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조선 도공 이삼평과 네이버 이해진
일본 자기 평정하며 '도조'로 추앙
한국 기업 최초 일본서 성공한
네이버 이해진은 정치권 동네북
라인야후 사태는 AI 국가 전쟁
데이터 선봉 기업 지원 사격해야
윤성민 논설위원
오마에 겐이치는 여든을 넘긴 요즘은 활동이 뜸하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와 함께 세계 3대 경영 그루에 올랐던 인물이다. 한국인들에겐 무엇보다 야멸찬 독설로 유명했다. “착각하지 말라. 한국은 멀었다”는 점잖은 표현이고, “한국 경제는 추진력 잃은 대포동 2호 같다”는 조롱도 심심찮게 당했다. 부아가 치밀어도 그의 위상 앞에서 토도 제대로 달지 못했다.
그 오마에가 한국을 꽤나 치켜세운 내용이 담긴 책을 낸 적이 있다. <지식의 쇠퇴>에서 그는 한국을 독일과 더불어 글로벌화에 가장 잘 적응한 국가로 꼽았다.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이 그렇고, 그가 명예교수로 있던 고려대·이화여대를 예로 들면서 대학이 글로벌 인재들을 잘 키워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에 대해선 신랄했다. 과거 대항해 시대 세계를 호령하다가 영국 등에 몇 방 맞고는 이내 패배주의에 빠진 ‘포르투갈 현상’이 일본 젊은이들에게 만연하다고 개탄했다. 책 여러 대목에서 ‘신종 3기’로 무장해야 한다고 간절히 호소하기도 했다. 영어, 파이낸스(금융 지식)와 더불어 정보기술(IT)이다.
책이 나온 2009년은 네이버가 일본 시장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던 때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은 오마에가 갈망하던 IT 기술과 글로벌 개척 정신을 두루 갖춘 인재상의 한 전형이다.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와 KAIST 대학원을 나와 삼성 입사 7년 만인 1999년 네이버를 창업한 그가 일본 시장에 도전한 때는 불과 2년 뒤인 2001년이다. 한국 시장에서 미처 자리 잡기 전에 일본 시장에도 같이 뛰어든 것이다. 물론 그의 표현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 끝에 장렬히 두 손 들고 나왔지만 이내 곧 재도전한다. 한국에는 이해진만 있던 것이 아니다. 김범수, 고 김정주, 장병규,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등 한국 최고 공대인 서울대나 KAIST를 나와 대기업행 대신 벤처기업을 차리고 세계 플랫폼 전장에서 일합을 겨루는 글로벌 IT 전사들이 포진해 있다.
라인의 성공 계기가 된 사건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라인과 동일본 대지진에 얽힌 몇 가지 숨은 얘기가 있다. 사건 당일인 3월 11일, 기지국 파괴로 문자와 전화는 먹통이 됐지만, SNS 등 인터넷 소통은 가능한 상황에서 일본에 있는 한국인들이 생사를 확인한 수단은 카카오톡이었다. 이점을 포착한 사람이 바로 이해진이다. 그의 지시로 라인 메신저 개발에 걸린 시간은 딱 한 달 반이었다. 물론 카톡이라는 벤치마킹 모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이미 그 당시에 이해진과 김범수라는 서울대 공대 86학번, 삼성SDS 입사 동기인 두 라이벌이 일본의 메신저 시장을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는 얘기다.
이해진의 사업 파트너인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이 동일본 대지진 때 한 일은 그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참사 며칠 뒤 임원들의 극렬 반대에도 불구하고 30만 명 소개 계획을 들고 후쿠시마현청을 찾았다. 회사로 돌아와선 전력 사업을 위해 1년간 최고경영자(CEO)직을 그만두겠다고도 했다. 모두 성사되진 않았지만, 그가 일본의 국가 이익을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정보 유출 빌미가 없었더라도 라인야후에서 네이버를 몰아내려고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네이버는 일본에서 성공한 유일한 한국 기술기업이다. 우리 기술이 일본을 장악한 사례를 찾자면 임진왜란 때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도공 이삼평은 일본에 끌려갔다가 일본 자기의 세계화에 일등 공신이 됐고, 죽어선 신사에 모셔져 ‘도조(陶祖)’로 불렸다. 그는 일본에서 추앙받았지만, 조선에선 천대받은 도공이었다. 이해진도 고국에선 국정감사 때마다 국회의원들의 호출 명령에 시달리는 동네북 신세다. 둘은 큰 차이도 있다. 이삼평은 일본에 귀화했지만, 이해진은 “인터넷 제국주의시대에 끝까지 저항하는 삼별초가 되겠다”고 한다.
라인야후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시나리오만 분분할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글로벌 인공지능(AI) 전쟁 시대에 국가 간 싸움이라는 점이다. AI 전쟁을 치를 실탄이 바로 데이터다. 그 선봉 부대 격 기업들을 우리가 어떻게 지원 사격해야 하는지는 자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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