전탑 반대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첫 집회를 한전 밀양지사 앞에서 개최
     
  • 2006년 3월25일 공동대책위
    ‘76만5000볼트 변전소 및 송전탑 건설반대 밀양·창녕 공동대책위원회’ 출범
     
  • 2009년 7월~2011년 11월 한전과 주민
    한전 측이 9차례에 걸쳐 공사 강행했으나 주민과 충돌 등으로 중단
     
  • 2012년 1월16일 이치우씨 분신 사망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 주민 이치우씨 분신 사망
    이치우씨(74)는 “내가 죽어야 이 문제가 해결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보라마을 입구에서 분신. 경찰은 사인을 ‘단순 과실로 인한 사망’으로 발표
     
  • 2012년 3월17~18일 탈핵희망버스
    제1차 탈핵희망버스
    이치우 분신대책위는 대중적인 탈핵운동을 만들고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힘을 싣기 위해 ‘탈핵희망버스’를 제안. 전국에서 시민 약 1200명 참여
     
  • 2012년 6월27일 한전
    한전, 주민 대상 10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한전은 주민들의 공사 방해로 10억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밀양시 부북면 주민 3명에 대해 손배소 청구. 또한 4개 면 주민 13명을 대상으로 공사방해금지 가처분신청(하루 100만원 이행강제금 포함)을 청구
     
  • 2012년 7월2일 밀양 주민
    공사를 막기 위해 8개 농성장 설치하여 운영
    분신대책위와 밀양 주민들은 4공구 헬기장, 부북면 평밭마을 127번 움막 등 총 8개 움막을 설치해 한전의 전면 공사 시작에 대응하며 숙박 농성을 이어감
     
  • 2012년 7월3일 한전
    청도 삼평리, 경비 용역업체 투입
    송전탑 공사 강행에 경북 청도군 삼평리 주민들 반발이 거세지자 시공사는 경비 용역업체를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공사를 진행
     
  • 2013년 2월1일 정부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
    밀양 주민들은 탈핵시민단체들과 함께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가 열리는 회의장을 점거해, 신고리 5~6호기 문제와 핵·화력발전소를 증설하는 문제에 대해 항의. 이날 공청회는 시민들의 항의로 취소됨
     
  • 2013년 4월23일 산업통상자원부·한전
    밀양 특별지원대책 보상안 13개 발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태양광밸리 300억원 투자, 송변전 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 이후 마을 보상 및 개인 지원, 마을 합의금 상향 조정 등 보상안을 발표
     
  • 2013년 5월20일 한전·경찰
    12차 공사 강행과 대규모 경찰 병력 최초 동원
    한전은 2012년 9월 국정감사 이후 중단되었던 공사를 다시 시작. 한전은 4개 면 6개 지역에서 공사를 재개했으며, 경남경찰청 소속 경찰 병력 7개 중대 500여 명이 동원. 이는 최초로 대규모 경찰 병력이 투입된 시점임. 주민들은 포클레인에 몸을 묶고 웃통을 벗으며 격렬히 저항
     
  • 2013년 8월14일 밀양시
    밀양시, 공무원을 동원해 마을별 주민 설득 회유
    밀양시가 6급 이상 공무원 133명을 대상으로 ‘765kV 송전선로 건설사업 갈등 해결을 위한 직원교육’을 진행하며, 강사로 한전 관계자를 초청. 밀양시가 주민 및 마을의 성향 분석까지 시도한 사실이 드러남
     
  • 2013년 9월16일 한전
    밀양 30개 마을 중 15곳과 합의했다고 선언
    그러나 밀양 대책위는 한전이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마을에서 마을총회가 열리지 않았고, 주민 동의 없이 마을 대표와 합의한 점, 합의금을 편법 지출한 점 등을 해당 마을 주민의 녹취록을 통해 폭로
     
  • 2013년 11월30일~12월1일 밀양 주민·연대자·밀양희망버스기획단
    1차 밀양희망버스
    밀양 송전탑 공사 중단을 촉구하기 위해 전국에서 밀양희망버스가 조직되고, 시민 3000여 명이 밀양을 방문. 전국에서 모인 시민들은 경찰의 통행 저지에도 불구하고 95~96번, 110번, 122번 농성장에 진입 성공
     
  • 2013년 12월6일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씨 음독 후 사망
    2013년 12월3일 상동면 고정마을 유한숙씨(74)가 자택에서 음독 후 12월6일 새벽 사망. 마을 지인들과 가족들은 고인이 송전탑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전해. 경찰은 사망 원인이 송전탑과 직접 관련이 없다고 발표
     
  • 2014년 1월25~26일 밀양 주민·연대자·밀양희망버스기획단
    2차 밀양희망버스
    유한숙씨 사망 이후 2차 밀양희망버스 조직. 2차 밀양희망버스는 전국 46개 지역에서 4000여 명이 참가해 밀양에서 진행된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됨
     
  • 2014년 6월8일 문재인 국회의원
    문재인 의원, 밀양 농성장 방문
    문재인 의원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밀양 송전탑 원점 재검토, 신규 핵발전소 증설 중단’을 약속했으나, 낙선하여 주민들에게 고통을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사과함
     
  • 2014년 6월11일 한전·경찰·밀양시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농성장 행정대집행
    새벽 4시부터 경찰 버스 50대에 나눠 탄 경찰 2000명과 밀양시 공무원 200명이 농성장 주변에 집결. 경찰은 좁은 공간에 있는 소수의 주민과 연대자들을 퇴거시키고자 폭력을 행사. 129번 농성장 철거 과정에는 구덩이 안에서 옷을 벗은 채로 저항하던 여성 주민들의 사지를 들어 농성장 밖으로 끌어냄. 127번과 101번 농성장에서는 주민들의 손과 다리, 목에 절단기를 들이밀어 쇠사슬을 끊음
    오전 6시에 시작된 행정대집행이 오후 5시10분에 종료됨
    6월11일 당일 주민 연대자 19명이 응급 이송됨
     
  • 2014년 7월21일 한전·경찰
    청도 삼평리 현장, 경찰 및 한전 새벽 기습 침탈 및 공사 재개
    밀양 행정대집행 이후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에서 농성 중이던 주민들을 몰아내기 위해 한전 직원 100여 명과 경찰 500여 명이 새벽 침탈 강행. 총 10명이 연행되었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 삼평리 주민들은 2014년 4월16일부터 유일하게 미완공된 23호기 송전탑 부지에 망루를 만들어 현장을 지키고 있었음
     
  • 2014년 12월28일 한전
    시험 송전 시작. 한전은 언론사에 보도자료 배포하여 ‘밀양 송전탑 종료’를 선언
     
  • 2017년 10월23일 밀양대책위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결정과 문재인 대통령 담화에 대한 밀양 주민 입장문 발표
     
  • 2021년 12월27일 밀양‧청도 대책위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 개관
     
  • 2023년~2024년 5월
    〈전기, 밀양-서울〉 ‘탈탈낭독회’ 진행. 전국 20여 개 지역 600명 참여
     
  • 2024년 6월8일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 윤석열 핵 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 개최
    전국에서 약 1500명 참가

 

# 자료: 밀양⸱청도 송전탑 반대 투쟁 온라인 기록관(http://my765kvout.org) 발췌

밀양·이오성 기자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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