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공정한 진열'이란 무엇인가

김진형 산업2부장 2024. 7. 1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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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의 알고리즘 조작과 직원 동원 후기 작성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1400억원 이상의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을 결정했다. 공정위 발표 이후 쿠팡은 '로켓배송 중단'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박했고, 공정위는 이를 다시 재반박하는 등 논란이 커졌지만 양측은 더이상의 확전은 자제하는 모양새다. 쿠팡은 행정소송으로 법원으로 다퉈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이 사건은 법원이 판단할 문제가 됐다. 결론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다.

논란은 잠잠해졌지만 유통업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아직까지 가장 큰 이슈는 쿠팡이다. 만나 본 유통업계 종사자들마다 판단은 다소 달랐다. 쿠팡이 정말 잘못한 것이란 의견도 적지 않았지만 상품 진열과 관련한 다양한 논란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컸다. 유통업계 관계자들과 대화하면서 공유했던 의문점들은 몇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알고리즘을 조작해 자기 상품(PB상품과 직매입상품)을 검색 순위 상단에 노출하는 행위를 수년간 계속해 왔다. 쿠팡은 또 같은 기간 직원들을 동원해 PB 상품에 후기를 작성케 하고 높은 별점을 부여해 검색 순위를 끌어 올렸다.

공정위 말대로라면 쿠팡은 이미 알고리즘을 통해 PB 상품을 검색 상단에 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직원들을 동원해 후기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검색 순위를 끌어올렸을까. 공정위 조사 결과, 쿠팡은 직원 후기가 법 위반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쿠팡이 쉬운 알고리즘 조작 방법을 놔두고 위험한 후기 조작을 한 이유가 뭘까. 누군가는 검색 순위 상단에 있는데 좋은 상품평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유통가 사람들이 공정위의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둘째. 공정위가 쿠팡의 검색조작을 징계한 논리는 사람들은 검색 순위 상단에 있으면 좋은 제품이라고 판단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쿠팡의 자기상품 검색 상단 노출은 알고리즘 조작이었지만 소비자들은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해 상위에 배치된 것으로 속아 제품을 구매했다는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쿠팡에서 같은 제품을 여러차례 구매한 고객은 계속 쿠팡에 속아서 산 것일까, 써보니 좋아서 재구매한 것일까. 그래도 처음에 속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면 속아서 산 매출에 대해서만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까, 반복된 모든 매출에 과징금을 부과해야 할까.

말장난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쿠팡 사건에 기분이 나빴다는 사람들 중에는 쿠팡이 나를 농락해서가 아니라 '나를 쿠팡한테 농락당한 어리석은 소비자'로 본 공정위 때문이라는 이들도 있다. 쿠팡에서 탐사수(PB 생수)를 반복 구매한 소비자는 쿠팡에게 계속 농락당한 셈이기 때문이다.

셋째. 오프라인 유통업체들도 PB 상품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 고객을 유인한다는 쿠팡의 주장에 공정위는 오프라인 유통업체와 쿠팡은 다르다고 반박한다.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오프라인 유통업체는 모두 자기 상품이기 때문에 쿠팡처럼 자기 상품과 중개 상품을 같이 취급하는 유통업체와는 다르다는게 핵심이다. 어차피 다 자기 상품이니 PB 상품을 우선 노출한다고 해서 '경쟁 사업자의 고객을 유인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유통업체에게 PB 상품이나 직매입 상품이나 모두 자기 상품인 것은 맞지만 마진은 PB 상품이 훨씬 높다. 유통업체들이 계속 PB 상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이유다. 유통업체가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위치에 PB 상품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PB 판매를 늘리면 경쟁 관계에 있는 직매입 상품의 매출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같은 자기 상품이지만 직매입 상품의 재고가 쌓이면 그만큼 추가 주문은 줄어들어 경쟁상품 제조사의 수익은 줄어든다. 그렇다면 이 경우는 경쟁사업자의 고객을 유인해 공정경쟁을 방해한 행위인가, 아닌가.

실제로 모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법무 담당자는 "지금은 공정위가 오프라인 유통은 다르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언제 오프라인 유통업체에도 PB 상품을 좋은 위치에 배치한 이유를 설명하라고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김진형 산업2부장


김진형 산업2부장 jh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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