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윤의 하이쿠로 읽는 일본] [15] 매실이 익을 무렵 콩국수를 먹지

정수윤 작가·번역가 2024. 7. 1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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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드득 소리에

귀도 새콤해지네

매실 비

ふるおと みみ なるうめ あめ

降音や耳もすふ成梅の雨

푹푹 찌는가 싶더니 요즘은 날마다 비 소식이다. 장마에 들었다. 장마는 비를 뜻하는 옛 우리말 ‘맣’이 길 장(長)을 만나 생긴 말이다. 과연 비가 길게도 내린다. 습한 공기가 대기에 꽉 차 수영장 물속을 걷듯이 축축하고 묵직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숲길을 걷다 보니 발밑 여기저기 초록색 열매가 떨어져 있다. 매실이다. 그렇구나. 장마철은 매화나무에서 매실이 익어서 떨어지는 계절이구나.

일본에서는 장마를 매실 매(梅)에 비 우(雨)를 붙여 ‘梅雨(쓰유)’라고 한다. 매실이 익어가는 시기에 내리는 비라서다. 오래전 중국에서 건너간 말이다. 이십 대의 바쇼(芭蕉·1644~1694)도 장맛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런 시를 남겼다. 새콤한 매실이 익어 사방에 떨어지니 후드득후드득 빗소리를 듣는 귀가 신맛을 느낄 지경이란다. 입도 아니고 귀가 새콤해서 어쩌나. 당시에는 ‘귀가 시다’가 같은 소리를 여러 번 들어 질린다는 관용어로 쓰였기에 ‘또 비가 내리는구나, 지긋지긋하네’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다. 옛사람들도 습한 장마가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그런 날이면 입맛도 없다. 그럴 때 일본인들이 찾는 음식이 소금에 절여 햇볕에 말린 매실, 우메보시(梅干し)다. 반찬으로도 먹고 고명으로도 쓰이고 사탕으로도 만드는데, 제일 많이 눈에 띄는 건 주먹밥 속에 들어간 우메보시다. 붉은 매실 초에 담가 저장하기에 빨갛게 물이 드는데, 하얀 쌀밥 속에 새콤한 우메보시 한 알이 입맛을 돋운다.

내가 처음 우메보시를 경험한 건 일본 편의점 삼각 김밥 속에서다. 난생처음 보는 쪼그라든 빨간 열매를 아무 생각 없이 한 입 꽉 깨물었을 때, 나는 기절할 것만 같았다. 셔도 너무 셨다. 세상에 이렇게 신 음식이 있다니! 그날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침이 솟을 정도로 강렬한 신맛이었다. 그렇게 신 우메보시를 즐겨 먹으니 장맛비 소리에 귀가 새콤해질 법도 하다. 우리에게는 전혀 없는 감성이다.

숨이 턱턱 막히게 습한 장맛날, 우리는 시원한 콩국수 한 그릇이 그리워진다. 일본에는 없는 음식이다. 콩을 진하게 갈아서 만든 걸쭉하고 고소한 콩물이 가슴속으로 한 줄기 폭포수처럼 쏟아지면 더위에 끈적끈적해진 몸이 환희에 잠긴다. 알맞게 반죽해서 탄력이 살아있는 국수에 찬 콩물을 휘휘 저어 한 젓가락 입안에 넣으면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장맛비마저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 덥고 답답한 계절이지만 신선한 우메보시 한 알과 구수한 콩국수 한 그릇으로, 그들도 우리도 맛있게 하루하루 버텨보는 수밖에.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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