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원 위로하던 부부, '리얼 부부'였다...스태프도 몰랐던 '부부의 세계'

양승준 2024. 7. 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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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중문화의 '부부 파워'>
#안판석, 진짜 부부로 사실주의 추구
'졸업' 부부 역할 전석찬·황은후, 
"캐스팅될 때 부부로 나올 줄 몰라" 
 "오 청소 전문가~" 현실 닮은 대사 '입에 착' 
 
#감독 김태용·배우 탕웨이 부부의 동업
'맞벌이 국제 부부' 일상 기반 SF 실험 
#시장 주도하는 부부 창작자들
추석 기대작 '베테랑2'·K팝 한류 간판 아이브·몬엑 
#콘텐츠 대세도 '부부 서사' 
1년 새 부부 프로그램 7개 이상 
TV·OTT '부부 콘텐츠 양극화'도
드라마 '졸업' 속 춘일(전석찬·왼쪽)과 소영(황은후)은 혜진(정려원)의 학원 인근에 주점을 운영하는 부부다. 현실에서 실제 부부이기도 하다. tvN 제공

"저희가 사실은 실제 부부거든요."

배우 전석찬은 tvN 드라마 '졸업'에서 부부로 나온 황은후와 현실에서도 부부 사이임을 종방 뒤에 시청자들에게 깜짝 공개했다. 그가 황은후와 '진짜 부부 고백'을 한 유튜브 영상엔 "드라마에서 소영·춘일 부부 보면서 '진짜 케미(연기 궁합) 좋다'고 생각했는데 '찐 부부'였다니!" 등의 댓글이 달렸다. 황은후는 혜진(정려원)의 대학 동창인 변호사 소영 역을, 전석찬은 주점 '야간비행'을 운영하는 춘일 역으로 나왔다. 둘은 혜진이 학원 강사 일이나 제자였던 준호(위하준)와의 사랑으로 고초를 겪을 때마다 안식처가 돼줬다. 대학로 무대에서 연기했던 황은후의 드라마 출연은 처음. 두 사람은 어떻게 부부로 출연하게 됐을까.

"저희도 '졸업' 캐스팅 당시엔 부부로 나올지 몰랐어요. 추가 대본과 인물 관계도를 나중에 보고 부부 사이란 걸 알고 놀랐죠. 전석찬씨가 안판석 감독님 전작에 몇 차례 출연해 안 감독님이 저희가 부부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부부 역할로 캐스팅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8일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난 황은후가 들려준 뒷얘기다.

드라마 '졸업'에서 춘일(전석찬·왼쪽 세 번째)과 소영(황은후·오른쪽 두 번째)이 혜진(정려원·왼쪽 두 번째) 학원 강사들과 술을 마시고 있다. tvN 제공
드라마 '졸업' 속 춘일(전석찬)과 소영(황은후) 부부가 실제 부부임을 밝히는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
'졸업' 숨은 일꾼은 '부부 연기자'

연예인 부부는 많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 부부로 등장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안 감독은 부부 배우를 작품에 적극 활용한다. 실제 부부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극의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배우 부부인 김정영·김학선을 '풍문으로 들었소'(2015)에서 부부로 등장시킨 것도 비슷한 이유다.

부부 배우의 생활감은 드라마에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졸업' 8회에서 소영은 혜진과 술을 마신 뒤 어질러진 사무실을 깨끗이 치워주는 춘일을 보고 "오~역시 전문가!"라고 말한다. 황은후는 "전석찬씨가 저보단 청결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서 집에서도 청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니 그 대사가 입에 착 달라붙더라"며 "혜진과 기쁨과 걱정을 함께 나누는 이야기가 대본에 나오면 우리가 서로 아는 지인의 상황에 빗대 가며 '이런 마음을 갖고 이런 톤으로 우리가 얘기를 하잖아'라고 집에서 대화하며 촬영을 준비했다"고 했다.

실제 부부의 부부 연기 시너지를 스태프들도 눈치챘다. 전석찬과 황은후는 소속사가 서로 달라 촬영 초반엔 따로 대기실을 썼지만, 스태프들이 촬영 중반부터 대기실을 한곳으로 합쳐 줬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졸업'에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 강사인 표상섭을 연기한 김송일과 학부모로 나온 류경인도 실제 부부다. 10여 분 동안 방송돼 화제를 모은 '표상섭의 문학 강의'에도 부부의 케미가 있었다. 김송일이 집에서 시범 강의를 한 뒤 류경인이 표정과 말투의 디테일을 고민해 줬다. 부부 배우들이 '졸업'에서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졸업' 관계자는 "김송일과 류경인 배우가 실제 부부인 줄 나도 몰랐다"고 말하며 웃었다.

감독 김태용·배우 탕웨이 부부가 영화 '원더랜드' 촬영을 하며 얘기를 하고 있다.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감독 김태용·배우 탕웨이 부부. 뉴스1
'중꺾마' 부부 창작단의 활약

요즘 대중문화에선 부부 활약이 잇따른다. 영화감독 김태용과 배우 탕웨이 부부는 지난달 개봉한 영화 '원더랜드'로 공상과학(SF) 장르에 함께 도전했다. '원더랜드'는 탕웨이가 주연한 '만추'(2011) 이후 김 감독이 13년 만에 내놓은 장편 영화다. 시한부 엄마인 바이리 역을 맡은 탕웨이는 남겨질 딸을 위해 자신을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하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맞벌이 국제 부부'로 떨어져 일할 때가 잦아 7세 딸과 영상통화를 자주 했던 두 사람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김 감독이 대본을 썼고, 탕웨이가 연기했다.

감독 류승완(왼쪽 세 번째)과 제작사 외유내강 대표 강혜정(오른쪽 두 번째) 부부가 함께 만든 영화 '베테랑2'로 지난 5월 프랑스 남부 소도시 칸에서 열린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베테랑2'는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CJ ENM 제공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는 지난 5월 제77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첫 공개됐다. 칸국제영화제 제공

이렇게 공유한 일상을 창작 세계로 넓힌 부부들은 '창작 권력'으로 새삼 주목받는다. 영향력도 막강하다. 영화감독인 류승완과 제작사 외유내강 대표인 강혜정 부부가 함께 만든 영화 '베테랑2'(9월 13일 개봉)는 올 추석 극장가를 들썩일 기대작으로 꼽히고,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김시대 대표 프로듀서와 서현주 부사장 부부는 그룹 아이브과 몬스타엑스 등을 잇달아 제작해 한류에 불을 지폈다. 같은 분야 현장의 밑바닥에서부터 쌓은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부가 함께 회사를 차린 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콘텐츠를 꾸준히 만들어 빛을 본 게 '부부 제작단'의 공통점이다.

방송에서도 부부가 뭉치면 힘은 커진다. '효리네 민박' 시즌 1, 2에서 함께 활약했던 이효리·이상순 커플은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 부부'다.

이효리·이상순 부부. JTBC 제공
'부부 서사' 영향력 커지는 이유... 갈등 부각 부작용도

'부부 파워'는 콘텐츠 유행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MBC)과 '모든 패밀리'(웨이브) 등 최근 1년 새 방송 중이거나 공개된 부부 소재 예능 프로그램은 7개 이상이다. 부부 콘텐츠가 쏟아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①관찰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가장 은밀한 부부의 삶까지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콘텐츠 제작이 잇따른다. ②TV 시청층의 고령화도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③가족 개념에 대한 인식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김교석 방송평론가는 "TV 콘텐츠는 시청층의 고령화로 중·장년 세대의 화두인 부부 관계를 소재로 전통적 가족의 소중함을 부각하는 예능 제작이 활발하다"며 "반대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선 기성 세대와 다른 시각으로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부부 관계와 미래를 고민하는 콘텐츠가 주목받는다"고 흐름을 짚었다.

요즘 유튜브에선 결혼 7년 차 부부의 일상 속 소소한 대화를 다룬 '인생 녹음 중'(구독자 103만 명)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TV와 OTT 간 부부 예능의 세대별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7년 차 부부의 일상 속 소속한 대화를 주제로 한 '인생 녹음 중'. 유튜브 영상 캡처
예능프로그램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에 출연한 부부가 갈등을 빚고 있다. JTBC 영상 캡처
'한 번쯤 이혼할 결심'에 출연한 정대세 ·명세현 부부가 육아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 MBN 영상 캡처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JTBC), '쉬는 부부'·'한 번쯤 이혼할 결심'(MBN) 등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부부 갈등에 초점을 맞춘 예능 프로그램들이 난립하면서 부작용도 속출한다. 성생활 문제와 이혼 고민 등이 자극적으로 다뤄지면서 부부의 심각한 문제가 희화화하고, 아이들이 인격권까지 침해받고 있다는 지적이 인다. JTBC, MBN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각 위원회 회의록엔 "'이혼숙려캠프: 새로고침'은 부부가 싸우고 갈등 빚는 소위 '매운맛 잔상'만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한 번쯤 이혼할 결심' 등에서 다룬 이혼 관련 심각한 이슈들은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강화하는 듯한 인상을 줘 우려스럽다" 등의 의견이 담겨 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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