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스릴러에 스릴은 없는 ‘탈출’
8일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12일 개봉)의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들은 검은 옷을 맞춰 입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영화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의 유작으로, 엔딩 크레디트에도 ‘고(故) 이선균님을 기억합니다’라는 추모 문구가 포함됐다. 시사회가 끝나고 김태곤 감독은 “이선균 배우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영화는 공항대교 위에서 대형 추돌 사고가 일어나고, 비밀리에 이송 중이던 군사용 실험견들이 도로 위로 풀려나면서 시작된다. 딸과 함께 공항으로 향하던 청와대 행정관 정원(이선균)은 미쳐 날뛰는 개들을 피해 붕괴 직전의 다리를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해 분투한다.
재난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재난만 있고 스릴은 놓쳤다. 극 중 상황이 눈앞에 닥친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 영화의 공식에 따라 예상대로 움직이는 캐릭터들은 어떻게든 몰입해보려는 관객을 끊임없이 밀쳐낸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사건을 축소하려는 청와대 안보실장, 실험을 하다 미쳐버린 과학자, 웃음을 주기 위해 끼워 넣은 듯한 레커차 기사, 힘쓰는 순간에 필요한 운동선수까지. 자판기에서 뽑아낸 듯 뻔한 캐릭터에서 개성 있는 연기가 나올 리 없다. 중간중간 끼어드는 어설픈 개그도 계속 겉돈다.
제작비 185억원으로 올여름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 가장 큰 블록버스터. 국내 최대 규모인 1300평 세트장에 도로를 만들고, 300대 이상 차량을 동원해 100중 추돌 사고 장면을 촬영했다. 헬기가 추락하고, 탱크로리가 폭발하는 등 재난이 연달아 터지며 최첨단 CG 기술을 자랑한다.
하지만 관객이 보고 싶은 건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다. 캐릭터와 서사가 빈약하니 각종 재난이 몰아치는데도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물어뜯는 근육질 살상견들도 100% CG로 만들어냈다. 움직임은 꽤 자연스럽지만 레커차 기사 조박(주지훈)이 데리고 다니는 실제 강아지와 비교하면 CG의 한계가 드러난다. 가장 위협적이어야 할 살상견마저 가짜처럼 보이니 더욱 몰입하기 어려워진다.
이선균은 붕괴하기 직전의 영화를 받치고 꿋꿋이 버팀목 역할을 해낸다. 청와대 행정관으로 생존자들을 이끌고 탈출해야 하는 정원은 누구보다 냉철한 인물이지만 참혹한 재난 현장에서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어떤 역할을 맡아도 묵직한 연기로 현실에 발붙인 인물을 만들어내 온 배우답게 붕 떠 있는 이야기에 무게를 더한다.
영화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처음 선보인 후, 주연이었던 이선균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1년 넘게 개봉이 미뤄졌다. 같은 이유로 개봉이 연기됐던 또 다른 유작 ‘행복의 나라’도 다음 달 14일 개봉 예정이다. 이선균은 1979년 대통령 암살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정보부장 수행 비서관 박태주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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