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최민희 의원의 ‘부역자’ 발언

신동흔 기자 2024. 7. 1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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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정부청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민원실에서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강조하며 김홍일 위원장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스1

방송통신위원회가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공모 계획을 의결하던 지난달 28일. 민주당 의원들이 과천 정부 청사로 달려갔다. 김홍일 위원장에게 항의하러 간 것이다. 청사 입구에서 막혀버렸다. ‘위원장 면담’이란 방문 목적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출입증이 나오지 않은 것이다.

“국회의원이 출입증을 안 줘서 못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일,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름이 뭐죠? 직책이 뭐예요?” 당시를 촬영한 동영상을 보면 민주당 과방위 간사인 김현 의원이 민원실 말단 직원에게 따지고 있다. 항의는 이어진다. “공범(共犯)으로 자꾸 그러지 마시라고….” 김 의원은 자신을 막는 청사 출입 담당 직원에게 “고발할테니 알아서 하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주민센터나 파출소 등에서 봤던 이른바 ‘민원인 갑질’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날 위원장 면담이 무산되자 민주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 사무처를 비판했다. 과방위원장인 최민희 의원은 “김 위원장과 ‘부역’한 공무원들에 대해 모두 법적 조치하겠다”고 했다. 전날 방통위원장 탄핵을 결의하고, 다음 날은 일선 공무원들을 ‘부역자’로 몰아붙인 것이다.

부역은 ‘전쟁 중 점령당한 지역에서 적에게 협조하는 행위’다. 이들의 말은 ‘지금 정부는 적이고, 방통위는 점령당한 지역이자 언젠가 돌아올 곳’이라는 인식을 담고 있다. 김현 의원은 2020년 8월부터 3년간 민주당 추천 상임위원으로 방통위에서 일했다. 불과 10여 개월 전까지 국·과장 및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댔다. 최민희 의원도 노무현 정부 말기에 방통위 전신(前身)인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과 위원장 직무대행을 했다. 이들과 일한 직원이 방통위에 아직도 많다. 두 의원이 ‘공무원 시절’ 어떻게 일했는지 아는 사람들이다. 한 방통위 직원은 “저분들한테 ‘부역자’란 말을 들으니 섬뜩하다”고 했다.

민주당 사람들은 ‘부역’이란 단어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으로 기소된 공직자만 100명이 넘는다. 당시 방송사들까지 나서서 KBS ‘진실과 미래 위원회’, MBC ‘정상화 위원회’를 만들어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 작업을 벌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부역의 관점으로 보면, 세상에는 적(敵) 아니면 우리 편밖에 없다. 이날 정부 청사 민원실 앞에서 벌어진 일은 6·25 때 빨치산 점령 지역에서 밤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 얼굴에 전짓불을 들이대고 ‘누구 편이냐’ 묻던 일화를 연상시킨다. 우리 편은 살리고, 아니면 죽였다.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이 어린 시절 겪었던 일이다. 깜깜한 밤에 전짓불을 비추면 불을 든 사람 얼굴은 사라지고, 비춤을 당한 사람은 그 빛에 놀라 눈도 못 뜨고 벌벌 떤다. 그는 이걸 ‘전짓불 공포’라 이름 붙였다. 공무원들은 ‘부역자 공포’에 떨 것이다. 국회의원 김현은 지난 4일 과거 자신과 일했던 국장 2명을 포함, 방통위 고위 간부 3명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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